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꽃보다 아름다운 '진짜 선생님' 이야기
<이 글은 2026년 1월 18일 작성한 글입니다>
"케이크를 삼등분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교실마다 서너 명씩 숨어 있다면, 당신은 믿으시겠습니까?
동그란 케이크 그림을 삼등분하지 못하는 아이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등분'의 개념이 누군가에게는 넘지 못할 거대한 '벽'이 되기도 한다.
지금도 대한민국 교실 안, 14%라는 통계 속에 숨겨진 이 '느린 학습자'들의 좌절과, 한편으로는 그들을 위해 사랑을 아끼지 않으시는 선생님들을 생각하며, 오늘 '명쌤의 31년 교실 분투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미야구치 코지의 저서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
이 책은 일본의 아동정신과 의사인 미야구치 코지 박사가 의료 소년원에서 근무하며 '경계선 지능 아이들'을 추적 관찰해 작성한 일종의 보고서 형태의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범죄를 저지르는 상당수의 청소년들이 경계성 지능 장애, 즉 인지 장애를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해 범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재수감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소년원에 수감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상담활동을 진행하면서, 인지 기능이 떨어져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여기 케이크가 있어요"
"세 명이 함께 먹는다면 어떻게 자르면 좋을까요?"
"모두 같은 양을 먹을 수 있게 잘라보세요."
놀랍게도 상당수 아이들이 아래 그림처럼 삼등분하지 못했다.
이러한 인지적 결함은 본인의 행동에 대한 성찰과 예측 가능성을 어렵게 만든다.
즉, 메타인지가 작동하지 않아, 사건의 인과관계를 설계하는 '사고의 틀'을 만들어내지 못하며, 결국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측하지 못한 채 범죄를 반복해서 저지르게 된다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경계성 지능 장애, 예전에는 '학습부진아'. '학습지진아', '산만한 아이' 등으로 불렸다.
다행히 요즘은 '느린 학습자'라는 말로 순화되어 사용되고 있으며, 통계학적으로 전체 학습자의 14%에 이른다고 보고되고 있다.
즉, 한 반에 25명의 아이들이 있다면, 그중 서너 명은 이러한 경계성 지능의 아이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학급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이런 유형의 아이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사실 발령 초기부터 학급에서 이런 아이들을 자주 만났었다.
답답했다.
특수학교나 특수학급에 갈 정도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교수 방법이나 생활지도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아이들.
당시 나는 학급 담임을 맡으면,
'어깨동무하는 0반'이라는 슬로건으로 학급을 운영했었다.
어울림 활동을 통해서
나 자신과 친구의 소중함을 깨닫고
함께 하는 동행 프로그램을 통해
학교폭력과 포기자가 없는(無) 0반이 되자는 의미였다.
아무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학습지진아', '학습 부진아', '조금 산만한 아이들'이라고 불리며 소외받고 있던 그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다.
2002년, 발령 6년 차에 경인교육대학교 교육대학원 특수교육 전공에 지원했다.
지원 동기를 묻는 교수님의 질문에,
저의 고민을 설명드리면서 '경계성 지능 장애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마침 교수님도 그 분야에 관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계시다며 반가워해 주셨다.
입학 후 특수교육과 교육과정을 밟아가면서, '경계성 지능 장애'에 관해 공부했다.
교수님과 관련 프로젝트도 몇 개 진행했다.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전문가라고까지 할 순 없지만, 그 후 만난 아이들에게는 좀 더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었고, 선생님들 대상으로 관련 연수도 진행하면서, 경계성 지능 장애 학생을 지도하는 데 있어 겪는 어려움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드렸다.
책을 읽으면서 작년 1학년 선생님들 중, 이00 부장님과 백00 선생님(경인교대 특수교육과 출신이기도 한)이 떠올랐다.
자칭 타칭, '큰 도라희'와 '작은 도라희'로 불리는 선생님들이시다.
작년 운동회에서도, 아이들 댄스타임에 본인들이 더 광분해서 춤을 쳐 주신 덕분에 운동회 분위기를 한껏 올려주신 분들이다.
이분들은 학급 관리에서도,
도라희적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신다.
서로 통합학급을 맡으시겠다며,
귀여운 다툼을 벌이신다.
다행히 작년에는 대상 학생이 2명이어서,
사이좋게 나눠서 가르칠 수 있었다.
근데 올해 신입생 중에는,
통합학급 대상 아이가 없다고 시무룩해하신다.
(올해도 1학년 담임으로 확정된 상태임)
작년에 가르쳤던 아이를 유급시켜서,
계속 가르치면 안돼냐며 특수학급 담당 선생님께 조르신다.
사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학습지도 및 학부모 민원 등의 어려움 때문에 통합학급 맡는 걸 꺼려하신다.
그래서 학교와 교육청에서는 통합학급 담당 교사에게 성과급 및 전보 내신 가산점 등의 인센티브를 주기도 한다.
근데 이분들은 인센티브 때문에 그러시는 게 아니다.
그냥 그런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좋아서 그러시는 거다.
백00선생님은 본인 스스로 '평강공주 스타일의 교사'라고 이야기하신다.
아이들에 관한 애정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자주 툴툴대시기는 하지만, 두 아이뿐만 아니라 전체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넘쳐나시는지, 자연스레 느껴지는 선생님들이시다.
그 따뜻한 사랑 덕분일까?
아이들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런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는, 방법론적인 접근도 중요하지만, 그 바탕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걸 느끼게 해 준 선생님들이시다.
결국 머리(Head)를 깨우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가슴(Heart)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 선생님들이시다.
아이유도 노래하지 않았던가!
'Love wins all'
또한 두 아이뿐만 아니라,
반 전체 아이들에게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느껴졌다.
1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놀이 활동 수업을 들어가기 때문에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놀이 규칙을 이해하지 못해 겉돌던 아이에게 친구들이 다가가 친절히 설명해 주고, 그 아이의 작은 성공에도 함께 환호해 주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친구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깨달은 아이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보석보다도 더 빛나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런 게 진짜 통합교육이다.
통합교육은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Zero-sum 게임이 아니라, 모두가 위너가 되는 Win-win게임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수교육에 관한 이론은 내가 앞설지 몰라도, 아이들의 닫힌 세계를 사랑의 힘으로 기어이 열어젖히는 그들은 내게 '진짜 선생님'이다.
그 눈부신 사랑 앞에,
나는 오늘도 교사라는 이름의 무게를 새로이 배운다.
후배 선생님들이지만,
진심으로 존경하고, 기꺼이 추앙하지 않을 수 없다. &*
꽃은 스스로 피어나지만,
'아이'라는 꽃은 누군가의 사랑이 있어야만 개화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사람보다 꽃이 예쁘다'던 어제의 혼잣말을 거두고, 오늘은 '꽃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도 많다'라고 조용히 고백해 봅니다.
부디 이들의 사랑이 세상 끝까지 닿아,
꽃보다 눈부신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봄날을 꿈꾸어 봅니다.
저 역시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