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치타델레'를 찾아서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에서 제일 좋아하는 에피소드다.
이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20년 전의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와서 쓴 글만 같았다.
가정, 학교, 소모임 등 내가 속한 곳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결하지 않고서는 마음이 불편해서 살 수가 없었던, 그러나 내 자신에 대한 문제만큼은 어디서도,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못한 채 끙끙 앓던 내가 떠올라 울컥했다.
그 모든 것이 곪고 곪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렸던 15년전, 나는 요새 안에 있는 나만의 작은 방, 치타델레(Zitadelle)을 찾아 다녔다.
상처 입은 곰이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자신만의 동굴을 찾아 다니듯이.
9년전 솔안초 '체육 전담실'이라는 나만의 '치타델레'를 찾고서야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챙겨야 할 것, 챙겨야 할 사람, 챙겨야 할 모든 감정들'에서 벗어나 나 자신만을 치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떤 감정조차 책임질 수 없을 만큼 힘든 날, 마음속이 온통 타인의 감정으로 가득해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그런 날'이 오면 나는 그곳에서 나 스스로를 포옹(나비 포옹, 버터플라이 허그)하며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다행히 그 시절 나를 위로해주던 친구들이 몇 있었다.
음악과 캘리그래피 그리고 필사였다.
아이유의 '무릎'을 들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헤매고 있는 그 길도 길입니다'를 쓰며 먹물처럼 어둡기만한 내 앞에도 환한 길이 보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따라 쓰며
'나 하늘로 돌아가는 날,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수 있도록 살아야겠다고 수만번 다짐했다.
다행히 5년간 내 친구들과 관리자분들, 그리고 주위 선생님들 덕분에 나는 조금씩 회복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5년간의 솔안초 생활을 끝내고 현재 근무하고 있는 이 곳 중동초로 옮기게 되었다.
이제는 내 주위에 있는 '남들보다 서너배쯤 큰 감정의 안테나'를 지니고 계신 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이 책을 선물했던 나의 제자 주0가 떠올랐다.
30년전, 12살의 나이에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자신의 전부였던 바이올린을 포기하면서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다.
그래서일까, 신은 이 아이에게 너무 많은 짐을 한꺼번에 맡겨 버리셨다.
첫째 역할까지 다 하고 있는 둘째 딸,
아직 엄마의 손길이 두루 미쳐야 하는 두 딸의 엄마,
듬직하기는 하지만, 가난한 집의 맏아들인 남편과 시댁을 챙겨야 하는 맏며느리 역할까지 너무 버거워 보인다.
사실 허리 디스크 등 몸 상태가 안좋아 본인 몸 추스리기도 벅찬 상태인데 말이다.
게다가 얼마전 사랑하는 아버지를 갑작스레 하늘로 떠나보내고 그 허망한 마음을 어떻게 달래고 있는지 걱정이다.
나태주 시인의 말씀처럼, 부모의 부재는 마치 담장이 무너진 것과 같으리라.
비록 낡은 담장일지언정 모진 바람을 막아주던 그 담장의 한쪽이 사라졌으니, 그 상실감과 허망함을 어찌 말로 다 할까.
걱정만 앞세우며 바쁜 학교 일을 핑계로 찾아가 보지 못한 내 마음만 한없이 무거울 뿐이다.
우리학교에도 두 분의 선생님이 계신다.
두 분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누군지는 밝히지 않겠다.
2년간 지켜본 한 분께는 작년에 이 책을 선물했다.
책상 위에 놓인 책을 보긴 했는데 다 읽으셨는지는 모르겠다.
나머지 한 분에게는 오늘 책을 선물했다.
부디 나에게 조용한 평화를 주었던 이 책이 두 분에게도 똑같은 평화를 선물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치타델레'를 이미 실천하고 계신 선생님도 계신다.
역시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어느 분이신지는 밝히지 않겠다.
다만 지금 읽고 있는 이화열 작가의 <서재 이혼 시키기>를 선물할 계획이다.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던 두 사람이 서재를 분리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세계를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건강하게 공존하는 법을 배웠던 과정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책이라 그분께 도움이 될 것 같다.
참고로 '치타델레'가 제일 필요한 혈액형은 AB형이라고 그분께서 알려주셨다.
본인이 바로 AB형이라면서.
반대로 치타델레가 제일 필요치 않은 사람은 B형이라고 하신다.
오잉! 내 혈액형이 B형인데!
참! 다행스럽게도 올해는 1학년 소속이 되었다.
작년 1학년 선생님들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시고 이전과 달라진 내 모습의 원인이 저거였구나 판단하신 관리자분들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역시 관리자는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균형'이 핵심이다.
'치타델레'가 치유의 성소(聖所) 가 되기도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스스로를 가두는 유폐의 감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에너지 충전소인 1학년 연구실과 나의 '치타델레'인 과학실(너무 자주 비워줘야만 해서 반쪽짜리 치타델레이긴 하지만)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으려 노력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