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작가, 글에 대하여
독서일기를 이제 정말 꾸준히 써볼 요량으로, 어떤 책을 선별해서 쓸 것인지 생각해봤다.
그러다 집을 둘러보니 가관이다. 책꽂이는 이미 포화상태라 거실 테이블이며, 침실 한켠에 산처럼 쌓여 있는 책들. 좋게 말하면 편견없이 책을 읽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취향없이 읽는 것인지 모르게 책도 참 대중없다.
(아마 좋아하는 장르나 작가, 공부하고 싶은 분야, 호기심 있는 이슈에 맞춰 책을 사다보니 그렇게 되었지만.)
내가 읽는 책으로 나를 표현한다 치면,
사람 심리에 관심이 많으며(심리학),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고(에세이), 터놓고 말하기 힘든 그 어떤 마음에 귀기울이고(시집), 어딘가 있을지도 모를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며(소설), 기획이나 경제, 마케팅(실용서)에 종종 관심을 두는 사람이겠다.
적고 보니 썩 틀린 말은 아니네. 나는 그게 글이든 사람의 말이 됐든 들어주는 걸 좋아하니.
언제고 친구가 그랬다. 너는 컨설턴트를 해야한다고. 누군가의 작은 마음의 동요를 쏜살같이 알아채곤, 거기에 마음을 보태주는 일을 잘한다고 했었지. 하고 싶은 게 없다면서도 한번씩 종종 마음 가는 일에 대해 무심히 말하는 친구에게, 언젠가 어디서 읽은 적 있는 이야기를 해주며 이렇게 하면 어떠냐고. 지금이라도 당장 하고 싶게 뽐뿌질을 한다고 했더랬지. 그 시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새벽이 넘게 우리는 그렇게 열을 올리며 말했더랬지.
아. 잠깐, 삼천포로 빠졌지만.
요새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잊고 살았다. 의식하지 않으면 이처럼, 내가 누군가를 잊게 된다.
그래서 내가 뭘 좋아했더라? 생각해보기로 했다.
좋아하는 작가
한 명만 꼽는 건 참으로 덧없고, 의미없다. 그리고 때때로 '좋아하는' 의 범주가 달라졌고, 마음에서 지웠다 다시 그리웠다, 생각났다 하니.
-시드니셀던. 학창시절엔 정말 추리소설에 홀랑 빠져살았다. 그 밀도 있는 이야기라니, 반전이라니. 아니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생각할 수 있지? 싶어 읽고 또 읽었던 나의 유년시절 작가.
-폴 오스터. 20대의 나에게 큰 영감을 준 작가. 큰 동요 없이도 이야기의 매듬새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알았다. 고맙습니다. 작가님 덕분에 생각의 외연을 넓혔습니다.
-김연수. 직장 선배의 추천으로 <청춘의 문장들> 이란 책을 읽고, 작가가 궁금하여 호기심에 한권, 두권 읽다 마음을 빼앗겼다. 작가란 이렇게 섬세해야 되는구나, 남다른 관찰력이 필요하구나 싶어, 글 쓰고 싶은 나의 욕구를 좌절시켰던. 요새도 마음이 복잡하면 그의 에세이를 읽는다.
-김중혁. 도무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작가가 풀어내는 상상의 세상에 홀라당 넘어가 나는 종종 포털에 그런 직업을 검색해보고 피식 웃길 몇 번. 엇박자 내는 그의 엉뚱함이 계속 되길 바라며.
-김소연. 한동안 여행을 갈 때마다 꼭 빼놓지 않고 챙겨갔던 <시옷의 세계>. 같은 곳을 보면서도 그 너머의 무언가를 상상하는 그 힘에 반해 그의 작품을 몇 번이고 필사를 했더랬지. 물론 지금도.
-박 준. 시집도 좋지만, 에세이는 더 좋았던.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그의 인터뷰를 찾아봤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군가 싶어, 작가 그 자체가 궁금하게 만들었던.
-황현산. 힘들때 <밤이 선생이다>를 만났고, 한동안 가방에 넣고 다니며 한번씩 들춰내 읽었다. 신작 <사소한 부탁>을 다 읽기도 전에, 선생님의 작고 소식에 무척 마음이 아팠다. 좋은 스승은 왜 이토록 먼저 떠나게 되는 걸까.
-이석원. 그를 빼놓을 수 없다. 언니네이발관 음악을 좋아하고, 종종 그의 홈페이지에 적힌 일기를 몰래 훔쳐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누가 이렇게 솔직할 수 있을까. 마음의 검열없이, 온전히 글로 다 담아낼 수 있을까. <보통의존재>는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선물했으며,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큰 위로를 받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가장 인상깊게 읽은 건 <노르웨이의숲>이었지만, 그의 유머스러움이 느껴진 에세이들이 좋다. 긴 작품활동 덕분에 읽어도 읽어도 줄지 않는 작가 책 리스트가 있어 도서관 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매일 2시간씩 작품활동을 한다는 말에, 어찌나 놀랐던지.
글은 참으로 신기하다. 묵혀뒀다 꺼내지 않으면 녹슬 것처럼,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왜 그작가를 좋아했는지 도통 생각이 안나다가도, 이렇게 쓰다보면 다시금 작가가 그립다.
글맛이 느껴지는 작가의 글은 필사를 한다. 눈으로 한 번, 글로 쓰며 또 한 번, 작가의 글맛을 느끼고 싶은 탓이다. 오정희 선생님의 글은 가장 많이 필사했던 단편이었다.
천명관 작가의 소설 <고래>는 정말 파격 그 자체였다. 문법이란 문법은 모두 파괴하면서도, 너무나 강렬하게 풀어내는 서사에 압도되었다. 이거 뭐지? 싶었으나 끝까지 읽게 만들었던.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은 절대 잊을 수 없다. 서점에 서서 한장 두장 읽다 매료되어 1시간 넘게 그 자리에서 모두 읽었더랬지. 돌아오는 길에 그 책을 사서 나오며, 어찌나 가슴이 두근대던지. 웅장하면서도 밀도 있는 작품을 만나면 그렇게 설렐 수 없다.
이런 식으로 한권씩 곱씹으며 쓰다간 정말 많은 작가들이 툭 튀어나올지 모르겠다. 좋다.
독서일기에 쓸 작가들이 이토록 많은 거였어. 괜한 고민이었다.
책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좋아하는 작품은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보고 듣고 느끼면 새롭다. 보이지 않는 게 보이게 되고, 또 다른 감정이 생긴다. 작품 어딘가에 투영했던 내가 나이를 먹으며, 위치를 바꾼 탓이겠지. 왜 좋아했었지? 시간이 흘러 의문이 드는 작품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없으므로.
좋아하는 것들을, 그때의 시간에 머물게 두지 않아야겠다.
내가 나이를 먹는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들 또한 세월의 때를 묻혀 더 애정하는 작품으로 아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