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다

천양희

by mongchi

[0509] 견디다 by 천양희

울대가 없어 울지 못하는 황새와
눈이 늘 젖어 있어 따로 울지 않는 낙타와
일생에 단 한 번 울다 죽는 가시나무 새와
백 년에 단 한 번 피우는 용설란과
한 꽃대에 삼천 송이 꽃을 피우다
하루 만에 죽는 호텔펠리니아 꽃과
물속에서 천 일을 견디다 스물다섯 번 허물 벗고
성충이 된 뒤 하루 만에 죽는 하루살이와
울지 않는 흰띠거품벌레에게
나는 말하네

견디는 자만이 살 수 있다
그러나 누가 그토록 견디는가

#1일1시


스스로 견딘다고 인지한 순간

그 삶이 지긋지긋해진다


견디는 지도 모른채 견디고 있어야

하루가 저뭄과 동시에 곯아 떨어진다


견딘다고 인지한다는건

그래도 생각할 겨를이 조금은 남아있는

부유한 견딤같다


천일을 물속에서 견디고

스물다섯번의 허물 벗기를 견디고

얻는 건 하루니

태어나지 않는게 어떻겠냐고 물어도

대답은 같을거야


그래도
생이 좋다


물속에서의 삶도

허물 안에서의 삶도

날개달린 채 살았던 하루도

하루살이가 이뤄낸 삶이니까

그 과정이 통째로 하루살이의 삶이였으니까



각자 자기가 가진 대로, 태어난 그 자리에서

자신의 무능을 발견하고 나아지도록 노력하고

나아질때까지 견뎌내고 나아지는 재미에 사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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