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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Sep 27. 2016

낯선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식사 같이 하실래요?"로부터 오는 즐거움

‘밥 한번 먹자’는 인사말의 무게   

   

길을 걷다 우연히 지인을 만났을 때, “오랜만이네, 어떻게 지냈니?”라고 시작한 인사는 “언제 밥 한 번 먹자!”라는 말로 마무리가 되곤 한다. 정말 먹을 생각이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가벼운 인사치레 정도로 건네는 말일 확률이 더 높으니까. 실제로 “우리 밥 한번 먹자!”라는 말에 “좋아! 언제 먹을까?”라는 대답이 돌아올 가능성은 극히 낮다. (반바지 입고 걸어가는데, 새똥이 종아리를 타고 흘러내릴 확률이라고 해둘까?)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저 말을 인사말로 쓰지 않았다. 진심이 없는, 살아있지 않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제 우리 마주칠 일이 없을 것 같으니 잘 지내렴.’을 돌려 말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까지 했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허기짐을 달래는 것'을 기본으로, 때에 따라서는 그 이상의 역할을 수행한다. 밥을 먹으며 오가는 다양한 이야기는 타인과 나를 연결해주는 고리를 만들어준다. 음식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향한 경계를 풀고,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밥 한번 먹자’는 가볍게 건넬 수 있는 인사말이지만 결코 가벼운 인사말이 아닌 것이다.         


식사 같이 하실래요?      

동생 K와 헤어지고 혼자 폴란드로 오면서 한국어가 통하는 한국인을 애타게 찾았다. 인터넷 카페에 몇 번의 글을 쓴 후에야 일정, 목적지가 맞는 사람과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폴란드에서만큼은 혼자서 저녁을 먹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던 터라 그토록 애타게 함께 식사할 누군가를 찾았던 것이리라. 크라쿠프 5박, 바르샤바 2박 동안 여러 명의 한국인을 만났고, 그들과 저녁식사를 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낯선 도시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 식탁에 둘러앉은 모두가 처음 만나는 자리였지만 음식 앞에서는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나도 그들도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우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즐겁게 놀아요!’



비가 오는 크라쿠프에서의 첫 식사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크라쿠프의 첫날이었다. 이른 새벽 부다페스트에서 출발한 순간부터 제대로 된 끼니를 먹지 못해 이미 지쳐있던 나는 낯선 이들과의 저녁 약속을 잡았다. 정말 아무거나 주워 먹을 수 있을 만큼 허기졌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트립어드바이저(Trip adviser)의 순위에 든다는 맛집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아! 우산은 장식품이던가? 흩뿌리는 비로부터 옷과 신발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쓸데없는 장식품! 축축해진 신발 속의 발은 음식을 향한 집념 하나로 부지런히 움직였다. 구글맵 하나에 의존한 채로 얼마나 걸었을까. 추운 날씨에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고 싶은 고비를 몇 번을 넘기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곳, 맛집이라는 타이틀 값을 제대로 한다. 대뜸 예약을 했냐는 질문이 날아왔고, 우리는 “No”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힘들게 왔는데 밥도 못 먹고 나가야 되는 거야?라는 걱정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추위와 배고픔이 내 몸의 에너지를 모두 빼앗아버렸는데.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직원들끼리 짧은 대화가 오가더니, “8시까지만 먹고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데 괜찮아?”라고 물어왔다. 그때 시간은 7시가 조금 안된 시간이었다. 충분했다. 음식만 빨리 나온다면 20분 만에라도 먹고 나갈 수 있어! 우리는 “Ok!”를 외쳤고, 그들은 자리로 안내를 해줬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다행이다’라는 말이 모두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메뉴판은 낯설었다. 아는 단어 몇 개를 찾아 대충 유추할 수밖에 없었다. beef, chicken 같이 익숙한 단어가 들어간 음식들과 ‘피에로기’라고 하는 폴란드 전통음식을 주문했다. 두근두근 설렘 반, 걱정 반을 안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피에로기. 우리나라의 만두와 비슷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한 입 먹어볼까? 포크에 고기 한 점을 찍었다. “맛있다!”라는 감탄사가 줄줄이 이어졌다. 다행이었다. 음식이 조금 짜기는 했지만 먹을 만은 했다.      

무엇보다 혼자서는 시킬 수 없는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을 골고루 맛볼 수 있다는 즐거움, 그것이 참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제대로 된 한 끼를 챙겨 먹을 수 있다는 것, 이것도 함께 하는 식사가 주는 기쁨이었다. 폴란드에서의 첫 식사였으니 기대치도 높았으리라.      


음식이 들어가고 몸이 따뜻해지니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교환학생 중에 잠시 폴란드로 놀러 왔다는 A는 어여쁜 여대생이었다. 혼자 배낭여행 중이라는 B는 멋진 남학생이었고. 나도 배낭여행 중인 백수 C라고 해두지 뭐. 각자의 여행 스토리를 풀어가며 음식을 금세 해치웠다.      


폴란드 음식은 많은 양이 나오는 편인데도 접시는 깨끗했다. 점원이 애초에 말한 8시는커녕 7시 40분이 되니, 우리는 돈을 준비하고 있었다. 폴란드에서의 첫 식사, 아주 만족스러웠던 한 끼였다. 



몸은 유럽에, 마음은 세계 곳곳에.     

