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일기 세 번째 이야기

1차로 chill-하다.

by 몽환

*쉼표 일기는 작성 후 다음날 발행됩니다.


오늘은 방년 3세 치와와 나나를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친구네 집으로 놀러 가기로 하고 점심시간까지 늘어지게 잠이 들었다.

일어나서 씻고 오랜만에 고등학교 때 친구였던 그녀의 집으로 놀러 가는 길.

18살에 갔던 길이였고 20대에도 친구가 이사를 하면서 간 첫 방문이 다였다.

익숙한 듯 익숙지 않은 그곳에는 오래되고 낡은 문방구가 있었다.

요즘 찾기 힘든 매대에 불량식품, 장난감이 널려있는 낡은 슈퍼마켓이 있었다.



정다운 광경에 핸드폰을 꺼내 들어선 풍경을 담았다.

그리고 보이는 근처 광경들도 친근하고 좋았다.


이바구길 전경


소소한 순간에 남겨지다 보면 이렇게 자연스럽고 소란한 광경을 마주할 때가 있다.

오늘이 그랬다.


이 순간 여유를 통해 과거에 머무르는 잠깐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고등학생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친구가 끓여준 오이가 얹어지고 살짝 설탕이 뿌려진 맛있던 비빔면이 떠올랐다.


친구와의 첫 대면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장면이 선명한 이유는 친구의 존재가 그때 완전히 각인되었던 순간이라서가 아니었을까?


예쁘고 오래된 기억을 뒤로하고 그렇게 삐뚤빼뚤한 길을 걸어 친구집에 도착했다.


친구의 집으로 문을 연 순간 소중한 털뭉치는 3초 킁킁거리더니 기쁨에 짬푸를 뛰어댔다.


흰색 검은색 털로 알록달록한 작고 소중한 나나.

처음 데려왔을 때 몇 번 본 뒤로

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벌써 의젓해졌다.

나나는 이렇게 생겼다.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요즘의 나는 많은 것을 기록하고 남기고 싶은 마음이 컸다.

오늘은 꼭 나나를 그려줘야겠다는 생각에 크레파스와 볼펜 그리고 종이를 챙겨 왔다.


느린 템포로 10분 정도를 할애하니 3개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는데,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직접 그림을 만드는 것은 참으로 담백한 일처럼 느껴졌다.

크로키는 꽤 짧은 시간을 내어 최적의 효율을 낼 수 있어 좋았다.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크로키를 좋아한다.

한순간에 담기는 크로키나 낙서화는 투박하고 직관적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눈 속에 담겼던 나나는 참 작고 사랑스러웠다.



반려인을 바라보는 반려견의 사랑.

그 눈에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 담긴다.

내 무릎에 기댄 모습과 나를 바라보는 나나의 모습도 담았다.



친구의 가족이 모두 사랑하는 반려견 나나.

나는 그렇게 친구의 가족에게 줄 선물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거의 십 년도 넘게 못 보았던 친구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친구와 함께 느긋한 평일오후를 누릴 수 있는 게 얼마만인지, 문득 어른이 된 것이 체감되는 하루였다.


우리의 모습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부모님께 인사드린 뒤 나는 교복을 입은 소녀처럼 쑥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익숙한 회사를 이제는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이 민망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나나를 데리고 산책에 나섰다.

조그만 털뭉치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세상의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네 발이 닿이는 길에 충실하게 새로운 자극을 콧속 가득 담아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바른 방향으로 잡아주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들의 동행길에는 부산에서 자라며 늘 맡아온 익숙한 꽃향기가 났다.

예전이었으면 10월쯤 났던 그 향기가 이제는 11월에 난다.

조금의 변화와 익숙한 감각을 담은 부산은 정말 사랑스러운 곳이다.

완벽한 모습의 도시 부산은 친구와 함께여서 그 감동이 두 배였던 것 같다.


어릴 때와 같이 여전한 모습으로 남아준 친구 덕분일까?


우리는 조금 아쉬운 마음에 내 부산여행기에 화려함을 장식할 “쌍둥이 돼지국밥”먹기를 시전 했다.

왠지 소주보단 맥주 한잔이 떠올랐다.

여기는 국밥을 시키면 손해다.

수육백반을 두 개 시키곤 따뜻하고 시원하게 속을 채웠다.



그렇게 짧은 chill-time을 끝내고 우리는 2차 chill-time을 위해 체력을 재정비하기로 했다.


각자의 집으로 향한 우리는 밤 10시 은밀히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