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슈필라움' 꾸미기
며칠 전, 나만의 치유의 성소, '치타델레'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솔안초에서의 내 ‘치타델레’였던 '체육전담실' 이야기부터 현재 근무하고 있는 중동초에 있는 나의 치타델레, 과학전담실.
그리고 ‘치타델레’가 치유의 성소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스스로를 가두는 유폐의 감옥이 될 수도 있기에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까지 말이다.
최근 다시 읽고 있는, 김정운 작가님의 책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에서는 '치타델레'와 비슷하지만 좀 더 확장된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슈필라움((Spielraum)’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전문을 옮겨보면 이렇다.
'놀이(Spiel)'와 '공간(Raum)'이 합쳐진 '슈필라움'은 우리말로 '여유 공간'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아이들과 관련해서는 실제 '놀이하는 공간'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뜻한다.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단어다.
작가님은 평생을 '가장'과 ‘직업인'이라는 사회적 역할에만 매몰되어 정작 '나 자신'이 머물 곳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중년 남성에게 '슈필라움'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고 있다.
즉 '슈필라움'이라는 이 공간이 부재할 때, 중년의 남자는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고 급격한 무력감에 빠지기 쉬우며, 반대로 자신만의 공간이 있을 때 비로소 삶의 주도권을 회복한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여자들에게도 '슈필라움'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여자들에게는 '화장대'라는 작은 '슈필라움'이라도 있는 반면에, 남자들에게는 그 작은 공간마저도 없기에, 자신의 존재가 확인되는 유일한 공간인 자동차, 그리고 운전석에 집착하게 된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대한민국 남자들이 내 차 앞으로 끼어드는 차에게 분노의 경적을 누르고,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자연인'을 넋 놓고 보는 현상을 이 '슈필라움'이라는 단어로 해석하고 있다.
또한 '남들에게 방해받지 않은 자신만의 공간', 즉 슈필라움을 확보하기 위해 승진에 목을 매며, 그 어렵게 확보한 공간을 골프 트로피나 무의미한 상패들로 채우고 있는 대한민국 중년 남성들의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슈필라움’은 단순한 나만의 공간을 넘어서, 내 취향과 관심이 구현되는 곳이어야 하며, '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한 공간,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은 공간, 온갖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그리고 실제로 2018년 초, 그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여수에 내려와 외딴섬에 있는 미역 창고를 개조해 자신의 작업실인 ‘미역창고(美力創考,아름다움의 힘으로 창조적인 생각을 한다.)’를 만드셨다.
나도 이름 짓기를 좋아하지만, 김정운 작가님의 작명 센스는 나보다 한 수 위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분은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셨지만, 나는 경인교대 교육대학원에서 특수교육 석사학위를 받았기 때문이다. ㅋㅋ
(경인교대 교육대학원을 무시하는 건 아니니 절대 오해하지 마시길 ㅋㅋ)
그분은 일본 교토사가예술대학 단기 대학부에서 일본화를 전공한 나름 유학파시지만, 나는 미술교육이라곤 동네 미술 학원에서 2년간, 그것도 중간중간 쉬면서 배운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ㅋㅋ
참고로 김포시 장기동에 위치한 ‘나를 위한 시간’ 미술학원 원장님은 우리나라 천재들만 간다는 한예종 회화과를 졸업하신 능력자시다.
덕분에 미술 쪽으로는 완전 똥손인 나를, 모사가 대부분일지언정 이만큼이나마 그릴 수 있도록 해 주신 고마운 분이시다. ^^
또한 그분의 과감한 실행력도 부러운 게 사실이다.
실제로 그분은 '노는 만큼 성공한다'라는 책을 쓰신 후, 전국 각지를 돌며 대한민국이 더 놀아야 한다고 강연하고 다녔지만, 정작 자신은 제대로 '놀지 못했다’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직업인 명지대학교 교수직을 내려놓고 만화를 배우기 위해 일본 유학을 떠나신 분이다.
이 역시 책을 7권 이상 집필하신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대학교수로 재직 중인 아내분을 두고 계신 작가님과, 아직 한 권의 책도 출간해 보지 못한, 87명의 팔로워만을(너무나 감사한 저의 팔로워님들) 보유한 브런치작가이자, 아내도 없는 외벌이 신세의 교사라는, 그분과 나의 현실적인 차이 때문이다. ㅋㅋ
아! 우울감을 극복하기 위해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점점 더 우울해지는 이유는 뭘까? ㅋㅋ
부러우면 지는 건데, 김정운 작가님이 너무 부럽다. ㅋㅋ
하지만 부러워만 하다가 글쓰기를 멈추고 싶진 않았다.
이혼 후 딸아이에게 안방을 빼앗기고(?) 현재 작은방을 쓰고 있다. ㅠㅠ
나 역시, 작지만 소중한 공간인 작은방을 나만의 '슈필라움'으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내게는 여수 앞바다가 보이는 '미역창고(美力創考)'는 없어도, 아파트 중앙공원이 한눈에 보이는, 나를 온전히 품어주는 아늑한 방과 그 방 안의 작은 책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도 용기를 내어 내 방에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이름하여 '붓노리터'
이 '붓노리터'에는 '필사'와 '캘리그래피'라는 나만의 놀이(Spiel)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나'이게끔 지탱해 주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인 '글쓰기'가 이루어지는 나만의 공간(Raum)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나의 반려 이불 '보들레'와 추억이 깃든 '윤슬상자'가 곁을 지키고 있다.
내가 나로서 숨 쉬고 웃을 수 있는 이 작은 '붓노리터'가 있기에, 이제 나는 김정운 작가님의 '미역창고(美力創考)'가 크게 부럽지 않다.
(물론 100% 진심은 아니다. ㅋㅋ)
거실에 있던 반려 식물들을 작은방으로 옮기고 예쁜 화분 몇 개를 새로 들였다.
서툰 솜씨지만 정성껏 모사한 작품(?)도 액자에 넣어 책상 앞에 두었다.
문득 방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침대가 눈에 거슬려 새로 살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 침대를 사려는 건지, 오래되거나 불편해서 사려는 건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결론은 역시 전자였다.
영산강 환경 관리청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했고, 한때나마 환경교육에 관심을 갖고 학교에서 관련 활동(그린 스카우트)을 진행했으며, 지금도 과학 수업을 할 때면 지구를 위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리사이클 운동에 동참할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나였기에 '글을 쓰기 위한 연출'로 멀쩡한 가구를 버리는 것은 스스로 허락할 수 없었다.
'슈필라움'은 화려한 물건으로 채우는 곳이 아니라, 내 가치관과 편안한 선택으로 채우는 곳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련되고 값비싼 물건들은 없지만, 내 손때 묻은 물건들과 직접 그린 그림이 있는 액자, 그리고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내 고집이 담긴 이 '붓노리터'가 나는 참 좋다.
오늘 밤에도 나는 이곳에서 '보들레'를 덮고 '나비잠' 노트에 필사하며 가끔 '윤슬 상자'를 열어볼 것이다.
남들의 화려한 공간을 부러워하는 경적 소리는 잠시 끄고, 오직 내 마음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면서 말이다.
천리향 나무에 꽃망울이 맺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