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글 001
그 시작은 정확하게 기억 못 하지만, 정리를 할 때면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곤 했다. 물건도, 사람도.
몇 년 동안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버리고, 나중에 필요하게 되면 다시 사면된다고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가끔은 내가 버렸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그 물건을 찾기도 했었다. 이리저리 찾아 헤맬 때면, 옆에 있던 언니가 "그거 버렸잖아" 또는 "그거 나한테 줬잖아"라고 말을 한다.
나는 버렸다는 사실을 가끔 후회했다.
언니는 이런 나와는 완전히 달랐다. 물건을 잘 버리지 못했다. 내가 버리려고 하는 물건도 버리지 말라고 자기가 가져간다. 나는 그렇게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언니의 모습이 구질구질하게 느껴졌다.
물건에 대한 애착이 없었다. 나는.
생각해 보면 사람에 대한 애착도 없었던 것 같다. 물건을 버리고 정리하듯이, 인간관계도 정리하려고만 했다. 문제가 닥치면 사라지려고 했다.
이런 나에게도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 있다. 바로, 편지.
추억에 잠기기 딱 좋은 물건들이 있지 않은가. 편지, 사진, 일기장 같은.. 일기장과 사진은 안타깝게도 종종 나의 흑역사로 인해 버려지는 물건 중 하나였다. 언젠가부터 편지를 쓰지 않게 되었지만, 나에게도 편지에 마음을 꾹꾹 눌러 담던 시절이 있었다.
서랍 속에 있는 내가 받은 편지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어떤 편지를 썼었을까? 내가 쓴 편지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날 우리들은 입으로 담기에는 조금 쑥스러운 마음들을 글로 적어 표현했다. 어느 편지는 굉장히 마음이 무거워지고 슬퍼졌다. 그 편지를 다시 읽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을 아프게 했던 나 자신이 후회됐었다.
또 우리들은 편지로 오해를 풀려고 했다. 때론 오해가 풀리고, 평소에는 모르겠던 친구의 애정에 놀라기도 고맙기도 했다. 물리적인 거리감이 편지 하나로 해소되기도 했다.
한 편지를 다시 꺼내어봤다. 정직한 흰색 봉투.
편지를 읽고 다시 풀로 봉해두었는지, 뜯은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다. 손으로 북 찢어 열었을 때는 네 장의 편지지가 들어있었다. 스물한 살 한 해를 함께 했던 친구의 편지였다. 한때 서로 깊은 오해가 생겨, 서로 쳐다보지도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 대한 미움과 오해는 더해갔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소함으로부터 시작되어 깊을 데로 깊어졌던 오해가 풀리고, 심적으로 물리적으로 멀었던 우리는 그날, 더 가까워졌다. 그날 내 마음은 따뜻했다.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얼마나 자존심 상하고, 힘든 것인지 알기에 그 친구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그 이후로 그 친구에 대한 마음은 조금 특별해졌다.
동성은 아니었기에 어느 때에 이 친구는 군대를 갔고, 어렵게 전화한 것이겠지만 잦은 전화 연락에 나는 예전에 느꼈던 그 특별함은 뒤로하고, 점점 친구의 연락이 귀찮아져 피하게 됐었다.
지금 그 네 장의 편지를 다시 읽고 있으니, 이 친구의 담백하지만 깊은 마음과 나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땐 왜 몰랐을까? 나는 왜 그때, 귀찮음이란 원초적인 감정으로 그 친구를 또 멀리 보냈던 걸까.
물건에 애착이 없듯이, 사람에게도 애착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그러다 한 번씩은 사람의 정이 그리웠다. 내가 끊어냈던 인연들을 생각해냈다. 버리는 것은 쉽지만, 다시 찾아낼 수는 없었다. 이제는 내가 버렸던 것을 다시 찾는 내가 구질구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쓸모없는 것을 남겨두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