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껍데기를 모은다.
양파 껍질도 모은다.
찻잎 찌꺼기도 모은다.
위 세 가지는 모두 음식물 쓰레기로 버릴 수 없는 것들이다. 물기를 말리거나 꼭 짜서 일반 종량제 봉투에 담아서 버려야 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집 쓰레기봉투에는 세 가지가 들어가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양파 껍질은 들어간다. 하룻밤 목욕을 한 다음에.
요즘은 아침에 눈만 뜨면 베란다를 내다보는 재미로 산다. 밤새 아이들이 잘 지냈는지, 너무 춥지는 않았는지, 바람에 많이 휘둘리지는 않았는지. 이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 궁금하다. 몇 년 전 TV 드라마에서 손예진 배우가 했던 것처럼 매일 음악을 틀어주고 좋은 단어 10개씩 말해줘야 할까? 아들, 아들 제대, 엄마, 갱년기 극복, 공모 당선, 주식 배당금, 사랑, 평화, 그리고 또 뭐가 있나....
더 나은 베란다 실험실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내게 유능한 식집사 선배는 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팁을 전수해준다. 그 가운데 내가 적극 실천하고 있는 것이 달걀 껍데기와 양파 껍질, 그리고 찻잎이다.
달걀은 깨자마자 깨끗이 씻고 안에 있는 얇은 막을 벗겨낸다.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아침으로 달걀을 먹는 경우가 많은데 바쁜 아침 식사 준비 시간에 달걀 막을 벗기는 일은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다. 설거지 때 같이 하려고 한쪽으로 밀어놓고 나중에 보면 막이 말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최소한 깨끗한 물에 담가 두는 정도의 수고는 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주방 창가에는 달걀을 모으는 통이 따로 있다. 바짝 말려야 냄새도 안 나고 부숴서 쓰기도 좋다.
양파껍질 모으는 것도 일이다. 주황색 얇은 겉껍질만 잘 벗겨서 모아야 한다. 흰 부분은 매워서 쓰지 않는 것 같다. 양파껍질도 바짝 말려서 사용하는데 뚜껑을 덮으면 잘 마르지 않고 뚜껑을 덮지 않고 바람 통하는 곳에 두면 사방으로 날아가 주우러 다니는 게 일이다.
겨울에는 차를 많이 마셔서 찻잎 찌꺼기 모으기가 쉬운데 날이 더워지면서 찻잎 찌꺼기도 귀하신 몸이 됐다. 유일하게 생존해있던 관음죽 화분은 그동안 혼자 독식하던 찻잎 찌꺼기를 하루아침에 빼앗기게 됐다.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이다. 씨앗 뿌릴 때도 그랬듯이 처음 달걀 껍데기를 줄 때도 열심히 모아서 ‘많이 먹고 쑥쑥 커라~’하는 마음으로 듬뿍듬뿍 줬다. 그리고 또 지적받았다. 뭐든지 적당히. 모르겠으면 좀 모자란 듯이.
맞다. 제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과한 것은 꾸준한 것만 못한 법이지.
모든 결과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동안 내가 수도 없이 많은 식물을 죽인 이유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능한 식집사 선배는 그 많은 씨앗들을 어떻게 싹 틔우고 꽃 피워서 길러냈겠나. 관심을 갖고 애정을 주었기 때문이다. 모든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아들 먹일 것을 챙기지 않아도 되니 베란다 작물들 먹을거리를 챙기고 있다.
오늘 아침 남편이 한마디 하고 출근했다.
아들 전역해서 돌아오면 재들은 국물도 없는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