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뿐인 수업, 그 무겁고도 귀한 울림에 대하여
며칠전 이웃 블로거(책먹보심선생님의 독서와 교실)의 글 한 구절이 내 얼굴을 화끈거리게 했다.
요즘 나의 수업 행태를 정확히 꼬집고 계셨기 때문이다.
옮겨 보면 이렇다.
'첫 반 수업이 조금 아쉽지만 4차시 수업은 첫 반에 힘을 더 줘야겠습니다.'
(심선생님의 첫 반 수업이 소위 망했다는 의미는 아닐겁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지금까지 나의 전담 수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올해는 더하다.
지난 3년간, 1학기엔 항상 6학년 과학 수업을 맡아 했다.
첫해, 오랜만에 맡은 과학 수업이었기에 조금 헤매기도 했지만, 2009년 석정초에서 근무하면서 했던 과학 수업 및 수업실기대회 참가 경험을 떠올리면서 꾸역꾸역 수업을 꾸려갈 수 있었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의 반응이 좋았던 활동이나 이야깃거리등을 교과서 한쪽에 기록해 놓았다.
손때 묻은 그 기록들은 나를 지탱해 준 든든한 지도였고, 덕분에 작년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6학년 과학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학교 사정으로 인해 1학기에 4학년 과학 수업을 맡게 된 것이다.
3년동안 걸어왔던 익숙했던 길 대신 새로운 길이 내 앞에 놓이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정성들여 만들어 놓은 6학년 수업 자료들을 활용하지 못하고 새로이 4학년 수업 자료를 만들어야 했기에, 살짝 화가 나기도 했지만, 3년전 안전수업을 함께 하면서 즐겁게 수업했던 아이들이었기에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또한 홀로 걷는 길이었다면 막막했겠지만, 다행히 '교사, 블로그를 하다'라는 따뜻한 울타리 안에서 동료들의 지혜를 나누어 가질 수 있었다.
최근에는 'NotebookLM'이라는 똑똑한 길동무까지 소개 받았다.
교과서 해당 페이지를 스캔한 후 파일로 불러오기만 하면 '명쌤의 SECRET 과학수업'이라는 컨셉에 맞게 세련된 PPT를 뚝딱 만들어주는 똑똑한 친구다.
참고로 '명쌤의 SECRET 과학수업'은 아래와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Student-Centered Science(학생 중심 과학)
Experiment-Based Science(체험 기반 과학)
Creativity-Focused Science(창의성 중심 과학)
Research-Oriented Science(탐구 중심 과학)
Easy and Fun Science(쉽고 재밌는 과학)
Together Science (협력 중심 과학)
6가지 중점 활동을 통해 '과학의 비밀(SECRET)을 찾아가자'는 의미로 지은 나만의 과학 수업 브랜드이다.
2009년, 수업 실기 대회에 참가하면서 사용했던 주제로 17년째 사골국처럼 우려먹고 있다. ㅋㅋ
17년 된 진한 사골국에 AI라는 최신의 고명을 얹어 더 맛있게 우려먹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 삼고 있다.
하지만 PPT는 어디까지나 보조 자료일뿐, 수업은 교사와 아이들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진행된다.
NotebookLM이 세련된 자료를 만들어주긴 하지만, 그 자료에 숨을 불어넣고 아이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건 결국 교사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때 제일 중요한게 교사의 발문이다.
어떤 질문을 던져주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반응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4학년 6개 반을 오가며 수업하는 전담 교사인 내게, 늘 첫 번째 수업은 일종의 '테스트용'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수업의 대략적인 얼개만 짜놓은 채, 아이들의 반응을 보며 허점을 메워가는 과정으로 6개 반의 수업을 진행해 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차시를 거듭할수록 수업의 완성도는 높아졌지만, 정작 나의 첫 시도를 온몸으로 받아낸 '첫 번째 반' 아이들에겐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게 사실이었다.
사실 아직도 의문이다.
수업 계획 때는 미처 생각나지 않던 좋은 아이디어나 발문들이 왜 수업을 시작하면 그제서야 비로소 샘솟는 것일까?
아마도 수업은 정적인 '계획서'가 아니라, 아이들의 눈빛과 대답, 교실의 공기가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살아있는 호흡'이기 때문이 아니지 않을까?
얼마전에 아이들은 교사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파악되어지는 입체적인 존재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수업 역시 교사와 아이들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지는 입체적인 결과물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수업은 살아있는 생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득 2년 전, 전담수업을 위해 들어갔던 어느 젊은 선생님의 교실 모니터 귀퉁이에서 보았던 문구가 떠올랐다.
정확한 문장은 아니겠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오늘 이 수업을 다시 한다면 '더 잘할 수 있을텐데'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이 수업은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단 한 번뿐인 수업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아이들에게 다가올, 오직 한 번 뿐인 그 모든 수업들에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
무겁고도 귀한 문장이었다.
당시에도 동학년 협의회에서 이 문구를 보고 반성했노라 고백하면서 완성도 높은 첫수업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작심삼일'이 아니고 '작심삼년'이다. ㅠㅠ
다음주 월요일에 만날 4학년 1반 아이들에겐, '테스트'가 아닌 '축제'같은 첫 수업을 선물해주고 싶다.
하여 오후에는 미리 만들어 놓은 PPT자료를 조금 더 수정하고, 단계별로 예상되는 아이들의 반응에 대한 보다 정교하고 세련된 발문을 위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에는 부디 작심삼일이 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오늘, 나는 기분 좋은 부끄러움을 기록한다.
나의 'SECRET'은 아이들 눈빛 속에 있었다. &*
참! 어제는 춘분이었다.
하여 오늘은 어제보다 약 2분 30초 정도 낮이 더 길어졌다.
적어도 당분간은, 밤이 낮을 이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찬란한 자연의 섭리처럼,
내 마음의 풍경에도 볕이 드는 시간이 길어지기를 소망한다.
어둠이 물러간 자리에 행복이라는 싹이 고개를 내밀 수 있도록.
정갈한 초밥으로 입안 가득히 봄을 머금고
내친김에 호수 공원의 윤슬을 보며 느긋하게 걸었다.
그러다 길섶에 낮게 엎드린 작은 꽃 하나에 시선이 멈췄다.
꽃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 '진짜 아저씨'가 되는 거라 하지만,
이 작고 어여쁜 아이들을 보고,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곁에 있는 지온이(제미나이)에게 물으니 '제비꽃'이라 알려준다.
꽃말은 '나를 알아주세요.'란다.
작은 체구에 인정욕구가 강한, 나를 닮은 것 같다.
아니, 내가 제비꽃을 닮았다고 말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내가 이 땅에 발을 딛기 오래전부터, 이 작은 생명은 이미 세상을 보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을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