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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주일장춘몽 May 20. 2022

<7> 아보카도 관찰일지 I

#4월 13일


내 손으로 아보카도를 사보긴 처음이다.      

고소한 건지 느끼한 건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그 맛을 좋아하지 않았을뿐더러 아보카도를 키우는데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하고 멕시코 아보카도 농장을 마약 카르텔이 소유하고 있다는 뉴스들이 아보카도에 대한 생각을 무겁게 했더랬다.          



#4월 11일


코로나 격리가 해제되는 자정 12시. 먼저 코로나를 앓고 난 남편이 격리 해제를 축하한다며 맛있는 것을 먹자고 유혹했다. 밤 12시에 무엇을 먹는단 말이며 어떻게 먹는단 말인가? 그동안 장도 보지 못해 냉장고가 텅텅 비어 있는데... 그리고 여긴... 배달의 천국인 대도시도 아닌데 말이다.     


열심히 검색을 하던 남편이 뜻밖의 메뉴를 발견했다. 과카몰리와 나초. 이 동네에도 이런 음식이 배달이 되네??          



# 4월 13일


그날 이후 가끔 과카몰리를 만들어 먹었다. 여전히 아보카도를 고를 때면 마음이 무겁지만 이성이 식욕을 누르지는 못했다.(장바구니에 자주 담지는 않겠습니다ㅠ) 만들기도 쉽다. 아보카도, 양파, 토마토, 청양고추, 레몬즙, 소금, 후추. 아보카도를 으깨고 적당하게 자른 양파와 토마토, 청양고추와 섞은 후 레몬즙과 소금, 후추로 마무리하면 끝.

     

내 손으로 사 본 적이 없어서 아보카도 씨앗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 적도 없다. 딱히 맛있는 줄 몰랐기에 그동안 어쩌다 굴러온 아보카도를 물러서 버려도 말라서 버려도 크게 아깝지 않았다. 과육과 분리해서 버려야 하는 씨앗은 더구나 처리하기 귀찮은 쓰레기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아까운 과육을 알뜰하게 싹싹 긁어먹고 나니 동글동글 멀끔한 씨앗이 남았다. 폭풍 검색을 통해 아보카도 씨앗을 발아시켜 그럴듯한 화초로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4월 15일


아보카도 씨앗을 깨끗하게 씻은 다음 분리배출 하려고 치워뒀던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일명 플라스틱 하우스)에 담았다. 씨앗 전체에 수분을 잘 유지시키기 위해서 두툼한 키친타월로 이불을 덮어주고 물을 자작하게 부어주었다. 그리고 무선공유기를 보일러 삼아 발아에 들어갔다. 많은 식집사님들이 무선 공유기는 늘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어서 씨앗 발아 최적의 장소라고 알려줬다. 역시 검색이 힘이다!          



공유기 보일러 깔고 앉은 플라스틱 하우스















#4월 25일


아직 추운 4월이라 그런지 아보카도 씨앗은 열흘이 넘도록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러다가 키친타월 이불에 곰팡이가 피지는 않을지, 씨가 썩어버리지는 않을지 궁금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가끔씩 플라스틱 하우스 뚜껑을 열어 물을 보충해주고 환기가 잘 되는지, 보일러는 잘 돌아가는지 확인하면서 기다리는 것뿐이다.          



#4월 28일


13일째 되는 날, 이불을 슬쩍 들춰보니 아보카도 한 알(아보 1호)이 약간 벌어져 있다. 다른 한 알(아보 2호)에도 금이 슬쩍 가 있다. 아~ 아이들이 죽지 않았구나. 살기 위해서 나름대로 용을 쓰고 있구나. 깨끗한 물로 갈아주고 충분히 환기를 시키고 다시 보일러 위에 모셔뒀다.          



#4월 30일


무선 공유기 보일러의 힘인가? 이틀이 지나자 아보 1호의 갈라진 틈 사이로 뿌리가 삐죽 나온 게 보였다.      


다른 아이들(아보 2,3호)은 아직 그대로다.            


뿌리를 보여준 아보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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