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름이 없다
목을 열어도 목소리는 먼지처럼 흩어지고
누구도 뒤돌아보지 않는 언어로
나를 부른다
거울은 속에 안개를 품었다
내 얼굴은 그 안에 갇혀 흐려졌다
어느 날, 눈을 떴는데
눈꺼풀 너머가 꿈인지, 죽음인지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벽에 스며들다
창문 틈으로 번져가고
사람들의 눈동자에 그림자를 심는다
그들은 나를 오랫동안 알지만
내게 이름을 주지는 않는다
밤마다 내 안에선 구멍이 열리고
구멍으로 한 세계가 스며들다
이내 썩어간다
나는 무언가 되지 못한 존재가 아니다
분명한, 되려는 시도를 삼켜버린
모든 자아의 잔해다
길 위에서 신호등이 깜빡이면
나는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고
때론 사람이 되었다가
간혹, 발자국 없는 짐승이 된다
그 어떤 형상도 나를 고정하지 못한다
나는 현실의 가장자리,
살아 있으나 제대로 살아본 적 없는
기억되지 않은 생의 응어리
그래, 나는 안개다
누구도 삼키지 못하는,
모든 것을 썩게 하는 이름 없는 그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