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쯤이었다
빨랫줄에 걸린 하얀 셔츠가
바람 없는 눈가에 축 늘어져 있었다
무릎 아래로 짙은 그늘이 머물렀고
나는 한 뼘 남짓 그늘 속에 있었다
맑은 눈을 가진 고양이 한 마리 지나가고
누군가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 놓고 갔다
그것 말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한데
아니다, 아무렇지 않게 하루가 흘러갔다
집 앞 교회 높이, 담쟁이는 말을 아끼고
골목 끝, 아무렇게나 뒹구는 종이박스들은
다시 쓰일 희망을 안고 찌그러져 있었다
어쩐 일인지 눈에 드는 그 모든 것들이
누군가를 닮았다
생각해 보면, 사람이 산다는 것은
반쯤 젖은 발로
마룻바닥을 조심스레 걷는 일 같다
걷다가 멈추고, 멈추면 오래 서 있게 된다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아니면, 무언가를 견뎌야 하는 것처럼
그 시간들은 대개 조용히 흘러간다
애써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은
대부분 슬픔이었다
저녁이 깊어 갈수록
불 켜진 창문들 사이를
하릴없이 바람이 다녀간다
바람은 누구의 안부였을까
아무도 묻지 않았고
나는 가만히 있었다
바람은 아무도 앉지 않은 식탁 옆에 머물다
문득 등을 돌리고는 다시 길을 건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