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를 잡은 이홍위, 우울을 낚아챈 명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by 김종명

<영화에 관한 스포가 다소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국민학교 시절 나를 가장 크게 울렸던 두 권의 책이 있다.


<트로이의 목마>'와 <사육신 이야기>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에게 죽임을 당했을 때 나는 책을 덮고 한참을 울었다.


단종 복위를 위한 거사 작업에 차질이 생기자, 겁에 질린 '김질'이 세조에게 밀고하는 장면에서는 그가 너무나도 미웠고, 사육신이 처형 당하는 장면에서는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지난 일요일,유해진, 박지훈 등이 출연한 <왕과 사는 남자>를 보았다.


어린 시절 나를 울렸던 사육신과 연결된 이야기였기에 망설임 없이 이 영화를 선택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줄거리에 관한 내용은 스포가 될 수 있으니 패스^^


다만 아직 고민 중이시라면 보시기를 강력 추천.


개인적인 기준으로는 10점 만점에 9.5점 정도.


유해진은 말 그대로 '유해진'했고, 충무로에 새로운 보석이 나타났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이홍위 역을 맡은 박지훈의 연기가 정말 좋았다.


감동과 유머, 그리고 생각할 거리의 균형이 잘 잡힌 웰메이드 영화였다.




나는 영화 전문 블로거가 아니므로 영화스토리나 등장인물에 대한 분석은 내 영역 밖의 이야기다.


또한 이 영화를 다룬 많은 블로거들이 엄흥도 역을 맡은 유해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나, 나는 이홍위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려 한다.


'우울이'와 친구로 지내고 있는 내 상황에 맞추어, '자아 효능감'이라는 주제로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1. 벼랑 끝에서 당긴 활시위: 아이에서 어른으로


영화는 '내가 어떤 상황을 통제하고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믿음'을 뜻하는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을 중심으로 전반부와 후반부가 나뉜다.


전반부의 이홍위는 무기력하고 나약하기만 하다.


계유정난 이후,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 나가는 모습을 견디지 못한 그는 왕좌를 넘겨주고 물러나지만, 결국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희망도 의지도 없는 나날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세조가 보낸 사약이 언제 내려올지 몰라 불안에 떨던 그는 사육신의 환영에 시달리다 결국 절벽 끝에 서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이홍위의 삶을 180도 바꾸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바로 마을 사람들을 위협하는 거대한 호랑이 한 마리와 마주친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호랑이를 보고, 마을 사람들 중 하나가 '호랑이다'라고 하지 않고 '왕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이 호랑이는 세조 혹은 한명회와 같은 거대한 권력의 상징일 것이다.


이홍위에게 '왕(세조)'은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압도적인 권력자이자 포식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홍위는 이 거대한 권력에 겁먹고 위축된 17살의 어린아이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왕좌에서 내려와 벼랑 끝에 선 17살 소년에게, 호랑이의 포효는 이홍위의 내면에 숨어 있던 분노를 깨워 주게 된다.


엄흥도의 아들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을 위기 상황에서, 이홍위는 "네 상대는 나다" 라는 분노의 포효와 함께 활시위를 당겨 호랑이를 처치한 것이다.


그날 이홍위가 날린 활시위는 호랑이뿐만 아니라 세조를 포함한 부당한 권력을 향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그가 쓰러뜨린 것은 한 마리의 짐승이 아닌 자기의 영혼을 짓누르고 있던 무기력함이었을 것이다.


'나와 엮이면 모두 죽는다'는 공포와 죄책감에 뒷걸음질만 쳤던 이홍위는 이 사건 이후 180도 다른 인간이 된다.


호랑이로부터 마을 사람들을 지켜낸 그는, 비로소 남이 지어준 '왕'이라는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는 한 인간 '이홍위'가 되었던 것이다.


자신을 위해 거사를 꾸미다 발각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다 쓰러져간 신하들의 비명 대신, 자신의 용기 덕분에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의 안도 섞인 숨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 소년 이홍위는 비로소 자신만의 성인식을 치르게 된 것이다.


호랑이로 대변되는 거대 권력을 자신의 힘으로 물리침으로써, 자신을 굴복시켰던 세조에게 처음으로 대항할 의지가 생긴 것이다.


그 사건을 통해 '나는 빼앗긴 자가 아니라,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다.'라는 자기 효능감이 이홍위의 마음속에서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호랑이를 물리친 이홍위를 본 마을 사람들의 경외감 가득한 눈빛을 통해 그는 비로소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갈 힘과 의지를 얻게 된 것이다.


이후 이홍위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엄흥도의 아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등 작지만 소중한 자신만의 왕국에서 진정한 왕의 역할을 다하기 시작한다.


즉 '보호받는 아이'에서 '보호하는 어른'으로 한 단계 성장하게 된 것이다.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폐위된 왕'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역사에 기록된 것처럼 이 영화는 해피엔딩이 아닌 새드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자기 효능감'이라는 심리적 각성이 한 인간을 어떻게 성장시키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만은.