 

두 번째 날, 다른 팀과의 저녁 약속을 잡았다. 그들과의 만남은 식사도 즐거웠지만, 나누었던 대화가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다.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꿈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24살의 대학생 D군은 500만 원으로 100일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라오스를 시작으로 인도를 거쳐 유럽을 여행 중이라며 이야기를 시작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500만 원으로 100일 여행을 하려면 굉장히 저렴한 숙소에서 잠을 자야 하고, 가끔은 카우치서핑도 해야 하고, 정해진 일정과 정해진 루트가 없다 보니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대신 숙소를 구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데 비어있는 침대가 없으면 숙박이 불가하고, 오버부킹 문제로 다른 숙소로 이동해야 하는 것도 다반사라고 했다.


‘힘들지 않냐’는 나의 질문에 오히려 ‘배우는 것이 더 많다’는 어찌 보면 식상하지만 당연한 대답을 들려줬다. ‘어린 나이에 정말 대단하다’는 말에는 본인도 여행을 하면서 대단한 사람을 많이 봤다며, 본인은 대단한 축에도 못 낄 만큼 멋진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궁금했다. 그렇게 멋진 사람을 본다면, 그들에게서 나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떠날 수 있는 용기? 아니면 현지인처럼 자유롭게 즐기며 여행할 수 있는 능력? 세상을 바라보는 넓은 시야?     


28살의 E양도 100일 여행 계획을 세웠고, 지금 절반 정도의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D군과 E양은 대화를 하던 중, ‘인도’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흥분된 상태로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시신을 화장하던 모습, 갠지스 강, 종교시설에서 느꼈던 경건함 등등. 둘의 말을 빌리자면 ‘유럽은 아기자기한 멋이 있고, 인도는 사람이 살아가는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저 말을 듣는 순간 굉장히 가슴이 설렜다. 사람이 살아가는 진짜 모습이라니. 덧붙여 인도를 한번 다녀오면, 여행지를 보는 눈이 달라진단다. 어떤 사람은 그런 말도 했다. 인도는 모든 여행의 종착지와 같은 곳이라고.      

경험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대체 무슨 느낌인지 알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가보고 싶어 졌다. 인도라는 곳은 어떤 곳인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졌다. 이날부로 버킷리스트에 인도 여행하기를 추가했다. 물론 내 옆의 든든한 남자와 함께!      


역시 폴란드의 음식은 푸짐하다!!
술이 빠지면 여행의 흥이 안나요~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을 위하여 ! 


요즘 여행 트렌드는 장기간 여행인가? 100일 정도의 여행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단하고 또 부러웠던 것은 ‘머물고 싶은 곳에서 머물고 싶은 만큼을 머무는 것’이었다. 그들은 크라쿠프에 도착을 했을 때부터 자유롭게 크라쿠프 여행을 한다. 아니 사실은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그 순간부터 어느 도시든 자유롭게 여행했을 것이다.      


크라쿠프라는 도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1박만 하고 갈 수 있고 마음에 들면 3박을 하든 4박을 하든, 혹은 그 이상을 하든지 아무런 제약 없이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 도시로 이동할 교통편과 숙박을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데, 나는 해외여행을 이런 방식으로 가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 여행도시와 숙박일 수는 반드시 확정을 하고 숙박과 교통수단을 모두 예약하고 출발을 한다. 현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열차표가 없을 때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다 보니 어느 도시를 사랑한다고 말할 만큼 마음에 들어하더라도, 정해진 일정에 맞추려면 더 머무르기가 어려웠다. 일정을 수정하려면 교통수단과 숙박에서 꽤 많은 수수료를 지불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획 없이 나그네처럼 여행을 한다면 언제든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 물론 임박해서 열차표를 사거나 숙박을 구하려면 미리 하는 것보다는 비싼 금액을 지불해야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현지에 내쳐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나 싶다. 용기가 그만큼 부족했던 것이겠지.      


내게 장기간 배낭여행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글쎄, 그들처럼 자유롭게 여행을 하기 에는 조금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부럽고, 멋있었다. 내가 해내지 못한 것들을 당당히 해내고 있는 그들이.      

여행은 달콤한 생크림같다.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어서.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의 즐거움     


여행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식사는 새롭다. 처음 인사말을 나누는 순간에는 긴장감이 맴돌지만, 음식 앞에서 조금씩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전환된다. 그리고 오고 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것 또한 재미있다. 마치 어릴 때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고 설렌다.      

본인이 경험했던 여행 이야기들.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정보와 궁금증들. 이것이야 말로 살아있는 정보이고 살아있는 여행이 아닐까?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맛있는 현지의 음식들이 가득 채워진 식탁은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이것저것 한입씩 먹어보며 ‘아, 여기서는 이런 음식을 먹는구나. 맛이 색다르구나. 어떻게 이런 요리를 만들게 되었을까?’라고 생각하며 직접 그들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요즘 혼술족, 혼밥족이라는 신조어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말 그대로 혼자 술을 먹고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물론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하고 나 또한 혼자 밥을 먹는 것을 즐겨하지만, 여행에서만큼은 특히 해외여행에서만큼은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는 것을 권한다.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다. 혹시 아는가, 식사를 하면서 새로운 인연이 찾아올지?     

              

디저트도 혼자보다는 둘이 좋다





< 크라쿠프 여행기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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