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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가 프리만 Dec 03. 2023

천장에서 물 떨어지는 집… 이게 파리의 낭만?

[마흔에 파리가 좋아질 줄이야]우리집은 엘베없는 4층-3편

투두툭툭 


"오빠 이게 뭔 소리야?"


아내가 물었다. 그날은 파리에 온 후 처음으로 프렌치 코스를 먹기로 한 날이었다. 집 주변에서 레스토랑을 고르고 골라, 예약했다. 부산 풀코스도 못 먹어본(나는 부산 출신이다) 내가 거금을 들여 파리 풀코스를 먹어보기로 한 날이어서 굉장히 기대가 컸던 날이다.

파리 풀코스를 즐기기로 했던 그 식당

그나마 챙겨 온 가장 깔끔한 옷을 입기로 했다. 대충 걸치고 밖에 나서던 것과 달리, 그날따라 외출 준비도 꽤 오래 걸렸었다. 그렇게 즐겁게 씻고, 꾸미고 하던 중에 아내가 집 안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은 거다. 들어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글쎄 갑자기 좀 추워져서 나무기둥 같은 게 벌어지는 소린가."


말 같지도 않은 나의 뇌피셜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투두툭툭'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별 거 아니겠지. 구두를 꺼내려 거실로 나서는 순간. 목격했다. 천장에서 물이 줄줄줄줄 떨어지는 모습을. 그 물이 폭포처럼 TV를 강타하며 사방팔방으로 튀던 모습을. 평생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고려인들은 상상도 해보지 못한 모습을.


약 2초간의 뇌정지. 이후 곧바로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엌에 있는 냄비들을 다 가지고 와서 물이 떨어지는 곳에 뒀다. 수건을 총동원해 물을 닦았고, TV 등 가전제품들을 피신시켰다. 아 이젠 뭘 해야 하나. 아내를 바라보니 이 초유의 사태에 얼음 상태다. 


그 와중에 윗집 변기 물 내려가는 배관이 터진 게 아닌가 우려했던 기억이 난다. 최악의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하는 나란 남자.. 냄새를 맡아보니 다행히 그건 아닌 거 같았다. 

실화냐...

일단 집주인에게 연락했다. 기분이 당연히 좋지 않았지만, 프랑스말도 할 줄 모르는 3개월 단기 세입자이기에 철저한 을의 심정으로 최대한 공손하게 메시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뭔가 강하게 나갔다가, 관계가 틀어지면, 남은 기간이 피곤해질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천장에서 물이 새고 있어요. 이제 어떻게 할까요?  동시에 냄비로 물을 받아내는 모습도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TV를 피신시킨 모습도 찍어 보냈다. 내가 이 정도로 너네 집을 생각한다는 것을, 이렇게 너의 재산을 지켜주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부각했다. 


집주인은 관리인을 곧바로 보내겠다고 답했다. 관리인의 이름은 장 샤를이다. 체크인을 할 때, 그리고 앞으로 언급할 듯 하지만, 모종의 사건(?)이 있었을 때 친절하게 대해준 인상 좋은 파리지앙. 좋은 분 같던데 바로 뛰어오겠지? 


장 샤를은 "지금 당장은 내가 다른 일이 있어 안 되고 오후 3시쯤 오겠다"했다. 천장에 물이 새는데, 오후에 온다고? 저 시크함과 당당함이 파리지앙의 매력인가. 

 

그럼 저 물이 떨어지는 동안 프렌치 레스토랑에 가야 하는 것인가… 


에라 모르겠다. 우리 가족은 레스토랑으로 향하기로 했다. 그래 일단 먹자. 먹으러 가자. 근데 이게 맞나? 헛웃음만 나오는 상황. 딸은 엄빠의 이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날도 고각의 계단 앞에서 "먼저 대문까지 내려가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를 외쳤다. 그날도 아마 딸이 이겼을 것이다. 원래는 내가 항상 져줬는데, 그날은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가다 진짜로 졌던 거 같다.


<계속>

그래도 이 집 사랑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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