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만약에'는 아직 쉼표인가요?

아니면 마침표인가요?

by 김종명

<이 글에는 영화 '만약에 우리'에 관한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어제 아침, 영화 <만약에 우리>를 다시 보았다.


방학 중에 영화관에서 처음 봤을 땐, 1시간 40분 내내 우느라 제대로 보지도 못했던 영화였다.


꼭 다시 보겠노라 마음먹었던 작품이기에, 좋았던 대사들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적어 내려가고 싶어 유플러스 영화관을 통해 거금 8,800원(유플러스 멤버십 할인)을 들여 다시 보았다.




두 번째 보는데도 왜 이리 눈물이 나오던지.


영화관과 달리 일시 정지 버튼 덕분에 실컷 운 뒤 다시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렇게 멈춰 서기를 반복하며 소중한 대사들을 가슴에 받아 적었다.




2018년 중국에서 개봉한 <먼 훗날 우리>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10년의 세월을 가로지르는 두 남녀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재회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헤어진 연인들의 슬픔을 짜내는 신파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사랑은 시작보다 마무리가 더 중요하다'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주는 영화다.




내가 이 영화를 해석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사랑의 완성은 좋은 이별에 달려있다.' 것이다.


사랑은 시작하는 설렘보다, 어떻게 마침표를 찍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얼마 전 봤던 드라마 '경도를 기다리며'에서 세영이가 지우에게 해 줬던 말이 떠오른다.


"난 있잖아."


"누구든 잘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야 정확하게 슬프던지 후련하던지."


"너랑 경도는 다시 만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제대로 헤어지면 좋겠어."


사실 사랑을 시작하는 건 쉽다.


'사랑에 빠지는 게 죄는 아니잖아'라고 외쳤던 어느 아저씨의 외침처럼 사랑은 갑자기 찾아오기도 하니까.


하지만 사랑을 제대로 마무리하는 건 참 어렵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 공유를 넘어 서로의 일상과 습관을 나누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별은 그 익숙한 궤도에서 나를 강제로 이탈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상처 주지 않으려는 이기심 때문이기도 하다.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서, 혹은 상대가 무너질까 봐 결론을 회피하다 결국 지저분한 마무리가 되기 일쑤인 것이다.

'진심 어린 직면'보다는 '비겁한 외면'이 당장은 편하니까.




나 또한 13년간 함께했던 이와 이혼을 했고, 이혼 후 만났던 두 번째 사랑과도 좋지 않은 이별을 겪어야만 했다.


첫 번째 이혼은 약간의 갈등은 있었으나, 상호 합의에 의해 비교적 명확히 매듭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이별은 여전히 내게 숙제로 남아 있다.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어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2주라는 시간 동안 내게 보여준 그녀의 말과 행동들을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별의 과정에서 겪은 그 혼란스러운 경험은, 왜 뉴스에 비극적인 데이트 폭력이나 비극적인 이별 사건들이 자주 오르내리는지 절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마무리가 되지 않은 감정은 때론 한 사람의 영혼을 파괴할 만큼 위태롭다.


지금도 기회만 된다면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결국 사랑이란 차마 하지 못한 말들과 끝내 확인하지 못한 진심 사이에 자리한 감정이며, 잘 끝내지 못한 사랑은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남아 나와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글을 그녀에게 보낼지 말지 고민 중이다.




이 영화를 해석하는 두 번째 키워드는 '만약에'다.


영화 후반부쯤에 은호가 정원에게 이렇게 묻는 장면이 나온다.


"만약에 우리가 그 좁은 반지하 방으로 이사 가지 않았다면?"


"만약에 네가 나를 조금 더 기다려줬다면?"


"만약에 그날 지하철에서 내가 널 잡았다면?"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질문들에 '그랬다면 우린 행복했을 거야'라는 정답은 없다는 것을.


환경(반지하), 타이밍(기다림), 그리고 찰나의 용기(지하철)에 대한 이 가정들은 우리가 이별할 수밖에 없었던 수만 가지 이유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결국 '만약에'는 떠나간 연인을 붙잡는 주문이 아니라, 남겨진 내가 나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처절하게 휘두르는 채찍과 같다는 것을.




후회에는 '한 일에 대한 후회'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가 있다.


'한 일에 대한 후회'는 오래가지 않는다고 한다.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잘못되었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라고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 일을 했다면' 발생했을 수만 가지 가능성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기 때문이다.


'만약에 2014년 4월 10일, 내가 그 차를 따라가지 않았더라면'


이 '만약에' 역시 내가 나에게 휘두르는 채찍일 뿐임을 이제는 인정하려 한다.




내가 이 영화를 해석하는 마지막 키워드는 'BCD'다.


B(Birth)


C(Choice)


D(Death)


장-폴 사르트르의 유명한 격언인 'Life is C between B and D(인생은 탄생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다)'를 인용해 이 영화를 해석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버스 안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사랑의 탄생((Birth) 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과정에서 수많은 선택(Choice)을 했고,


마지막에 이별이라는 관계의 죽음(Death)을 맞게 된다.


즉 우연히 피어난 사랑(B)은 수많은 갈림길에서의 선택(C)으로 인해 때로는 찬란했고 때로는 비참했다.


그리고 그들이 마주한 이별(D)은 관계의 끝인 동시에, '만약에'라는 미련의 굴레에서 벗어나 비로소 서로를 인간으로서 이해하게 되는 성숙한 마침표였던 것이다.


결국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잘 헤어진다는 것은, 우리 사이에 내린 수많은 선택(C)들을 원망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 영화 후기를 쓰는 것으로 나의 '만약에'와 '선택'에 대한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혹시 당신의 기억 속에는 아직 마침표를 찍지 못한 '만약에'가 남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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