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중동초 운동회를 앞두고
"운동회, 학부모 참관에 대해 작가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희 학교는 4월 28일부터 30일까지 3일간에 걸쳐 진행될 학년군별 운동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에 앞서 며칠 전 교감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학부모 참관 여부 희망'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사실 이 질문은 매년 되풀이되는, 그러면서도 매번 첨예한 갈등의 불씨가 되는 난제이기도 합니다.
저희 학구는 맞벌이 가정의 비율이 절반을 훌쩍 넘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의 참석이 아이들에게 줄 정서적 유대감과 학교 교육의 이해도를 높인다는 찬성 측의 기대보단, 생업이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부모님이 참석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겪게 될 심리적 위축과 소외감을 걱정하면서 '아이들만의 운동회'로 치러지기를 바라는 반대 측의 목소리가 더 높은 게 사실입니다.
그런 연유로 작년 운동회 역시 학부모 참관 없는 운동회로 추진되었고요.
학교 관리자분들과 동료 교사들 역시 민원과 트집을 경계하는 방어 기제 탓에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하지만 찬성 측의 요구 또한 만만치 않기에, 결국 학교는 '설문조사'라는 가장 간편하면서도 책임 회피적인 방식으로 이 논쟁을 매듭지으려 했던 것입니다.
반대 의견이 더 높게 나올 것을 알기에, 학부모 참관 없는 운동회를 추진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설문조사 결과'를 활용하려 했던 것이지요.
그렇기에 교감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학부모 참관이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측면을 조금 더 강조하는 가정통신문을 작성해야 했던 저의 마음은 참으로 무겁고 불편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악역을 맡아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설문 조사 결과는 관리자분들의 예상을 살짝 빗나갔습니다.
찬성 52%, 반대 48%로, 찬성 측 의견이 더 높게 나온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1-2학년에서는 찬성 측 의견이, 3-6학년에서는 반대 측 의견이 더 높게 나온 것입니다.
결국 오늘 기획위원회 회의를 통하여, 1-2학년군 운동회는 학부모 참관을 허용하고, 3-4, 5-6학년군 운동회는 참관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지었습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학부모 참관을 적극 지지하는 입장입니다.
적어도 '1-2학년군 운동회'만큼은 학부모 참관을 허용해 주는 것이 옳다고 믿습니다.
인생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찬란하고 눈부신 시절, 부모의 눈에 가장 사랑스럽게 담길 그 찰나의 순간을 학부모님께 선물해 드리는 것은 학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올해 운동회는 제가 가장 원하는 방식으로 치러지게 되었습니다.
지난 며칠간의 논란을 지켜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든 '하향 평준화'의 논리가 교육의 본질마저 흔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반대 측에서 늘 내세우는 근거가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부모님이 참석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받을 마음의 상처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우리 사회를 후퇴시키는 '하향 평준화'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못 가니 아무도 가면 안 돼!"
물론 아이들이 받을 마음의 상처, 쉽게 무시해버려도 되는 그런 부분은 아닐 겁니다.
영원히 기억될 쓰라린 상처가 될 수도 있겠지요.
더욱 세심히 살피고 챙겨야 할 부분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커피 소년'의 노래 가사처럼 '상처는 별이 될 수 있다' 믿습니다.
오히려 이런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마음의 매듭을 키우고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린 꽃길만 걸으며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도종환 시인의 표현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며,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습니까.
결핍이나 소외를 무조건적으로 차단하기만 하는 '온실 속 교육'은, 아이들이 스스로 상처를 딛고 일어설 마음의 근육을 키울 기회를 뺏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부모의 지나친 보호가 아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일어설 수 있는 심리적 면역력을 키울 기회를 빼앗아 버리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두 번째는, 학교 관리자가 견지해야 할 '교육적 중심'에 대한 생각입니다.
이번 과정을 지켜보며 이솝우화 '당나귀를 팔러 가는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길을 가며 만나는 사람들의 참견에 휘둘려 당나귀를 타고 가다, 걷다, 결국 아들과 아버지가 당나귀를 장대에 매달고 가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말입니다.
교육공동체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경청의 자세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끝에는 반드시 '무엇이 아이들에게 가장 교육적인가'라는 단단한 원칙이 서 있어야 합니다.
관리자란 갈등을 회피하기 위해 '다수결'이라는 방패 뒤에 숨는 사람이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소간의 논란을 감수하고서라도 '교육적 가치'라는 깃발을 들고, '나를 따르라'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일찌감치 승진의 길을 포기한 저의 입장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럴만한 리더십도, 그런 갈등을 조정할 만한 깜냥도 부족한 사람임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제부터가 진짜 숙제의 시작입니다.
학부모가 참관하는 운동회든, 그렇지 않은 운동회든,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운동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지 못하는 부모님을 둔 아이들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낼지, '하향 평준화'가 아닌 '상향 평준화'된 축제를 만들기 위해 학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 고민이 다시 제 몫으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배려'와 '교육' 사이의 줄타기는 늘 어렵기만 하네요.
작가님들의 학교 혹은 직장에서는 이런 '하향 평준화'의 고민을 어떻게 풀어가고 계신가요?
정답은 없겠지만, 함께 나누는 이야기 속에 더 나은 답은 있으리라 믿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주인공들처럼.
댓글로 지혜를 나눠주세요!"
그럼 고운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