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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Dec 13. 2016

떠난다는 것의 설렘

여행은 준비할 때가 가장 설렌다


진짜 욕망은 떠나는 것이었다. 그가 결론을 내린 대로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한다면!" 어디로라도 떠나는 것.

<여행의 기술 p52 , 알랭 드 보통, 이레 출판사>


여행은 설렌다. 낯선 곳에서 보내게 될 시간은 긴장과 설렘으로 가득 차있다. 주어진 시간을 누구와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세울 때면 때로는 머리가 아프기까지 하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단어 앞에서 이 고통은 금세 사라지곤 한다. 비워진 그 자리에는 ‘설렘’이라는 것이 찾아오게 마련이니까.     


누군가 내게 말했다. “여행은 막상 떠나보면 기대했던 것만큼은 즐겁지 않은 것 같아. 여행을 준비할 때가 가장 재미있고 설레는 것 같아!” 그렇다. 나도 동의한다. 오해는 마시길, 여행을 하는 행위 자체가 즐겁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여행 준비 단계의 즐거움이 조금은 더 크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거기에는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 그것이 가장 크게 작용할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멀리 떠나는 여행이든, 지하철을 타고 떠나는 국내여행이든 상관없다. 그 순간만큼은 일상을 벗어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니까.          

해가 지는 모습을 비행기 창을 통해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낭만적인 일 중에 하나다.


# 내일 비가 오지 않게 해주세요, 저 내일 소풍 간단 말이에요.    

기억 속의 여행 중에서 온전히 기억하는 첫 여행은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였던 시절의 소풍이었다. 소풍 전날 밤, 잠들기 전에 꼭 기도를 했다. “내일 비가 오지 않게 해주세요.” 소풍날에 비 오는 것만큼 기분 나쁜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꼬맹이였다.     


설레는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 반반을 꼬옥 쥐고 있다가 늦은 시간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양 한 마리를 세어 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하고 만다. 그럼 이번엔 거꾸로 세어볼까? 어디서 봤는데 양 백 마리부터 세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했던 것 같다. 양 백 마리, 양 구십 구 마리... 하지만 기대감이라는 강력한 녀석 앞에 양은 힘도 못 써보고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을 때 즈음, 지친 채로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깊이 잠들지는 못했다. 이른 새벽에 눈이 떠져 김밥을 말고 계시는 할머니 옆에 쪼르르 달려가 쭈그리고 앉아서 간섭을 하곤 했다. 시금치는 조금만 넣어줘요,라고 잔소리 한마디를 빼놓지 않고.      

     


# 혼자서 여행을 준비한다는 것      

시간이 할머니의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자리 잡을 만큼 흘렀다. 꼬맹이가 어른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한 어른이 되었을 즈음, 혼자서 유럽을 가보겠다고 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땐 그랬다. 두려움보다는 유럽이라는 낯선 곳을 향한 갈망과 기대감이 더 컸던 것이리라.    

 

혼자서 준비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먼저 유럽여행을 갈 때 필수로 가입한다는 카페를 찾아 가입을 하고 가입인사를 남겼다. 잘 부탁해요. 두 번째로 한 일은 서점을 가서 제일 마음에 드는 가이드북을 샀다. 책과 인터넷을 열심히 찾아가며 항공, 열차, 숙소들을 하나씩 채워가기 시작했다. 낯선 곳에서 국제미아가 되지 않으려면 철저하게 준비해야 해!라는 마음으로.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어찌어찌 여행은 채워갔을 것 같다.      

유럽을 함께 다녀온 책들은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파트별로 찢겨져있거나, 형광펜이 심하게 그어져있거나.


가보지 않은 곳을 책과 인터넷에 의존해서 공부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루트를 결정해서 열차 티켓을 구매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몇 유로와 몇 파운드가 결제되었다는 문자가 올 때마다 안도감이 더해졌다. 아 문제없이 되었구나, 다행이다!라는 안도감. 결제 문자 한 개에 낯선 곳을 향한 기대감도 하나씩 쌓여가고 있었다.      


3월 개강과 함께 시작한 유럽여행 준비는 6월 26일 출국 전까지 계속되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라는 양대 산맥을 넘어가는 동안에도 온 신경은 ‘나의 유럽여행’이었다. 두 개의 산맥이 워낙 높아 피곤함이 언제나 함께 했지만, 여행이 주는 설렘이라는 강력한 에너지가 나를 버티게 해주었다.      



# 여행이 주는 짜릿함, 그 중독성

6월 26일, 인천 국제공항에서 수속하고 짐을 부치는 순간에도 긴장과 설렘은 끊임없이 나를 흔들었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해서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기 전까지는 설렘보다 난데없이 나타난 두려움이 나를 휘어잡고 있었다고 해야겠다.   

   

낯선 곳에서 국제미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의 무게가 이리도 무거울 줄이야. 비행기에 앉아 안전벨트를 맬 때는 안전하게 잘 도착해야 할 텐데, 라는 걱정이, 환승을 할 때는 한시라도 긴장을 늦춰선 안 돼, 자칫하다가 비행기를 놓칠지 몰라.라고 온 신경을 다 썼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른이라고도 할 수 없을 만큼 굉장한 겁쟁이가 바로 나였다.      

뮌헨 공항에서 환승을 했다. 처음하는 환승에 긴장감 120%. 시간이 꽤 여유로웠음에도 눈도 붙이지 못했다.


세상에서 둘째 가라면 엄청난 겁쟁이임에도 불구하고, 떠나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것은 여행이 주는 설렘과 긴장감이 너무나 짜릿하고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어디든지 떠나고 싶다, 어디든지.라고 생각한 그 순간, 새로운 문이 열린다. 무엇에 홀리듯이 온갖 채널을 통해 여행지를 찾아보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문이 열린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여행지의 특성을 알아보고 나와 맞는지를 판단하고 계획을 세워 나간다. 그 모든 과정이 주는 기쁨을 한번 맛본 후로는 끊어낼 수가 없다.

오늘도 나는 떠나기 위한 일상을 보낸다.                           

                                 

인생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몇 초보다 더 큰 해방감을 주는 시간은 찾아보기 힘들다.

<여행의 기술, p61, 알랭 드 보통, 이레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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