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참아서 넘어갈 일이면, 넘어가."
참는 일은 항상 어렵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후배의 제수씨에게 고민을 상담하다가 들었던 말이 꽤 오래 마음에 남는다. 2020년을 되돌아봤을 때 참 많은 싸움을 했다. 싸움의 대상은 나였다가, 부모님이었다가, 와이프였다가, 고양이였다가, 친구였다가, 상사였다가, 후배였다가, 어느 날은 뜬금없이 청소기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청소기와 싸운 날, 100만 원을 주고 샀던 청소기가 고장 났다. 청소기가 고장 남으로써 그 싸움은 내가 이긴 싸움이었을까. 청소기가 고장 나고 한참 동안 청소를 못 하게 되자, 마음에 쌓이는 짐처럼 먼지만 주변에 쌓여갔다. 게다가 청소기를 고치는 일은 얼마나 번거롭던지. 겨우 찾아간 AS 센터에서 부품을 대기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몇 주 뒤에 다시 방문. 거진 한 달이 넘어서야 청소기는 다시 작동했다. 겨우 청소기와 싸움으로 이어지는 시간 소비가 이러한데 사람과의 싸움은 어떨까.
나는 왜 그동안 넘어가지 못했을까. 참지 못했을까. 반론하자면 나도 쌓인 것이 있고, 상처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받은 상처를 말해야만 했고, 내게 쌓인 감정만큼 돌려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상처와 쌓인 마음을 털어놓지 못한다면 나는 참을 수 없다.
그 참을 수 없는 마음 때문에 나는 청소기와 싸워 고장 내고 한 달을 먼지 속에서 살아간다. 지난달에 싸운 희원이와 싸움이 그랬고 얼마 전에 싸운 엄마와 싸움이 그렇다. 보이지 않는 관계의 먼지들이 부산물처럼 내 주변에 쌓이고 나는 그 먼지 속에서 살아간다. 제수씨의 말처럼 "나만 참아서 넘어갈 일"에 대한 정의가 시급하다.
나는 쌓였던 마음과 상처 받은 일에 대해 말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까. 넘어가면 나는 먼지 속에서 살지 않아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