행복에도 이름표가 필요하다.

행복의 조작적 정의: 내 곁의 사물들과 친구가 되는 법

by 김종명

요즘 태수 작가의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를 읽고 있다.


"자극적인 세상에서 만나는 따뜻한 차 한 잔 같은 책", 혹은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는 '평양냉면' 같은 책"이다.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의 중요성을 말하는 힐링 에세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가르쳐들지 않아서 좋다.

그저 행복보다는 만족, 채움보다는 비움의 중요성을 자신의 경험과 함께 담백하게 전해줄 뿐이다.


내면의 평화를 중시하는 나에게 딱 맞는 책이라, 요즘은 내 침대 머리맡을 지키며 나의 아침 첫 시간을 함께하는 '반려책'이 되었다.


오늘 읽은 에피소드는 '아내는 매일 아침 행복에 이름표를 붙인다.'




내 브런치북 제목인 '나는 우울이와 친구가 되기로 했다.'와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 같아 반가운 마음으로 읽고 필사했다.


우울한 기분에 '우울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주었듯, 행복한 기분에도 이름표가 필요하다.

'명명(Naming)의 심리학'은 나에게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이화열 작가의 책 <서재 이혼 시키기>에서 보았던 구절이 떠오른다.

"행복은 추구하거나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고 스스로 이름 붙이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하여 나도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우선 나의 필사 공책들에게는 '나비잠'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머리 위로 두 팔을 벌리고 자는 아기의 모습만큼 무해하고 평온한 풍경이 또 있을까?

필사하는 그 시간이 나에게 평온하고 온전한 휴식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수면장애를 겪고 있는 나의 잠도 '나비잠'처럼 깊고 편안한 잠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도 함께 담겨 있다.


내 반려 이불인 극세사 이불의 이름은 '보들레'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한 달여를 제외한 나머지 11개월을 함께하는 단짝이다.

물론 세탁은 자주 한다.

요즘은 건조기 덕분에 일요일 하루면 세탁, 건조까지 끝낼 수 있다.

아름다운 세상이다.


앞으로의 나의 일상이 '보들레'를 덮고, '나비잠'에 빠져드는 평온한 시간으로 채워지기를 기대해 본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의 저자인 김정운 교수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행복을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을 옮겨보면 이렇다.


'행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행복을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침실의 '백열등 부분조명'과 '하얀 침대 시트'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게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전문적 용어로 '조작적 정의 operational definition'라고 한다.

'행복이 무엇인가'를 이론적으로 정의 내리는 것을 '개념적 정의'라고 한다면, 조작적 정의는 행복을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고 반복 가능한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을 뜻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프린스턴 대학의 다니엘 카네만 교수는 행복을 아주 '심플하게' 정의한다.

행복이란 '하루 중 기분 좋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기분 좋은 시간이 길면 길수록 행복하고, 기분 좋은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불행한 것이다.

아주 기막힌 행복의 조작적 정의 아닌가.'




태수 작가의 아내분이 이 책을 읽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니엘 카네만 교수의 행복 이론을 멋지게 실천하고 계신 분인 것만은 확실하다.

이런 훌륭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태수 작가가 부럽다.(부러우면 지는 건데 ㅠㅠ)


그렇다고 해서 나의 전처가 나쁜 사람이었다거나, 내가 가련한 피해자였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냥 우리 두 사람은 너무 달랐던 사람이었다.

성장 배경부터 추구하는 가치관, 아이 양육 방식까지.




얼마 전 1학년 선생님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떠오른다.

연애할 때는 나와 다른 사람이 끌리지만,

결혼은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과 해야 한다고!

그런데 그때는 그걸 미처 깨닫지 못한다고!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학교의 초보자로 태어난다. 특히 청춘은 그 수업료를 가장 비싸게 치르는 시기다."

"젊음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그것을 누릴 줄 아는 지혜는 대개 젊음이 떠난 뒤에 찾아온다."


모두 다 '작자 미상'이다.

때론 몸으로 체화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잔잔한 고백이 이름 높은 철학자의 가르침보다 우리의 가슴에 와닿는 경우가 많다.




며칠 전 블로그에 첨부할 사진을 찾다 보니 앨범이 너무 낡아 있었다.

사실 근 몇 년간은 사진 찾아볼 일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앨범 찾는데도 한참 걸렸다.


문구점에 들러 사진을 넣을 상자를 두 개 구입했다.

사진을 하나하나 꼼꼼히 정리할 만큼 부지런한 성격은 못된다.

그저 상자에 몽땅 담아 서랍장에 넣고, 대신 '윤슬 상자'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 주었다.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뜻하는 '윤슬'이라는 낱말을 붙인 이름이다.

나의 반짝거리는 추억들이 모여있는 상자라는 뜻이다.

먼지 쌓인 과거가 아니라, 내 삶의 반짝이던 순간들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함께 담았다.




‘우울이’가 나의 친구가 되어 주었듯, ‘나비잠’과 ‘보들레’, 그리고 ‘윤슬 상자’ 역시 나의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우울이’가 나에게로 와 꽃이 되어 주었듯이, 나비잠과 보들레, ‘윤슬 상자’ 역시 나에게로 와 꽃이 되어 줄 것이다.




사방 데서 자기들에게도 이름을 지어 달라고 난리다.

이럴 때 필요한 한 마디.

“줄을 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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