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생일록

by 몽글

떠들썩하지 않았던 올해 나의 생일이 지나갔다.

아내는 두 달간의 헝가리 출장으로 집을 비웠고, 나는 집에 혼자 남아있을 예정이었던 주말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우리 동 엘리베이터가 부품 침수 문제로 운행을 중단했고, 혼자 외로이 생일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던 나에게는 그것이 좋은 핑곗거리가 되었다. 집에서 혼자 머물면 냉파먹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파먹을 무언가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먹거리 장을 봐오기에는 지하에서 14층까지 짐을 들고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옆구리인지 갈비뼈인지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당분간은 골프연습을 살살 드문드문할 핑계도 생겼고. 그럼 굳이 집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토요일 오전 병원 진료를 마치고, 미뤄뒀던 예능 막방을 마저 시청하고, 집을 나섰다.

한 시간 반 정도 달려서 본가에 도착했다. 저녁은 돼지고기구이를 먹었다. 집 앞 빵집에서 주전부리용 빵을 사갔는데, 엄마는 어찌 맘모스빵을 사 오지 않았느냐고 했다. 다음엔 맘모스빵을 사가리라.

일부러 자정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래도 내 생일 시작은 00시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누군가로부터 받을지도 모르는 축하메시지도 조금은 기대해 보면서.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름 늘어지게 잠을 잤고, 나의 생일인 일요일 아침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오늘 만료되는 주유권도 있고, 이마트 상품권 교환권도 있고, 한 달 안에 만료되는 스타벅스 기프티콘도 있고. 오늘 모두 해치우기로 다짐하고 집을 나섰다.

주유소는 조금 불쾌했다. 입장 때부터 온갖 인상을 쓰고 안내하더니 나갈 때도 들으라는 듯이 신경질을 내었다. 그런데 네이버 영수증리뷰에는 친절해요 태그가 왜 그렇게 많은 건지. 선택적 친절함인가. 이마트에서 상품권을 바꾸고 먹거리를 사고 스타벅스에서 케이크와 커피를 사고 외출을 마무리했다. 점심엔 장 봐온 돼지갈비와 쫄면을 함께 야무지게 먹었다. 여자월드컵 모로코전을 보며 아이스크림도 쩝쩝. 그런데 호주 현지가 너무 추웠는가 보다. 선수들이 제대로 뛰지를 못하는 거 같던데. 아닌가, 그러기에는 모로코 선수들이 느끼는 것보다는 덜 추웠으려나.. 모르겠다.

오후 느지막이 아내가 일어나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오늘은 출근을 하지 않고 호텔콕이라고 했다. 처형도 축하한다며 케이크 기프티콘을 보내왔다. 매번 감사하는구먼 그랴 허허.

그렇게 한량의 시간을 보냈고, 낮잠도 잤던 거 같다. 저녁으로는 부대찌개 밀키트와 하이네켄 실버를 해치웠다. 배가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 활동량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저녁식사 이후로는 출근준비모드를 가동해서 씻고 드러누웠다.


잔잔한 생일주말이 지나갔고, 무언가 호들갑스럽지 않았던 것이 나름 괜찮았다. 유명인들처럼 인스타 피드에 박제할만한 축하를 받아보고도 싶었지만, 막상 그러면 기 빨릴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자연스레 맞이하는 것이 어쩌면 더 나은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 2023년 7월 29일,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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