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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Sep 30. 2016

바르샤바의 다양한 모습들

바르샤바는 다듬어지지 않은 다이아몬드 원석과도 같았다

바르샤바를 가게 된 이유, 그것은 착각에서 시작되었다


바르샤바를 가겠다고 지인에게 말을 했을 때, 그분은 거의 바르샤바 예찬론자에 가까웠다. 바르샤바를 꼼꼼히 살펴보면 볼 게 많은데 사람들은 가지를 않는다,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고증을 통해 재건을 한 대단한 도시다, 영화 피아니스트를 보고 가면 더욱 좋을 것이다 등등. 그분 말씀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바르샤바는 ‘세공되지 않은 다이아몬드 원석’과도 같은 도시였다.     


관심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흥미를 가질만한 도시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바르샤바를 가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크라쿠프에는 공항이 없을 것이라는 착각이었다. 인천으로 돌아오려면 무조건 바르샤바 공항으로 가야 한다는 착각.      


말 그대로 엄청난 착각이었다. 크라쿠프에는 당연히 공항이 있었고, 나는 굳이 바르샤바로 향하지 않아도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던 나는 크라쿠프에서의 5박을 마무리 짓고, 바르샤바행 열차를 탔다. 폴란드에서의 마지막 일정, 바르샤바를 향해서.     


바르샤바에 도착해보니 오, 역시 수도답다. 온전히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지방의 어느 시골마을에 있다가 서울로 상경한 느낌이랄까? 크라쿠프에서 폴란드의 소소함과 편안함을 느꼈다면 바르샤바에서는 폴란드의 현대적인, 다소 차가운 느낌을 받았다.      


메트로 입구. 감각있게 M 모양으로 입구를 만들어 놓았다.
중앙역과는 다소 떨어져있는 숙소 근처의 길.


거기다가 날씨마저 차갑고 우중충한 첫인상을 갖게 만들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같이 하늘은 회색빛이었다. 아직은 안 돼, 캐리어가 젖는단 말이야. 조금만 기다려줘. 나의 바람을 읽었던 것인지 다행히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비는 오지 않았다.           


폐허가 된 도시를 버리지 않은 폴란드의 시민들
    

바르샤바는 폴란드 과거사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도시다.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 피해를 고스란히 입은 도시다. 500여 년 동안 크라쿠프가 폴란드의 수도였지만, 지그문트 3세라는 왕이 바르샤바로 수도를 옮겼다.      


폐허가 된 바르샤바를 보며 수도를 옮기느냐 아니면 재건을 하느냐에 기로에서 시민들은 재건을 선택했다. 그것도 철저한 고증을 통해 최대한 원상태로 복구에 힘썼다. 그들의 결정이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바르샤바 구시가지를 돌며 깨달았다. 그들의 결정이 다른 방향이었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를 영영 보지 못할 뻔했으니.      


왕의 광장, 잠코비 광장      

바르샤바 여행은 잠코비 광장에서 시작했다. 바르샤바에서 온전하게 쓸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하루였다. 그리고 30일 배낭여행의 마지막 일정이기도 했고. 유럽 여행의 마지막 날을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마음으로 채비를 차렸다.

잠코비 광장. 오른쪽의 붉은 건물은 왕궁이다.
지그문트 컬럼


잠코비 광장에서 서있으니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았다. 부드럽고 다양한 색을 가진 건물들이 아기자기한 장난감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높은 빌딩 숲에서 지내다 낮은 건물들을 보고 있으니 더욱 장난감같이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건물이 낮으니 하늘까지 눈에 들어왔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었지만, 4월 바르샤바의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노천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는 재미를 맛본 후로는, 한두 시간만이라도 노천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여유를 즐기곤 했다. 유럽 여행은 멋진 자연경관을 보는 것도 좋지만 사람 사는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다.


멋지게 옷을 입은 훤칠한 남자도 지나가고, 귀여운 꼬마도 엄마 손을 잡고 종종걸음으로 걸어가기도 한다. 패키지여행에서는 절대 즐길 수 없는 여유로움이다. 그래서 패키지여행을 하지 않는다. 유명 관광지에서 사진 찍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현지 그대로를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르샤바에서도 한 시간의 사치 좀 부려볼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찬바람에 금세 콧물이 흘러내렸다. 노천카페에 앉아있다가는 감기에 걸리기 딱 좋은 날씨였다. 이 상황에서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이었다.          



중세의 모습 그대로 복원된 구시가지 광장     

잠코비 광장을 지나 구시가지 광장에 들어서니 다닥다닥 붙어있지만 리듬감이 느껴지는 배열의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단순한 배열인 것 같지만 왠지 “도레미파솔~” 소리를 내는 피아노 건반 같았다.      


오, 이곳에 오니 사람들이 조금씩 많아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소풍을 나온 것인지 폴란드 학생들로 보이는 무리도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들, 거의 한겨울 점퍼 수준의 옷들을 입고 있다? 현명한 아이들이었다. 아니 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내가 옷을 얇게 입은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두꺼운 옷이었는걸, 바람막이 점퍼가. 폴란드의 찬바람이 점점 몸의 체온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구시가지 광장은 바르샤바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으로 나치의 공격을 피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시민들의 힘으로 예전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하니 그 또한 의미 있는 장소였다. 중간에 인어 동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바르샤바의 상징이 인어라고 한다. 크라쿠프에서는 용이 유명했는데, 바르샤바에서는 인어가 마스코트로 불린단다.     

