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의 후기를 몇 자 더 적어보자면, 오디오북은 표영재 성우의 낭독으로 들을 수 있다. 내가 느끼기에 김창완 아저씨의 어투를 어느 정도 살리면서 녹음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듣다 보면 ‘아침창 아저씨라면 어떻게 읽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의외로, 책으로 읽다 보면 모든 문장이 온전히 아침창 아저씨 목소리로 재생되었다. 본인의 어투를 그대로 살려 쓴 글이라서 그렇겠지만, 그 특유의 어투와 때로는 어눌한 목소리가 귀에 인이 박혀있다 보니 자동재생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의외로, 오디오북 보다 글로 읽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득, 나의 글도 누군가에게는 나의 목소리로 재생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척이나 낭만적이지 않은가? 나는 글을 남기지만, 누군가는 그 글을 읽으며 나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글에는 소리가 담기지 않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크게 두 가지 해소해야 할 요소가 있다. 첫째, 나의 목소리가 알려져야 한다. 아침창 아저씨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자동재생 되는 건, 그만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글이 그렇게까지 자연스럽게 목소리로 재생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나의 목소리가 노출되어야 할까? 둘째, 그렇게 재생될 글이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은 뭐,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한때 라디오 DJ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더랬다. 결코 내 목소리가 듣기 좋다거나 뛰어난 진행실력을 가져서가 아니다. 라디오 DJ는 낭만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삶의 이야기를 전달받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메신저이자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것이, 참으로 낭만적이라고 느꼈다. 아침창 아저씨 책을 듣고 읽으니, 그 낭만의 페이지가 다시 펼쳐 치는 듯하다.
- 2025년 7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