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 개체수 어쩌고...
는 뉴스에서나 듣던 말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그 단어가 요즘 우리 집에서도 아주 유용하게 쓰이는 말이 됐다.
“어? 벌써 적정 개체수를 넘어섰네. 오늘 저녁에는 먹어 줘야겠구먼...”
5월 중순을 넘어서면서 일조량도 많아지고 기온이 급격히 오르자 식물들의 생장 속도도 눈에 띄게 빨라졌다. 그동안 밤에는 자고 낮에만 조금씩 돌아가던 베란다 실험실이 밤낮없이 돌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나흘에 한 번 물을 주면 잘 받아먹고 조용히 자라던 아이들이 이제는 더 자주 물 달라 아우성이고 크기는 왜 이리 또 잘 크는지. 한 주에 한 번 수확하기도 아깝던 것들이 자르고 돌아서면 쑥쑥 커있다.
적당히 자란 잎을 부지런히 잘라주지 않으면 바람이 통하지 않아 벌레가 생긴다. 한 번 벌레가 생기면 약을 쓰지 않고서는 여간해선 박멸하기 어렵다. 또 잎이 많아지면 다음 순서로 꽃대가 올라오는데, 꽃을 피우고 열매를 통해 씨앗을 남기려는 식물의 본능은 대단하다. 영양분은 꽃으로 다 가고 잎은 쓰고 질겨진다. 내가 심은 것들은 대부분 1년 살이 식물이라 꽃을 피우고 나면 제 임무를 다 한 식물과는 안녕이다. 모두 식집사 선배한테서 들은풍월이다. 적정 개체수를 유지하는 일은 먹이사슬을 유지하는 것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일주일에 2~3 번은 수확을 한다. 식구가 단출하니 양은 충분하다. 3종의 상추, 루꼴라, 이제 막 먹을만해진 고수. 그리고 곧 바질도 합류할 예정이다. 아침에 물 주기 전에 잘라 씻어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저녁에 꺼내면 아삭아삭 소리가 귀를 때릴 정도로 신선하다. 맛도 좋다. 샐러드로 먹어도 좋고 비빔밥을 만들어 먹어도 좋다.
전에는 마트에서 채소를 비싸게 샀고, 다 먹기도 전에 물러서 버린 적도 많았지만 이제는 그럴 일이 없다.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데 먹는 기쁨까지 누리니 그야말로 1석 2조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전혀 치지 않은 깨끗한 먹거리 덕에 건강에도 약간은 도움이 될 테니 도랑 치고 가재와 미꾸라지를 한꺼번에 잡는 셈이랄까.
그런데... 빨라도 너무 빨리 자란다. 아무리 맛있는 샐러드도 너무 자주 먹으면 질린다. 한 번은 생채소 비빔밥을 상추에 싸서 먹은 적도 있다. 나는 고기와 친하지 않고 남편도 육식 파는 아니다. 그래도 밥상이 점점 푸른 초원으로 변하는 것에 남편이 슬슬 신경을 쓰는 눈치다. 게다가 아들은 완성형 육식 파다. 건강 생각해야 할 나이의 남편이야 괜찮지만 아들 밥상은...
“걱정하지 마라. 아들 오기 전에 끝난다. 앞으로 길어야 한 달이다. 본격적으로 더워지면 갸들도 지친다”
식집사 선배가 걱정을 덜어주었다.
아~ 그렇구나.
그럼 그때는 뭘로 베란다 실험실을 꾸려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