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내야 비로소 지켜지는 것들이 있다.
4학년 1학기 과학수업 1단원의 주제는 '자석'이다.
엊그제는 '자석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라는 주제로 같은 극끼리, 다른 극끼리 붙여보는 실험을 진행했다.
과학실 책상 위, 아이들이 자석과 함께 실랑이를 벌인다.
다른 극끼리 마주 보게 하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자석은 강한 힘으로 서로를 끌어당긴다.
아이들이 웃으며 이야기한다.
"선생님! 얘네들 서로 사귀나 봐요!"
반대로 같은 극끼리 마주 보게 한다.
자석은 자꾸만 미끄러지며 서로를 밀어낸다.
이번에는 "선생님! 얘네들 싸웠나봐요!"라며 깔깔거린다.
사춘기에 막 접어든 아이들답게 자석의 움직임까지도 남녀 간의 밀당으로 해석하는 그네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싱그럽다.
그 모습과 말들이 나를 미소 짓게 만든다.
문득, 나의 마음 한구석에서 자석이 보여주는 그 움직임이 사뭇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다.
얼마 전 동 학년 선생님들끼리 나누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연애할 때는 나와 다른 사람이 끌리지만, 결혼은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과 해야 한다."
젊은 날의 우리는 나와 다른 극, 즉 내가 갖지 못한 모습에 자석처럼 끌리곤 한다.
내가 갖지 못한 극(Pole)에 대한 본능적인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우린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고 운명이라 믿으며 온 힘을 다해 서로에게 밀착하려 애쓴다.
하지만 너무 강하게 밀착된 관계속에서는 바늘 하나 들어갈 틈조차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틈이 없다는 것은 숨 쉴 구멍이 없다는 뜻.
결국 사랑은 집착으로 변질되고, 상대방은 그 관계속에서 질식해버리기도 한다.
이렇듯 지나치게 '과잉된 인력'은 역설적으로 너무 가깝다는 그 연유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 주고 상처받는 아픈 관계로 발전하기 쉽다.
심리적 완충지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극끼리 마주할 때 느껴지는 그 팽팽한 저항감, 즉 '척력'은 어쩌면 사람과의 관계의 본질을 더 현명하게 알려주는지도 모른다.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끼리는 서로를 밀어내는 '척력'이 작용한다.
그런데 이 밀어냄은 거부나 미움의 밀어냄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하지 않게 지켜주는 '안전지대'의 역할을 해 주는 밀어냄이다.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는 안간힘.
그 현명한 밀어냄이 역설적으로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지켜주는 안전장치가 되어주는 것이다.
결혼이나 깊은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결이 비슷한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는 말은, 단순히 취향이 같아야 한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서로가 닮았기에 상대가 어느 지점에서 불편해하는지, 어느 만큼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지 본능적으로 아는 상태를 말한다.
내가 자주 강조하는 '치타델레'와 '슈필라움'도 이와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그들은 상대에게도 자신만큼이나 소중한 '치타델레' '슈필라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퇴근길, 나는 다시 한번 다짐한다.
누군가를 깊이 아끼고 사랑할수록, 그와 나 사이의 자석 같은 '한 뼘의 틈'을 소중히 여기겠노라고.
그 틈이야말로 우리의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시켜주는 가장 적당한 거리이기 때문이다.
자석의 같은 극이 마주 볼 때 생기는 그 보이지 않는 완충 지대.
오늘 나는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쳤지만, 정작 자석에게서 삶의 지혜를 한 수 배웠다.
"밀어내야 비로소 지켜지는 것들이 있다"라는 그 명쾌한 진리를 말이다.
집으로 돌아와 나의 슈필라움 '붓노리터'에 앉아본다.
다행히 딸은 나의 '붓노리터'를 자주 침범하지는 않는다.
홀애비 냄새난다고. ㅠㅠ
근데 자꾸만 나의 두 번째 '슈필라움'인 거실을 침범한다. ㅠㅠ
간식거리를 먹거나 물을 마시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조용히 나와 내 옆에 앉는다.
솔직히 많이 불편하다.
슬픈 장면에서 실컷 울지 못하고, 행복한 장면에서 마음껏 웃지 못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안방을 새로 꾸며주었다.
붙박이장, 침대와 매트리스, 침대 옆 작은 탁자, TV 받침대, 50인치 TV까지 적잖은 돈이 들었다.
제발 이제 독립해 주었으면 하는데 도통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본세권'이라는 말을 들어봤냐며, 본가에서 사는 게 얼마나 큰 경제적 이득인지 지겹도록 이야기한다.
자기는 '캥거루족'이라며 결혼 전까지는 무조건 집에서 살 거라 한다. ㅠㅠ
나는 '캣거루족'이라는 신조어로 응수한다.
몸은 캥거루처럼 부모 집에 머물더라도, 생활 패턴이나 영역만큼은 고양이처럼 철저히 독립적으로 살아달라는 나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서 말이다.
"딸아, 우리 거실에서도 자석의 같은 극끼리 서 있자."
"서로의 온기를 느끼되, 각자의 '치타델레'를 무너뜨리지 않을 만큼의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말이야."
왠지 씨알도 안먹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