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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질다글 Sep 21. 2022

내가 학교와 회사를 뛰쳐나온 이유(2)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대학교를 휴학하고 먼저 찾은 건 디자인 수업이었다.


근로하면서 행정 선생님이 알려준 교육 사이트에서 웹 디자이너 수업을 발견했다. 커리큘럼도 대학과 비슷하게 5개월로 짜여 있었다.


UXUI 웹&모바일, 어도비 툴, html, css 등

배우고 싶던 수업을 들을 생각에 잔뜩 신이 났었다.






왕복 5시간 정도 걸리는 위치에 센터가 있었다.

나는 이 정돈 감당할 수 있었다.


당시에 코로나 팬데믹이 가장 심했을 시기였다.

OT날에 딱 한번 오프라인 수업하고 1~2개월 간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했다. 온라인 하는 동안 수업 진도가 많이 느렸는지 이후로 쭉 오프라인 수업을 했다.


그 타이밍에 마침 수인 분당선이 개통했다.

통학 왕복 5시간을 2시간으로 줄였다.


난 아직도 천운이라고 생각한다!






배우고 싶었던 분야라서 재밌었고 수업 분위기도 좋았다.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2일에 1번씩 과제가 있어서 꽤 빠듯했다.


특별했던 점은 수강생분들의 나이대가 높은 편이었다.


처음에 사람들과 못 어울릴 줄 알았다.

그 걱정에 무색하게 모두 따듯하신 분들이셨고 포근하게 대해주셨다.


여성만 모집한 수업이라서 강사님을 제외하고 모두 여자분들이셔서 편하게 다녔다. 벌써 끝이라고 생각할 만큼 공부한 날이 있었고 버거운 날도 있었다.


정신없이 배우던 날 덕분에 퀄리티 높은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고 마지막에 경기도 지역 공모전에도 입상했다.


그렇게 5개월간 수업의 마지막 날이었다.

한 명씩 자리에 일어나서 하고 싶은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중 50대 초반이신 분께서 하신 말이 아직도 내 마음을 울렸다.


“제가 언제 또 22살인 분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수업을 들을 날이 있을까요. 정말 뜻깊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같이 수업 듣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게 생각해주시는 분이 계셔서 정말 놀랐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행복했던 반년 간의 웹 디자인 수업을 마쳤다.

정말 잊지 못할 것이다.






1년 휴학 중 남은 절반은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다른 공부를 할 것인지, 포트폴리오까지 완성한 웹 디자이너 이력서로 취업을 해볼지.


난 후자를 택했다.

포트폴리오까지 완성했는데 취업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사회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되는대로 이력서를 최대한 많이 넣었다.

넣는 족족 떨어졌지만 굴하지 않고 넣었다.


성수에 있는 디지털 에이전시에서 면접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집에서 가장 태양광이 예쁘게 나오는 곳에 앉아서 가슴 떨리는 줌 면접을 봤다. 질문에 열심히 대답하고 최대한 끄집어냈다.


어느새 끝인사를 마친 나는 목소리가 떨렸는지 발음이 이상했었는지 걱정됐다.

그냥 좋은 경험 했다고 셈 쳤다.






한 시간이 지나고 합격했다고 문자가 왔다.

‘정말? 이렇게 바로?’


심장이 마구마구 요동쳤다.

그 와중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회사 이름)입니다. 이력서 보내주셔서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면접 가능하신가요?”


하루에 2번 면접 연락을 받았다.

심지어 한 번은 합격 연락이 왔다.

너무 행복했다.






두번째로 연락받은 회사는 집 근처에 위치했고

복지가 잘 돼있어서 이력서를 넣었다.


그중 매력적으로 봤던 생일자 복지였다.

생일인 직원은 당일 3시에 퇴근하고 용돈도 주는 정책이다.

귀엽고 재밌는 복지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대중교통이었다.


회사 앞에 내리는 버스는 딱 1대였다.

가는 시간은 40분, 배차간격은 1시간 정도였다. 교통시설이 많이 안 좋은 곳이었다.


그래도 연락이 왔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기쁜 마음에 부모님, 친한 친구한테 소식을 전했다.


알고 보니 아빠 회사 근처에 있던 회사였다.

차로 가면 15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대면을 원했던 회사여서 다음날에 두 번째 면접을 보러 갔다.

아빠가 시간을 내서 나를 차로 데려다주셨다.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사무실에 2분이 계셨다.


의류 쇼핑몰이 잘 돼서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던 스타트업 회사였다.


사장님 두 분 중 한 분과 이 회사를 붙는다면 내 사수가 될 분과 면접을 봤다. 줌 면접을 한번 보고 나니 포트폴리오 질문에 곧잘 대답했다.


면접 질문이 끝나고 연봉 이야기를 꺼내셨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이 언급해주셨다.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냐는 말에 다음 달부터 가능하다고 했다.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모두 일어났다.

합격했다거나 나중에 연락 준다는 말이 없길래 의자를 정리하면서 물어봤다.


“합격한 건가요?”

“네. 다음 달부터 나오시면 돼요.”


글로 쓰니까 좀 웃기다.


면접은 1시간 정도 봤다. 시간이 흘러간지도 몰랐다.

압박 면접도 없었고 편하게 대해주셔서 좋았다.






전날에 합격한 에이전시 인턴의 근무기간은 2주였다.

다음 달까지 일주일의 텀이 있었다.


다양한 경험을 원한 나는 서울의 에이전시를 2주만 다니고 이 스타트업에서 근무하기로 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다음 달 1일부터 새로운 회사에 출근할 계획을 세웠다. 무슨 우연인지 몰라도 두 회사의 기간이 절묘하게 빗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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