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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유 Apr 17. 2024

프롤로그

참을 '인' 자 천 번은 썼어야 했어!


아버지가 떠나셨다.

뇌출혈로 쓰러지신 지 4년 만이었다.

사인은 뇌출혈과 전혀 관계가 없는 후두암이었다.


뇌출혈로 쓰러지시고 8일 동안 의식도 없는 코마상태.

이제 보내드리자는 말도 있었지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느냐며 귀를 틀어막았다.

한편으로는 영영 깨어나지 못하시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없지 않아 모두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그게 정성이었는지, 아직은 가족들 곁에 더 머물러 계셔야 할 이유가 있었는지 8일 만에 깨어나셨다.

코마상태에서 깨어나신 후에는 나날이 눈에 띄게 병세가 호전된 모습으로 중환자실의 다른 환자들의 병세를 걱정하실 정도였다.

그리고 겨울이 오기 전에 퇴원을 하셨으니, 서둘러 취직을 해서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이때쯤 시작되었다.




1차 시험 합격하고, 2차 시험은 아예 볼 수가 없었으니 미련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게 뭔 대수라고 서둘러 학교를 졸업하고, 졸업하자마자 공기업에 취직을 했다. 그런데, 결혼은 서둘러지지가 않았다.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빨리 진행되었겠지만, 결혼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눈에 들면 그녀가 아니었고, 그녀 눈에 들면 내가 양보를 많이 해도 주변에서 또 아니라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던 사이 결국, 아버진 며느리가 해 주는 따뜻한 밥 상 한 번 받아 보시질 못하고 그렇게 가셨다.

장례를 치르고, 신변을 정리하며 며칠을 더 쉬었다.

그다지 바쁠 것도 없이 출근을 했는데,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뒤 진급시험 공부한다며 찾았던 고시원에서 사직서를 썼다.


그것이 1999년의 일이다.

그때 생각을 달리해서 퇴사를 하지 않고, 공부에 미련을 두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내 인생은 어떤 모양일까?

누구나 다 해 본다는 현실불만족의 반대가정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제대로 해 본 것도 처음이다.


그래, 그때 참을 '인'자 천 번은 썼어야 했어!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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