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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Sep 19. 2016

그들은 한 명의 '사람'이고 싶었다

폴란드 오슈비엥침(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다녀와서

역사학 전공자라면 아우슈비츠는 반드시 가봐야 하는 곳?!

‘대학생’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처음 하는 수강신청. 전공과목도 아닌 ‘역사학 입문’ 수업의 수강신청을 성공했다는 기쁨도 잠시, 한 학기를 참 힘들게 보냈다. 서양사 전공의 교수님 밑에서 철학적이고 난이도 높은 수업이 매 시간마다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어려운 수업이 진행되는 중간중간 분위기 전환을 위해 ‘유럽 배낭여행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 특히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가세요.'라는 말에 힘을 실으셨다. 역사학도라면 꼭 한 번은 가봐야 하는 곳이라는 말씀에 어떤 자극을 받았던 것일까? 몇 년이 흐른 후에 나는 폴란드 땅을 밟게 되었다.



독일어로 들을래, 이탈리아어로 들을래?


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우슈비츠만큼은 맑은 날 오는 것이 좋겠다, 싶어 예약을 하지 않은 내 잘못이었다. 평일이라 여유로울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착각이었다. 매표소 직원은 내게 물었고, 더 이상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독일어로 해주세요."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지정된 시간 이전에는 개인관람이 불가했다. 원하는 언어와 시간대를 예약해서 입장하거나, 운이 좋으면 매표소에서 원하는 언어를 선택한 후 입장권을 구매하거나.

개인관람이 가능할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던지라, 울며 겨자 먹기로 독일어 투어 입장권을 구매했다.   



뜻밖의 인연

투어가 시작되기 전 개인 오디오를 나눠 주었다. 제법 무게가 나갔다. 독일어로 설명해줄 그것은 무용지물이기에 가방 속에 쓰윽 넣어버렸다. 이런 내 모습을 이상히 여겼는지, 동양인 한 명이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나라 사람인가?'라는 기대감이 드는 순간, 그는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오디오가 고장 났니?"

"아니, 나는 독일어를 못해서 필요 없을 것 같아."

"그래? 그런데 왜 독일어를 선택했어?"

"영어 투어가 모두 마감이 됐어."     


그와 짧은 대화가 오가는 동안, 투어를 시작하려는 듯 자기소개를 하고 있는 가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점점 어두워지는 내 표정이 안타까웠는지 그는 짧은 한마디를 건넸다.     

"내가 영어로 할 수 있는 것들은 영어로 말해줄게. 영어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아, 감동이었다. 그가 독일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이었다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나중에 더 대화를 해보니, 그는 독일에 공부를 하러 온 중국인 유학생이었다. 지금은 폴란드에 여행 중이고. 그렇게 나는 예정에 없던 영어가이드 투어를 받게 되었다.

이 곳에도 봄은 오고 꽃은 피는구나.


 

광기의 공포에 짓눌렸던 시간들

투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가이드는 열성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표정과 몸짓만으로 그녀의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리고 내 옆에서 영어로 통역해줄 가이드까지도 그 열의를 전달받았는지 최대한 많은 얘기를 해주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수용소 일부를 돌면서, 소름 끼칠 정도의 잔인함에 한 걸음 한 걸음 떼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무섭고 두려웠다. 삭막하고 외로웠다. 가이드의 말을 영어로 전해주던 그의 표정이 어둡게 변해갔다. 나에게도, 투어를 함께 했던 사람들의 얼굴에도 모두 슬픔이 묻어나고 있었다.       


전시된 사진과 그림들을 보며 '인간이라는 존재는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인간이 악함을 드러냈을 때, 어떠한 결과가 초래될 것인가? 거기에 '권력'이라는 것까지 더해지게 된다면 그 피해는 얼마나 커질 것인가? 잘못된 신념을 가진 자가 표출해내는 잔인함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나약한가? 하지만 그 부당함에 저항을 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찾고자 하는 의지는 또 얼마나 강인 한 것인가?     


질문은 계속됐지만 어떠한 것에도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점점 더 깊어져만 가는 생각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아우슈비츠는 유럽 각국의 사람들을 집결시키기 위한 중심에 있다.



