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첫 퇴사.
그동안 핸드폰 메모장, 에버노트, 노션, 네이버 블로그 등에 흩어져 있던 글을 모아 브런치에 올려볼까 합니다. 글을 쓰는 과정이 녹록지는 않겠지만, 학교 후배 종은이가 보여주는 꾸준함이 자극이 되었습니다. 삶에 루틴이 아니라 리프를 만들고 싶습니다.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 표현되는 일상의 리듬감이 모여서 내 삶이라는 아름다운 곡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 글은 2018년 3월 사회생활을 시작한 첫 회사를 퇴사한 직후 작성된 글입니다.
2015년 7월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에 아르바이트로 들어온 회사. 3년의 시간 동안 두 번의 연봉협상을 거쳐 오늘 마지막 출근을 했다. 지금 이 기분을 놓치고 싶지 않아 글을 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닥쳐올 두려운 이직에 대한 압박감이 아직 오지 않았을 때, 첫 퇴사에 대한 순수한 감정을 남겨 놓고 싶다.
정확히 오늘 3시 30분에 마지막 퇴근을 했다. 최근의 대규모 인사이동 때문이었는지 혹은 나와 함께 일했던 동료의 절반은 이미 퇴사를 하고 없어서인지 감정적 동요가 이상하리 만큼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처음 느껴보는 감정 앞에서 아무런 표현 조차 하지 못하는 어린이가 된 기분이다.
방금 결정한 생각인데 퇴사에 더 이상 어떠한 감정을 느껴야 한다는 셀프 강요를 하지 않기로 했다.
좋은 회사였다. 가좆같은 분위기가 아니라 정말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인간미와 나름의 실력이 공존했다. 상기 사항은 과거완료형으로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다만, 최근 몇 개월 동안은 그렇지 못했다. 재밌는 일이 쏟아지고 하루하루가 즐거운 긴장으로 가득 찼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다니지 못하겠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왔고 그 감정이 막무가내로 퇴사를 부추겼다. 호상이가 이야기했던 몸으로 느껴지는 퇴사였다.
나는 작년부터 회사 욕을 참 많이 했다. 회사에 대한 험담 소재는 주로 다른 회사와 연봉을 비교하거나 업무처리 방식과 조직의 시스템에 대해 딴지를 거는 것들이었다. 나는 첫 회사에 애정이 있었다. 그래서 더 많이 욕했다. 지금보다 더 괜찮아질 수 있는 회사는 자꾸 경로를 이탈했다. 나만 욕을 하는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서 나처럼 회사를 욕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대개 근속연수 2~3년 이상의 4~6년 차들이었다. 욕을 하면서 출근하고 욕을 하면서 퇴근했다. 그렇게 욕을 6개월 이상해도 달라지기보다 뒤로 물러서는 회사가 보였다. 근속연수가 3년 이상이던 많은 사람들이 설 이후 사라졌다. 한 달 전에는 5개였던 그룹이 2개로 축소됐다.
나는 더 이상 설 곳을 잃은 가출 학생처럼 배회했다. 마음은 둥실둥실 떠다니고 얼굴은 경직됐다. 점심을 먹기가 싫어서 자주 거르기 시작했다. 아침 밤낮으로 회사에 대한 생각을 자주 했다.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사실 3년 차 주제에 바꿀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무렇지 않게 퇴사를 결심했다. 방정식을 어렵게 풀다가 툭하고 답이 튀어나왔다. 이직할 곳을 알아봐 두지 않은 대책 없는 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까지 잃고 싶지 않았다.
살다 보면 갑자기 툭 사건이 일어나거나 상황이 바뀌게 되는데 이번이 나에게는 그렇다. 기분이 좋았다가 울렁거렸다. 엄마 손을 놓쳤는데 웃고 있는 놀이동산의 미아 같다. 엄마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올 때쯤 나도 퇴사가 실감이 날 것 같다.
기분이 좋았다가 섭섭했다가. 포기했다가 서늘해진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고 그저 축축하다.
내일부터는 뭐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