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일기

#알라딘에 책을 팔았다

잘가, 나의 룸메이트야.

by 한여름의수박

몇 번의 이사를 경험하며, 가장 난처했던 것이 바로 책이다.

본가에서 첫 독립을 할 때, 이삿짐센터 직원은 '쓰던 방에서 옷 가지와 책 정도'를 챙기러 집에 왔다가 놀랐다. "책...꼭 다 가지고 가셔야 해요?"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책이 이사하는 게 가장 큰 혹(?)이 된다는 걸 몰랐다.

무겁고, 또 무거워, 이삿짐센터에서 기피한다는 걸...

그때 내 방엔 서재용 책장 두 개가 방을 두르고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책상 위에도 책이 넘쳐났다.

학창시절부터 모아온 책들인데다, 좋아하는 책들은 기어이 사놓고 본 탓이었다. 나는 책 냄새가 좋았고, 언제든지 기분에 내키는대로 책을 뽑아 읽는 것이 참으로 좋았다.

'그럼 이 책들을 다 어쩌나...'

난색하는 이삿짐센터 직원을 보며, 나는 꼭 가져가야 할 책들을 선별했다. 노란색 컨테이너 박스(?) 2개에 책을 채웠다. "이정도는 되는거죠..?"


#그리고 두번째 이사.

거처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거라 이삿짐싸기가 쉽지 않았다.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겨 택배로 부쳐야 할 상황에서, 가장 고민스러웠던 것은 역시 책.

'아. 나의 소중한 룸메이트를 이렇게 또 놓고 가야하는 건가.'

그렇다고 본가에 가져갈 수도 없고... 나는 그때 처음 알라딘에 책을 팔았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들은 우선 제쳐두고, 3번 이상 읽은 책들도 안돼. 가벼이 읽고 말았던 책들을 추려냈다.

그렇게 추리고 추렸는데도, 나는 꾸역꾸역 이 먼 곳까지 책들을 이고지고 왔다.


제주에 내려와서도 이사를 하면서 한 번 더 책을 팔았다.

매달 5,6권씩 꾸준히 책을 사는 통에, 이렇게 한 번씩 마음먹고 책을 처분해도 책은 언제나 쌓였다.

그리고 어젯밤.어지럽게 널브러진 책들을 보다가...안되겠다 싶어 책 정리에 나섰다.

'세상에...이 책이 여기 있었네?' 그렇게 찾을 때는 안보이더니, 책장 모퉁이에서 빼꼼 발견.


후보권을 추렸더니, 거의 50권.

한 번 읽고 만 책, 베스트셀러라고 하기에 읽어보려고 샀다가 절반도 못 읽고 덮어버린 책,

선호하진 않지만 공부하려고 산 책, 사놓고 펴보지도 않은 책...(반성하자), 재미있게 읽었으나 두 번은 읽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을 위주로 골랐다. 소설책들이 우수수 뽑혔다.

에세이는 언제든 내 기분에 따라 달리 읽히므로, 에세이는 후보군에서 제외. 소설책들은 아무리 재미있게 읽었어도 두 번 이상 잘 읽지 않았다. 소설책 중에서도 이야기가 잘 기억나는 것들부터 선별했다. 스토리가 흐릿한 것들은 한 번더 읽어보려고, 다시 책장행.


그렇게 다시 한 번 더 추렸더니 30권.

책장에서 서른권을 뽑았는데도, 이렇게 티가 하나도 안날 수 있는 걸까.(맙소사!)

온라인 알라딘서점에서 중고책 팔기를 하려고 열심히 바코드를 찍었다.

책은 언제나 첫 마음처럼 깨끗하게 보는 걸 좋아해, 언제나 상태는 최상!

'베스트셀러 분위기에 휩쓸려 샀던 책들은 매입가가 거의 1천원으로 통일이구나.'

'어? 매입을 안받아주는 책도 있네?!. 알라딘에서 구매한 게 아니었나?'

'오! 이 책은 왜 이렇게 매입가가 비싸지? 아. 비교적 가장 최근 책이구나.'

그렇게 한참을 혼잣말하며, 책을 꾸렸다.


책을 선별하며, 매입가가 가장 높았던 책 top 3.(유일하게 7천원이 넘었던 책들이다.)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그녀이름은

**말이 칼이 될 때


서른권을 신청했는데, 예상금액이 십만원 조금 넘는구나.

열심히 책을 팔았으니, 다시 열심히 책을 사야지(!) 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며,

열심히 알라딘을 뒤지는 평일 오후 4시.


# 나의 가장 좋은 벗이자, 룸메이트

독립한 이래 나의 가장 좋은 벗이자, 룸메이트는 책이었다.

친한 친구들에게도, 가족들에게도 터놓고 말할 수 없을 때. 답답하거나 막연할 때, 위로받고 싶을 때, 쉬고 싶을 때, 그럴때 책은 훌륭한 도피처였고, 안식처였다.


언제부턴가 밖에서 내 이야기를 잘 하지 않게 되었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을 터놓고 이야기 하는 대신 일기를 썼고, 누군가가 미워지거나 이해되지 않으면 책을 읽었다. 이런사람도 저런사람도 있겠지 싶어. 그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과 상황들이 존재하는 거라는 걸 받아들이고 싶어서.


말로 뱉어버리면, 어딘가에 흩뿌려져 남게 되는 말 대신, 그렇다고 꾹- 눌러삼키면 속병들기에 나는 그럴때마다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고마웠던 나의 친구들. 더 좋은 곳으로 가서, 다른 이들의 벗이 되어주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들춰보지 않으면 녹이 슬것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