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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Aug 27. 2016

파란 하늘, 너를 기다린 시간들

파란 하늘이 주는 감동과 슬픔을 생각하며.

그리 멀지 않은 훗날에는 말이야, 크레파스에서 네 이름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하늘색(sky blue) 이 아니라, 회색으로 말이야.

노랫말도 사라질지 몰라.



파란 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



우리가 어릴 때 이 노래를 부르며 너를 생각하곤 했었잖아? 하지만 이대로라면 파란 나라가 아니라 회색 나라가 될 수도 있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왜 네 이름이 바뀌냐고? 요즘 전 세계적으로 대기오염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거든. 우리는 맑고 청명한 너를 볼 수 있는 날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어. 요즘 들어 그걸 많이 느끼고 있단다.

나는 너를 잃고 싶지 않아. 너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 먼 훗날 태어날 나의 아이에게도 내가 느꼈던 것들을 선물해주고 싶단 말이야. 그러니 오래도록 내 곁에 있어주었으면 해.


천안의 한 대학교.
목포의 여름날 하늘.

파란 하늘에게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보았다. 어제와 오늘, 서울 하늘은 유례없이 푸르고 청명하고 깨끗하다. 가만히 보고 있기만 해도 힐링 그 자체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슬프다. 이 하늘이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으니까. 일 년에 몇 안 되는 푸른 하늘을 지금 누리고 있는 감동적인 순간이다.



내가 하늘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건 고 3 소녀 시절부터였다. 하늘을 정말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눈물 난다는 감수성 풍부한 사춘기 소녀였으니 파란 하늘을 보며 얼마나 좋아했을지. 그 친구와 어울리며 나는 자연스럽게 하늘을 보게 되었고, 핸드폰 카메라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액정으로라도 하늘을 담는 것이 좋았다.



졸업을 하고, 용돈으로는 사지 못했던 디지털카메라를 하나 장만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하늘을 담는 일을 시작했다. 여행을 갔을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하늘이 파랗게 물들어있으면 셔터를 눌러댔다. 다른 장소 다른 시간의 하늘들이 하나씩 쌓여가며 하늘의 매력에 더욱 빠져들었다.



시간이 흐르며 남들처럼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게 집에 오는 일이 허다했다. 정말 슬프게도 대한민국의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하늘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고작해야 점심시간에 산책하는 것이 전부였다. 길어야 한 시간. 바쁜 일상에 하늘을 볼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었고, 조금씩 파란 하늘을 잊고 살아갔다. 잊고 지내던 시간 동안 하늘은 조금씩 병들어갔다.


'걸어 다니면서 빠르게 인터넷을 할 수 있어? 시계처럼 핸드폰을 찰 수도 있다고? 그게 말이 돼?'라고 대화했던 고등학생 시절은 한 장의 기록으로 남겨진 과거가 되었다. 과학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달했고, 사람들은 편리와 신속을 찾게 되었다. 자연스레 환경은 오염되어 갔고, 지구는 병들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려 했을 때, 오래전에 내가 보았던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줄어들었음을 깨달았다. 슬펐다. 그래서 하늘을 향한 나의 카메라는 더욱 집착적으로 움직였는지 모르겠다. 일 년에 며칠 안 되는 날들을 담아두려고 말이다.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는 돌파구였다. 답답할 때, 속상할 때, 눈물이 날 때 파란 하늘을 보고 있으면 위로가 되었다. 아마 뻥 뚫린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뭉게구름을 보고 있으면 솜사탕을 만지고 있는 착각이 들곤 했다. 그것의 달달함과 포근함은 속상한 마음을 달래주었다.

파란 하늘은 감동 그 자체였고, 미소를 짓게 해줬다. 그런데 이제는 파란 하늘이 주는 선물을 예전처럼 자주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일 년 중 이렇게 맑고 푸른 하늘은 손에 꼽을 정도가 되었으니까.



이 현실이 너무나도 슬프다. 먼 훗날 태어날 나의 아이가 당연하게 회색으로 하늘을 그릴까 봐 걱정된다. 나의 어릴 때 사진을 보며 “엄마! 왜 엄마네 하늘은 지금이랑 다른 색이야?”라고 물어볼까 봐 슬프다.      



그런 날이 오지 않도록,

오늘의 파란 하늘을 잊지 않고 그대로 물려줄 수 있도록

아파하는 지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나가기로 결심한다.

          

대전 꿈돌이 공원의 푸른하늘.
보성 녹차밭의 푸른 하늘
전주 풍남문과 하늘
계룡역 근처의 파란 하늘
어느 가을날 경복궁 향원정과 함께
문경새재의 하늘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을 잊어버리지 않고, 잃어버리지 않아야 하니까.

우울함이 엄습해올 때 그것을 깰 수 있는 힘을 주는 소중한 하늘을 잃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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