2. 나의 유배지에서 찾은 '명쌤'이라는 이름


이 영화가 나에게 유독 특별하게 다가왔던 건,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15년 전 나를 무너뜨렸던 건 이혼과 두 번째 사랑의 실패의 후유증으로 인한 우울증이었다.


정신 병동 입퇴원을 반복하는 딸아이에게는 해줄게 아무것도 없는 무능력한 아버지였고,

학교에서는 승진은커녕 담임조차 맡을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한 교사였으며,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마다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으로서 나는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해준처럼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홍위는 세조에 의해 강제로 유배당했지만, 나는 내 스스로를 유폐시켰다.


그 유배지 안에서 홀로 외로이 나와 세상을 향해 싸우고 있었다.


아니 싸울 의지도 없이 하루하루 무기력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처음으로 자기효능감을 느끼게 해 준 건 2018년 솔안초에 부임하면서 만난 아이들이었다.


무기력하기만 나 자신을 알았기에, 또 4년 만의 담임이었기에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의외로 아이들과 캐미가 잘 맞았다.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를 능가할 정도로 아이들과 나와의 호흡은 잘 맞아들어갔고 5월에 진행된 수학여행을 통해 아이들과의 깊은 유대감이 형성되면서, 승진은 포기했지만 아이들에게 멋진 추억을 선물해 준 교사라는 자기 효능감의 작은 씨앗이 내 안에 움트기 시작했다.


발아를 시작한 자기 효능감의 씨앗은 3개월 동안 임시로 맡은 학교 친목회장 활동을 통해 조금씩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선생님들과의 1박 2일의 소무의도 여행을 잘 마무리하면서, '정말 재밌는 여행이었다.'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어줘서 고마웠다.'라는 칭찬과 격려를 받았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삶이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다.


다음 해 체육전담 및 체육부장을 맡으면서 아이들에게 '명쌤'이라는 별칭으로 나를 불러달라 부탁했다.


최소한 교사로서는 더 이상 무너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외로 아이들은 나의 별칭을 좋아해 주었고, 학교 여기저기서 '명쌤'하며 나에게 다가와 주었다.


아이들에게 재밌는 체육수업을 선물하기 위해 유튜브와 온라인 교사 동호회에 가입하였고, 수요 배드민턴 클럽을 조직해 아이들에게 배드민턴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후로 약간의 부침은 있었지만, 나의 자기 효능감 그래프는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려 가고 있었다.


그리고 2025년 대한민국 주식 시장처럼 나의 그래프도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1학년 선생님들과 배드민턴부 아이들 덕분이었다.


에너지 넘치는 1학년 선생님들과의 수다를 통해, 배드민턴부 아이들의 작은 성공(시대회 우승, 도대회 8강 진출) 덕분에 나는 내 교직생활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 것이다.


3. 하락장을 버티는 힘: 글쓰기와 필사


하지만 오늘, 나의 자기 효능감 그래프는 대형 악재를 맞아 하한가를 맞고 말았다.


이틀 연속 하한가다.


어제는 아버지의 요양원 입원이라는 대형 악재를 만나 하한가를 맞더니, 오늘은 2026 친목회장을 맡으면서 야심 차게 추진하고자 했던 '여름 친목 여행' 프로젝트가 무산되는 악재를 맞은 것이다.


오후 내내 우울한 기분이 계속되었다.


퇴근길에 나의 계획을 계속 반대하셨던 선생님을 만났지만 선뜻 먼저 인사를 건네지 못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나는 은근 뒤끝 있는 소심한 남자다. ㅠㅠ


거울 앞에 비친 내 모습에서 15년 전 내 얼굴이 겹쳐 보여 깜짝 놀랐다.


얼마전 썼던 '대마무 성장통'에 관한 캘리그래피 작품을 꺼내 보았다.


그래! 대나무처럼 속을 비워야만 한다.


오늘의 이 좌절은 내일의 내가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해 줄 단단한 마디가 되어줄 것이다.


'어떻게 계속 상승 곡선만 그릴 수 있겠는가?' 하며 내 마음을 달랬다.


상승장이 있으면 하락장도 있는 법을 알기에 이제는 하락장에서도 버티는 법을 조금은 안다.


선생님들과의 교감의 폭을 넓히고, 그들이 나의 진심을 알아줄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한다.




저녁을 먹고, 노트를 꺼내 나희덕 시인의 '산속에서'를 필사했다.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퇴근 후에도 나를 위로해 주시던 1학년 선생님들과의 카톡이 생각났다.


나에게는 나의 손을 맞잡아주는 최소한 4명의 선생님이 계신다는 생각에 든든해지는 내 마음을 느낀다.


학교에서 미처 하지 못한 홈트를 하고, 메모장을 열어 이틀째 마무리하지 못한 '왕과 사는 남자' 관람 후기를 쓰고 있다.


왠지 오늘은 글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써 내려가면서 조금씩 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기 시작함을 느낀다.


나에게는 '글쓰기'와 '글씨 쓰기'가 자기 효능감의 하락장을 막아주는 저항선 역할을 해 주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글쓰기'와 '글씨 쓰기'가 있어 참 다행인 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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