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맞아 방문한 본가를 출발해 집으로 향했다. 출발지는 수원이었고 목적지는 세종이었다. 43번 국도를 타고 달리기 때문에, 매일같이 출퇴근하는 길을 지나는 경로였다. 아산을 지날 때 문득 아산중앙도서관 생각이 났다. 이 도서관이 매우 좋더라고 가보라던 동료의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던 것이다. 물론, 조금의 개인적인 사유도 섞여있기는 했다. 어차피 남는 것이 시간이니, 한 번 들러보자고 생각하고 경로를 이탈했다.
운전하는 내내 빗방울이 앞유리를 때리더니, 도서관에 도착해서도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차 문을 열고 내리니 비 오는 날 특유의 냄새가 났다. 달궈졌던 아스팔트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며 내는 조금은 탁한 냄새. 도서관을 들어서서 우선 화장실로 향했다. 부모님과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커피를 때려부었던 탓에 개인 용무가 급하기는 했다. 급한 불을 끄니 그제야 도서관의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1층과 2층은 열린 계단층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오르려고 보니 신발을 벗으라고 쓰여있었다. 빗물 묻은 신을 들고 오르기 귀찮아서 빙 돌아 계단실을 이용해 2층으로 올랐다. 최근 읽었, 아니 들었던 도서명을 종합자료실 도서검색대에 서서 하나씩 검색했다. 그중 대출이 가능한 도서는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뿐이었다.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의 저자는 가수 김창완이다. 산울림의 맏형이자 보컬이며, 배우로도 다작을 한 멀티엔터테이너다. 검색해 보니 펴낸 책도 10권 이상 되는 듯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모든 수식어보다도 DJ 김창완이 가장 익숙하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라는 열 세 글자다. SBS 파워FM에서 동명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햇수로 24년 동안 진행했다. 강산이라면 두 번 넘게 바뀌었을 것이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다섯 번이 바뀌었던 시간이다. 사람의 인생으로 따지면, 태어나 성인이 되어 남자아이라면 군대를 다녀와 복학했을 나이고, 여자아이라면 대학졸업장을 받아볼 나이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한 프로그램의 호스트로 보냈으니, 그 기간 동안 쌓인 경험과 내공이 얼마일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 시간은, 또한, 누군가에게는 일상이기도 했다.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김창완 아저씨 목소리를 듣노라면, ‘아 이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방학 때 늦잠을 자더라도 일어나서 김창완 아저씨 목소리가 들려오면 ‘그래도 11시 전에는 일어났네’라는 시간의 척도로 삼을 수도 있었다.
2024년 3월, 아침창 아저씨가 아침창을 떠난다는 소식을 동생의 인스타 피드를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 집은 기상하면 습관적으로 라디오를 켜고 저녁이 되면 라디오를 끄는 가정이었으니, 아홉 살 어린 나의 동생에게도 아침창 아저씨는 각별했을 터였다. 회사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나는 아침창을 들을 일이 거의 없었는데, 그럼에도 나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만, 아침창 아저씨는 영원할 것만 같았다. 동생의 피드를 보고 나서는 마지막 방송은 꼭 들어봐야지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중에 영상으로 확인했는데, 꽤나 울컥했다. 20년이 넘는 세월의 무게를 느끼셨는지 아침창 아저씨는 결국 눈물을 보이셨다. 나도 마음속으로 함께 울었다.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는 이 긴 세월 동안 라디오를 진행하며 툭툭 던지듯 전했던 오프닝과 사연자에게 전했던 답글을 엮은 책이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나침반이 될 수도 있겠다. 이 책이 <윌라>에 오디오북으로도 올라왔길래 관심이 생겨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듣기 시작한 지 나흘 만에 완독, 아니 완청 했다. 그런데 들어보니 글로도 읽어보고 싶어서 대출을 결심하게 되었다.
