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자

효율적 삽질의 기록

by 몽글



세 시간이 걸렸다. 회의 내용이 돌고 돌아 결국 원안으로 회귀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그자는 디테일하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며 그 디테일에 매달린다. 하지만 내 눈에 그 디테일은 대개 무용(無用)에 가깝다.

​그자는 가급적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가 늘어놓는 가능성 중 실제로 변수가 발생할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0이라 할 순 없으나 0에 수렴했다.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자는 그자의 태도를 힐난하려는 건 아니다. 때로는 필요한 자세니까. 하지만 '한정된 리소스 내에서 효율적으로 일할 것'을 강조하던 평소 그자의 논리대로라면, 그건 리소스가 무한할 때나 부려봄 직한 사치였다.


​디테일과 가능성에 함몰될 때의 그자는, 본인의 논리를 스스로 깨부순다.


​원안으로의 회귀는 사실 예견된 수순이었다. 그자 스스로 납득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자가 의문을 던졌을 때 나는 이미 그 의견의 허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평소처럼, 그자는 본인의 의견이 관철되길 바랐다. 세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자는 제 논리에 심각한 하자가 있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 시간은 과했다. 원안을 주장한 우리의 설명이 부족했는지, 그자의 이해력이 부족했는지, 혹은 그 모든 것의 절묘한 조화인지. 잘은 모르겠다.


​빨뚜 한 잔이 간절한 날이다. 쑥갓 가득 넣은 우동 한 그릇에 '빨뚜' 한 잔으로 위로받고 싶은, 딱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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