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힌 게 많다는 것
서울살이는 올해로 12년이 넘었다.
하고 싶은 거나 하며 좋아하는 그림을 그린 반 백수 같던 미대 시절, 부모님의 품에서 갖은 떼와 투정을 부리며 온실 속 꿈을 키워 갔었다.
취업을 위해 서울로 향하고 해커스 재택 아르바이트와 컴퓨터 학원 웹퍼블리셔 과정을 병행했던 시간.
처음 맨땅에 박치기하던 시절이었다.
국비지원 알아볼 시간에 공부나 하고 생활을 위한 아르바이트나 알아보라던 엄마의 마지막 지원 덕에
대충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학원에서 수업과 자습을 하고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나중엔 시간을 늘려 새벽 1시까지 재택근무를 하였다.
타지생활은 그렇게 최소한의 수익을 내는 아르바이트 덕분에 참 재밌고 열심히 임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과정을 통해 포트폴리오도 만들었고 거기서 만난 친구와 함께 지원한 인턴쉽도 마칠 수 있었다.
인턴으로 간 기업은 꿈의 기업 프로그램에 나올 만큼 주 4일제로 좋은 복지의 회사였고
같이 다녔던 인턴 친구들도 법무팀 해외영업팀 등 내가 살면서 접하지 못한 어려운 일들을 해나가는 멋진 분들이라 참 좋았던 것 같다.
꿈같던 병아리 인턴쉽 프로그램을 잘 수료한 뒤, 나는 본격 3D업계의 문화를 접했고
SI 기반의 전문 투입 업체에서의 경력 끝에 프리랜서가 되어 IT 호황도 누리는 10년 차 웹퍼블리셔가 되었다.
그렇게 이룬 독립적 생활 속에서 크고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여지없이 돌아오는 12월과 새해.
31살 12월 인하우스로 입사하며 최종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인하우스 생활은 프리랜서 생활보다 잡다한 스트레스가 많았다.
그렇게 뒤섞인 감정들에 나를 좀먹는 생활이 지속된 것 같았다.
나약한 마음이 들 때쯤.
꾹 참던 마음의 임계치가 찼다.
여유가 없었고 회사에서 누리는 모든 것들을 이제는 내려놓고 자신을 정비해야 할 시간에 이르렀다.
젊은 혈기로 이겨내 온 12년간의 시간 끝에 나는 가슴에 맺힌 피땀을 안고 다음 행선지 없는 티켓을 끊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희망하나를 갖고.
이글에서 앞으로 어떤 계획을 잡았는지는 작성하고 싶지 않다.
지금 나에겐 나의 상태를 오롯이 남기며 나를 달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서.
긴 여정의 시작.
직종을 선택한 나는 꽤나 잘 풀렸고 인생의 밀물에서 배를 띄웠다.
바쁘게 노를 저었고 어느새 꽤나 큰 배로 바꿔 탔는데
거울을 보니 나는 나이가 들어가고 몸은 쩍쩍 말라가고 있었다.
용감하던 긴 타향살이 끝에 휴식이 필요해졌던 것이다.
엄마의 부름으로 고향에 온 나는 당신을 따라 용하다는 한의원에 갔다.
특이한 것이 최초 방문 시에 환자의 사진을 찍는데 나중에는 그 용도를 알 것 같았다.
느긋한 성격의 원장님 덕에 1시간 20분 정도 기다렸고 대화를 하듯 상담을 받았다.
꼬리뼈가 아팠다고 마지막 증상까지 말씀드린 뒤 말을 마쳤다.
원장님이 차분하게 말했다.
“꼬리뼈가 아픈 건 그냥 한마디로 뿌리에 진이 빠진 거야. 제일 중요한 게 그거야.”
체력 및 바닥까지 간 상태라고 판단한 선생님은 여기저기 눌려보며 진료를 이어갔다.
양 가슴 중간을 눌렸고 찬 걸 좋아하냐고 되물었다.
나는 압박이 가해지자 참 시원했고 여름에는 찬 것을 먹지만 긴장도와 피로도가 높아서 그런지 평소에 따뜻하게 먹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여러 이야기들을 나눈 끝에 한마디 던지셨다.
”일 열심히 하고 골병 들어서 온 거야. 몸도 마음도. “
그 말씀을 전하며 마음을 느긋히해야한댔다.
긴장할 거 없다고 나쁜 사람 아니라고 허허 웃는 한의사선생님의 그 한마디에 눈물이 찡했다.
무엇보다 그간의 고생의 시간들을 진단으로 짚어주는 선생님을 향해 잠깐 울먹거렸다.
지난 노력들이 푸념거리는 아닌데 내 마음 상태가 좋지 않으면 지나간 일은 푸념이 된다.
열심히 노력한 뒤 마음의 아픔을 겪은 나는 지난 시간을 바라보며 기쁘게 가슴 한구석에 훈장을 달수 없는 상태였다.
침치료를 시작하고 손, 발, 배, 가슴 중간쯤에 침을 맞았다.
가슴 쪽 침을 꽂으니 거짓말처럼 해맑던 20대 초반의 가슴처럼 후련해졌다.
개인 사업을 준비 중인 고향 친구와 중국집에 가서 탕수육과 자장면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4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 몇 년간 너무 치열하게 살았던 탓에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친구에게 세세하게 털어놓았다.
갑자기 글을 쓰게 된 계기와 지금의 심정.
연약해진 마음에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새로 들이닥친 어려움.
공감해 주는 상대에게 후련하게 털어내는 시간을 보냈다.
친구는 얘기를 정말 잘 들어주었다.
우리는 며칠 더 있으니 시간 맞으면 또 보자며 헤어졌다.
집에 돌아온 나는 가슴팍 침 맞은 자리에서 피가 난 것을 보고 놀랐다.
엄마는 기교만 부리는 탓에 대충 꽂아 넣은 침 탓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게 꼭 마음에서 난 눈물 같아서 빤히 바라보았다.
한의사 선생님의 맺힌 게 많아 보인다는 말 한마디에 마음의 여유를 찾을 구멍 하나를 찾은 것 같았고
어젯밤 자다가 깬 나의 호흡은 어제보다 편안하고 온몸에 긴장이 풀렸다.
한의원에서 찍은 내 모습이 나중에는 어찌 보일지 궁금한 마음이 든다.
아마 한의사 선생님은 마음을 치료하는 사람인가 보다.
물리치료 내내 환자들의 상태를 체크할 때 마음을 편안히 하라는 말을 내내 하시던 걸 보면.
다정한 공감의 한마디 힘이 이렇게나 크다.
긴 시간 맺혀온 응어리가 사르르 녹아버리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