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6학년과 다가올 1학년, 그 설레는 교차점에서

나 또한 '흔들리며 피는 꽃'이었다.

by 김종명

<이 글은 25년 12월 18일 작성한 글입니다.>


오늘 6학년 아이들을 위한 졸업 축하 영상을 찍었다.


1학기에는 과학 전담 선생님으로, 방과 후에는 배드민턴부 감독과 티볼부, 풋살부, 육상부 코치까지.


명-감독, 명-코치로서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울었던 시간들이 떠올라 울컥하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몇번에 걸쳐 영상을 다시 찍어야만 했다.




매년 아이들을 떠나보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서글퍼지곤 하지만, 올해는 유독 그 울림이 깊다.


아이들과 쌓인 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이 아이들을 통해 '가르치는 일의 즐거움과 보람'을 다시금 뜨겁게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포츠클럽 유료 지도 시간이 끝났음에도 기꺼이 수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건, 아이들과 셔틀콕을 주고받는 그 시간 자체가 나에게는 일 이상의 순수한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민0, 다0이와 함께 땀 흘리던 수요일의 배드민턴 게임은 나의 에너지를 재충전시켜 주는 강력한 동력원이었음을 오늘 영상을 찍으면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동시에 오늘은 1학년 놀이 활동 수업을 마무리한 날이기도 하다.


사실 이곳 중동초에 오기 전까지 나는 저학년 수업에 자신이 없었다.


20년 전, 2학년 담임을 맡으며 겪었던 고단한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고학년에 특화된 반쪽자리 교사'라 치부하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중동초에서의 시간은 나의 편견을 깨뜨려 주었다.


첫해에는 안전 수업을, 작년부터는 놀이 활동 수업을 하고 있다.


근데 은근 재미있다.


아이들과의 케미도 잘 맞아서 급식실이나 복도에서 나를 발견하면 "명쌤!" 하고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아이들의 얼굴은 지친 나의 하루를 위로해주는 소중한 쉼표 역할을 해 주기도 한다.


문득 신께서 27살이 된 딸아이를 가진 아빠로서, 이제는 할아버지가 될 준비를 시키시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


아직 할아버지가 되고 싶진 않은데.


마음은 아직도 1995년 3월 25일, 처음으로 아이들 앞에서 섰던 새내기 교사 시절 그 마음 그대론데. ㅠㅠ




심지어 4반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 협박(?)의 도구로 나를 활용하신다.


"너희들 계속 떠들면 오늘 명쌤이랑 하는 놀이 활동 수업 취소야!"


이 한마디면 교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진다고 한다.


이런 순간들은 내가 어떤 교사인지, 내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한달전쯤 '솔사모' 모임에서 교장선생님과 늘봄실장님으로부터 '평교사 생활이 힘들지 않냐'라는 위로와 함께 늘봄실장으로 나가보는게 어떻겠는냐는 제안을 받았다.


솔직히 살짝 흔들렸음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나에겐 학교가 나아갈 비젼을 제시하고, 선생님들 간의 업무 및 갈등을 조정하는 관리자로서의 깜냥도 부족하고, 그런 스트레스를 감당할 내공도 부족함을 알기 때문이다.


대신 아이들의 땀방울과 환한 웃음소리가 가득한 운동장과 교실에서 나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확인받기 때문이다.




6학년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서운함은 내년 새로 입학할 꼬맹이들의 환한 웃음소리로 채워야 할 것 같다. &*


<에필로그>

당시의 글을 다시 읽어보니, '늘봄 실장'이라는 몸은 편한지만 마음은 허전한 길과, '평교사'라는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충만해지는 길, 두 갈래 갈림길에서 잠시 머뭇거렸던 내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일뿐 '늘봄 실장' 업무가 결코 쉬운 업무가 아님을 밝힙니다. 전국의 늘봄 실장님들!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이제는 힘든 수업 대신 편한 행정 업무를 맡고 싶다'며 나약해지려던 속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 글을 써 내려갔던 것 같다.



다행히 나는 그 흔들림을 이겨냈고, 올해도 여전히 아이들 곁에서 평교사의 길을 걷고 있다.


올해는 1학년 놀이 활동과 4학년 과학 수업을 맡았다.


4학년 친구들은 1학년때 안전 수업을 맡아 가르쳤던 아이들이다.


그 꼬맹이들이 벌써 4학년이 되어 나와 함께 과학수업을 한다.


지난주 첫 수업, 교실 문을 열자마자 "명쌤!" 하고 환호하며 나를 맞아주는 녀석들의 환한 웃음을 마주했다.

그 찰나의 순간, 3달 전 나의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온몸으로 증명받았다.




훌쩍 자라버린 아이들이 기특하면서도, 가속도가 붙어 흘러가는 나의 시간이 문득 두려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두려움마저 즐거움으로 바꾸는 것이 나의 일이다.


다음 주부터 시작될 1학년 꼬맹이들과의 새로운 놀이 활동 수업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머무는 곳이 내 삶의 가장 선명한 '현장'이기 때문이다




도종환 시인의 표현처럼 나 또한 '흔들리며 피는 꽃'이었다. &*



흔들리며.jpg 핀터레스트 'My Room' 작가님의 그림을 모사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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