마침 아산시립도서관 회원가입도 며칠 전에 해 둔 상태였다. 모바일 홈페이지에 로그인하여 모바일회원증 바코드를 사서께 들이밀었다. 안된단다. 신분증 지참했느냐 해서 꺼내 보여드렸다. 주민등록상 거주지가 어디냐 해서 세종이라 했다. 직장이 아산이라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안된단다. 지금은 준회원 상태이고 재직증명서를 들고 와 아산 소재 직장인임이 확인되어야 정회원으로 변경되며, 그제야 도서 대출이 가능하단다. 알았다고 대답하고 책을 원래 위치에 두었다. 그러자 괜스레 오기 같은 것이 생겨났다. 도서관을 나오며 세종시립도서관 홈페이지를 들어가 책을 검색했다. 검색결과에서 ‘대출가능’ 버튼이 보였다.
아산중앙도서관을 나오며 다음 목적지를 집이 아닌 세종시립도서관으로 설정했다. 한편으로는 이게 뭐지 싶었다. 내 생에 출발지와 목적지가 모두 도서관이었던 적이 있었나… 생각해 봤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별일이네 싶었다. 한 시간여를 달려 세종시립도서관에 주차를 했다. 세종에도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곧장 자료실로 향해 도서검색을 하고, 책과 모바일회원증 바코드를 사서께 보여드렸다. 대출이 되었다. 이게 뭐라고, 짜릿했다.
빌린 책을 들고 비어있는 자리가 있는지 둘러보았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내가 앉을 한 자리는 구할 수 있었다. 엉덩이를 붙이고 책장을 넘겨보기 시작했다. 오디오북으로 한 번 들었던 책이라 그런지, 술술 읽혔다. 아니, 술술 흘려보냈다. 내용은 대충 알고 있으니, 내가 못 알아 들었던 부분이 있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았다. 또한, 들으면서 ‘아 이 부분은 캡처를 해두고 싶은데’라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구절을 찾아나갔다. 그러던 중, 눈과 마음에 들어온 구절이 있었다. 열린 문과 닫힌 문에 대한 글이다. 그중 몇 문장을 옮겨본다.
“문은 늘 열려있는 게 우선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귀한 것이 사람이었다.”
“예전의 문들이 열린 문이라면 이 시대의 문은 닫힌 문이다.”
“닫혀있는 비밀의 문들이 제일 먼저 고려하는 것은 사람의 침입이다.”
참으로 공감이 되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 우리 집은 아파트 1층이었다. 여름이면 집 현관문에는 좌우로 열고 닫는 롤 스크린 모기장을 설치해 두었다. 모기장은 모기장이니 안에서도 밖이 보이고 밖에서도 안이 보이는 형국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덥더라도 팬티바람으로 집 안을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아파트는 부모님이 청약에 당첨되어 신규로 입주한 아파트였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세대가 신규 입주자였으니, 주민끼리 공감대 형성이 잘 되었을 터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우리 엄마는 아파트 내에 이웃을 많이 사귀었다. 그리고 그 이웃분들은 (대체로 엄마보다 몇 살 어렸던 아줌마들은) 우리 집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 집 아이들이 엄마 손을 붙잡고 왔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다. 그렇게 우리 집은 1층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때만 해도, 아침창 아저씨의 글처럼 사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우리 집 문은 반쯤 열려있었다. 지금은? 꿈도 못 꾼다. 그때와 같은 1층도 아니기는 하나, 1층이라 하더라도 현관문은 열어두고 롤 스크린 모기장만 닫아 둔 채 생활하는 집은, 장담하건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도서관은 열린 문을 가진 곳이다. 아산중앙도서관도 나에게 도서대출은 불허했지만 출입은 자유로웠다. 세종시립도서관도 방문한 모두가 드나들 수 있었다. 도서관이란 그런 곳이다. 책이 있고 글이 있는 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열린 문은 도서관이다.
- 2025년 7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