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얼마나 더 자랐는지 손으로 어림해보고 먹을 만큼 자란 녀석을 잘라주고(어리고 싱싱한 루꼴라를 자를 때면 고소한 땅콩버터 향이 난다) 물을 주고 다음날 아침에 또 들여다보고.
그 뒤로 한동안 마음이 시끄러웠다. 시댁 문제, 제사 문제, 친정엄마 건강 문제, 가벼워지지 않는 여러 마음의 문제 등등. 마침 베란다의 식물들도 나의 관심을 전만큼 필요로 하지 않았고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이 들여다보던 베란다 식물에 대한 관심도 손길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 결과,
호랑이콩은 진짜 호랑이가 되어 있었다.
아직 콩알이 덜 여물긴 했지만 아기호랑이 정도의 자태는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장마가 빨리 지나고 콩알의 무늬가 더 선명해지길 기다리면 된다.
호랑이콩 덩굴
첫 호랑이콩
상추는 몇 대가 과습으로 죽어버렸고 기특하게도 살아남은 녀석들은 한동안의 몸살을 잘 이겨내고 다시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다. 꽃대가 올라오지 않도록 부지런히 잎을 따줘야 한다.
상추와 고수
고수도 집에서 먹을 만큼은 꾸준히 잘 자라주고 있다. 고수도 루꼴라나 상추처럼 부지런히 잘라먹어야 더 튼튼한 줄기가 잘 올라온다. 아깝다고 크게 키운다고 잘라주지 않은 고수는 오히려 자라지 못하고 누렇게 뜬다.
아끼다 망한 고수
바질은 역시 제 철을 맞아 제일 씽씽하다.
생장점에 맞춰 순을 자르고 물꽂이를 통해 뿌리를 내려 다시 심은 바질은 큰 조카의 손으로 넘어갔다.
루꼴라는...
애석하게도 다시 봉두난발이 돼버렸다. 자주자주 잎을 따줘야 하는데 점점 쓴 맛이 강해지고 그래서 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더니 잎 끝이 하얗게 말라가는 놈, 제멋대로 웃자라 꽃대를 올리는 놈, 벌써 꽃을 피워버린 놈 제각각이다. 관심과 손길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