 


칼과 방패를 든 상당히 호전적인 모습의 인어였다. 디즈니 만화에서 보던 아름답고 연약한 인어공주가 아니었다. 한 도시의 상징인데 강인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이 좋겠다. 더욱이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난 바르샤바라면 더욱더. 바르샤바는 굳세고 강한 도시였다.     



바르바칸과 소년 병사의 동상      

지도를 보는 능력이 부족한 나는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을 찾지 못했고, 추운 날씨 때문에 바르바칸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요새인 바르바칸도 전쟁으로 인해 파손되었으나, 복원되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바르바칸을 기준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구분 짓는데, 사실 신시가지와 구시가지의 차이점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건물 양식이 다르게 지어졌다고 할까? 신시가지의 건물들이 직선적인 모양새로 조금 더 깔끔한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바르바칸을 기준으로 신시가지 쪽으로 나오다 보면, 소년 병사의 동상을 발견할 수 있다. 1944년 바르샤바 봉기 때 활약한 소년을 기리기 위함이리라. 꽃을 놓고 가는 시민들의 마음이 애잔하게 다가왔다. 조그마한 소년의 희생을 잊지 않겠노라 다짐하는 폴란드 사람들의 고마움이 느껴져 잠시 숙연해졌다.     


아마 '어린이보호구역'과도 같은 의미의 표지판이 아닐까 싶었다.


바르샤바의 아름다운 공원, 와지엔키 공원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도 들를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바닥난 체력을 원망하며 발길을 돌렸다. 두 번째 목적지는 와지엔키 공원으로 급하게 결정했다. 저녁 약속까지는 시간이 한참 남았고,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기엔 허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필 공원을 가기로 한 이유는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유럽에는 넓은 공원들이 많이 있다. 특히 런던은 하이드파크, 세인트 제임스 파크, 빅토리아 파크 등 도심 속에서 쉽게 자연을 만날 수 있도록 많은 공원을 조성해 놓았었다. 이것은 내가 런던을 좋아하게 된 이유 중에 하나였다.     


폴란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크라쿠프 시내에는 산책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강아지를 데리고 나오는 사람도 있었고, 자전거를 타는 어린이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가족과 함께 삶을 즐기고 있는 듯 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부러움과 동시에 마음이 평온해지곤 했다. 그래서 나는 공원을 찾기로 결정한 것이다.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와지엔키 공원의 수상 궁전, 쇼팽 동상 등 유명한 스폿을 가보지는 못했다. 그저 내가 처음에 계획했던 ‘푸른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의 욕구를 충족시킨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하늘과 물이 서로를 품고 있다
곧게 뻗은 길 그리고 양옆의 나무들이 있는 길, 내가 정말 좋아하는 길.


와지엔키 공원은 한적하면서도 푸르른 공원이었고, 바르샤바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듯했다. 여전히 쌀쌀한 날씨에 체력은 급속도로 방전되어 오래 머무르지는 못하였다. 다음에 폴란드를 여행한다면 한 여름에 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남긴 채, 저녁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안녕, 청솔모!


바르샤바 여행을 마치며
  

바르샤바에 대한 첫인상은 차가움, 어두움이었다. 아마 피아니스트 영화의 이미지가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고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은 도시라는 사실이 더욱 어두운 이미지로 작용했을 것이다.      


약 40시간 정도를 바르샤바에서 머무르면서 바르샤바에 대한 회색빛의 이미지는 활기찬 무지갯빛으로 바뀌었다. 바르샤바는 현대적이면서도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재미있는 도시였다. 그리고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강인한 국가였다. 리나라가 한국전쟁 이후,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빠른 경제 발전을 이룩한 것처럼. 전쟁도, 나치 독일도 이들의 저력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 바르샤바는 그렇게 다시 일어났다.      


혹자는 여전히 ‘바르샤바는 볼 것이 많이 없다’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나 역시 그 말에 100% 아니라고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기준은 상대적이게 마련이니까.     


다만 확실하게 말하고 싶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한 도시의 모습을 보이는 관광지만으로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관광지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그 도시가 갖고 있는 다양한 모습을 놓치기가 쉽다. 멀리 유럽까지 와서 당연히 하나라도 더 봐야 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한다면, 단 하루만큼이라도 아무 일정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녀보길. 분명 정확하게 계획된 일정 속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와지엔키 공원에서 느꼈던 여유로움처럼.       


4월 22일, 나는 쇼팽 공항 의자에 앉아 프랑크푸르트 행 루프트한자 항공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3월 22일, 프랑크푸르트로 입국했던 순간부터 4월 22일 지금 이 순간까지의 여행을 추억했다.     


 아, 잘 놀았다. 잘 보았다.     

폴란드항공 LOT. 안녕, 폴란드.

     



다음편은 처음으로 되돌아갑니다. 프랑크푸르트부터 시작하는 2016년 유럽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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