'선택'이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의 늪'은 깊고 복잡했다. 온갖 감정과 생각이 뒤섞여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를 헤매는 것 같았다. 출구를 찾기는커녕 더욱 깊은 곳으로 끌고 들어간 '선택'이라는 강력한 힘 앞에, 나는 무참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Before the selection'

'After the selection'

'Preparing to selection'

'On the way to death'


사진에 붙은 제목들이다. 예사롭지 않은 사진들을 꼼꼼히 살펴보는 동안 탄식에 가까운 소리가 튀어나왔다. 수용소에 끌려온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물건'처럼 '선택'을 기다렸고, 선택되거나 혹은 그러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양 갈래 갈림길에서 다른 길을 걸어갔지만, 결국 '죽음'이라는 목적지는 동일했다. 죽음으로 향하는 길을 천천히 걸어가느냐 고속철을 타고 빠르게 달려가느냐의 차이였다.      


선택된 자들에게 '삶이 허락된 것은 다행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없었던 처참한 공간. 그곳에서 살아내야 했던 지독한 시간의 무게가 가슴을 옥죄어왔다.


가스실에서 사용되었던 사이클론 B 용기.
용기 안에는 이런 규조토 알갱이가 들어있었다


<가스실에서 사망한 후에, 화장되었다>


희망은 떠났고, 그들의 물건만 남았다


투어가 진행될수록 두 눈으로 보고 있는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사라져 갔다. 희생자들의 유품 특히 어린아이의 옷가지들 앞에서, 그동안 힘겹게 버티고 있던 감정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인터넷에서 봤던 단편적인 모습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몇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 그곳에 내가 있는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한테까지 무슨 짓을 한 거야.'      


투어를 받던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무언가를 얘기했지만, 아마 이 물건의 주인에 대한 애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들이 가져왔던 가방에는 본인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름을 쓰며 금방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함께 그렸을 사람들. 혹시 내 가방을 찾지 못할까, 하는 걱정에 남들보다 큰 글씨로 써 내려갔을 그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눈가가 뜨겁게 달궈지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 너무 슬픈 곳이다. 마음이 너무 아파"라고 조용히 건넨 나의 말에 통역사를 자처한 그는 고개를 한 번 끄덕거렸다.  


<신발, 머리빗, 면도용품, 구두 브러시 등 생활용품을 챙겨 짐을 꾸렸던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가장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 낸 곳, 비르케나우 수용소     

쓰라린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제 2 수용소로 향하는 셔틀에 몸을 실었다. 제 2 수용소인 비르케나우 수용소에 도착하자 긴 철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을 실어 수용소까지 데리고 올 목적으로 만들어진 철길. 이곳에서 사람들은 선택되거나, 그렇지 못하여 가스실로 이동되어 죽음을 맞이하거나.      


“이 수용소에서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학살당했대.”라며 말을 시작한 나의 가이드는 끔찍했던 과거를 알려주는 말을 몇 마디 덧붙였다.       


‘그들이 마지막인 줄 모르고 봤을 하늘이 오늘처럼 파란 하늘이었을까? 땅에는 한 송이의 꽃이라도 피어 있었을까? 그 꽃을 보며 잠깐이라도 세상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을까? 그 온기를 간직하고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수용소 막사와 날카로운 철조망은 삭막하다 못해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수감자들에게 경고라도 하듯이.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희망을 꺾어버리듯이.      


그들이 지나갔을 그 길을 걸으며 기도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시간들, 이제는 모두 잊고 부디 편하게 쉬세요.’


비르케나우 수용소의 입구. 길게 철길이 놓여 있다.
사람들을 싣고 왔을 열차.


벽돌 막사의 내부의 모습이다.


제 2 수용소를 마지막으로 아우슈비츠 박물관 투어가 끝을 맺었다. 불과 몇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졌고, 고민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대해서. 명쾌하게 답하지 못한 질문들을 많이 남기고 떠났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보여주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선함이든, 악함이든 혹은 명료하게 구분할 수 없는 무엇이든.     


가슴이 먹먹해져 견딜 수가 없던 순간이,

꾹꾹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던 순간이,

인간의 잔인함에 경악을 금치 못했던 순간이,

매 장소마다 피할 곳도 없이 날아와 가슴속에 박혔다.     


지나간 역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것을 교훈 삼아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이곳을 계속해서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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