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이는 미리 켜는 게 매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늘 깜빡한다.
가까운 곳에서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문제는 가까운 곳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내 피부에 와 닿는 일이 됐다는 것.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니라는 것. 유연 출근제와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우리 회사에 비해 아내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성수동 출퇴근을 해야 한다.
양평 사는 엄마한테 가서 "희원이 출퇴근 좀 해주려고 하는데 차 좀 빌려주십시오."라고 말하고 작디작은 모닝 한 대를 빌려왔다. 덕분에 서울 북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연신내에서 성수동까지 가기 위해서는 내부 순환 도로를 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광화문을 지나 종로를 가로질러 갈 수 있지만, 교통체증 때문에 차라리 제주도를 가는 게 더 빠를 수도 있겠다.
성수대교로 빠지기 위해서는 동부간선도로와 합쳐지는 구간이 있는데 그곳에는 '상시 정체 구간', '끼어들기 단속 구간'이라는 푯말이 적혀있다. 내가 생각하는 '연신내-성수행' 도로 중 가장 마의 구간이다. '끼어들기 단속 구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횡횡 달리는 3차로에서 4차로로 진입하기 위해 깜빡이를 깜빡깜빡, 그 빛이 도로 위에서 뻐끔거린다.
평소에는 그렇게들 켜지 않는 깜빡이를 다들 연신 들이민다. 그 깜빡이는 본인보다 오래 그 길을 지나가려 기다렸던 뒷사람들의 감정을 깜빡했고 시간을 깜빡했다. 나는 틈을 주지 않으려고 앞 차와의 간격을 최대한 좁히고, 틈이 생기면 액셀을 적당하고 빠르게 부웅 밟다가 다시 브레이크를 꾸욱. 멀미가 난다. 이 길을 지날 때마다 이런 멀미 나는 짓을 그리고 끼어드는 사람들에게 나의 감정과 시간을 깜빡 당하는 일을 겪는다.
그러다 문득 지나온 관계의 길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깜빡을 했을까 생각한다. 성수대교 구간에서 깜빡당한 나의 시간과 감정처럼, 나로 인해 깜빡 당했을 사람들의 감정이 어땠을지 상상한다. 나의 깜빡에 대해 용기를 내어 말해준 사람들. 그래서 내가 알게 된 나의 깜빡과 그것으로 타인의 감정과 시간들, 그 외에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에게 닿지 못한 피드백은 얼마나 많을지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들은 금방 잊었을까, 아니면 나의 이 글을 읽으며 다시 그 순간이 떠오를까. 지금은 기억조차 못하는 나의 깜빡에 대해 이후 누군가는 나에게 말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