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의 나
나의 경우, 퇴사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번아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번아웃에 대해 이해하고, 반면교사 삼아 다음 일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다. 퇴사 직전 머리끝까지 차버린 복잡한 감정들과 증상들. 두 달 여가 지난 지금, 다행히도 좀 더 멀리서 체계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여러 모로 닮아 있었던 정직원으로써의 첫 해 (그전엔 학교를 다니며 유급인턴을 했지만), 그리고 올해를 비교하며 문제에 더 가까이 다가가 보기로 했다.
전 직장에 주니어 컨설턴트로 들어온 첫 해.
꿈꾸던 직장에, 패기 하나만 가지고 들어와 전력질주했던, 미치도록 힘들었지만 소중했던 한 해.
7시 출근- 4시 칼퇴근.
어린 딸 픽업부터 재우기.
8시부터 다시 서재에서 공부와 일.
매일을 빡세게 살아서일까. 출산 후 그렇게 빠지지 않던 마지막 7킬로가 4개월 만에 다 빠져버렸다.
바지 사이즈가 3인치나 줄어드니 눈에 띄게 몸매가 나아져서 자신감도 회복되었으나, 주변인들도 나 자신도 건강 걱정을 슬슬 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체력장 이후 한 번도 뛰어보지 않은 나는 하프 마라톤을 겁도 없이 신청하였다.
10월에 아무 운동화나 신고 퇴근 후 1킬로미터 뛰는 것도 버거워하고 욕을 욕을 하며 뛰던 내가, 4개월 후엔 10킬로미터는 거뜬하게 뛰는 사람으로 거듭나있었다.
물 들어온 김에 노 젓는다고, 거기에 홈트레이닝으로 근력운동까지 하니 다신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복근까지 나오더라.
그다음 해 초, 혓바늘과 다크서클을 달고 살았지만, 인사고과도 정말 잘 받았고, 인생 첫 하프마라톤을 2시간 10분에 완주했다. 처녀 때보다 훨씬 탄탄한 몸은 덤.
그렇게 체력을 키워놨건만, 갑자기 2층 사무실에 올라가는 게 숨이 너무 찼고, 가끔 슈퍼에 들어가면 뭘 사야 하는지가 막막해져서 다시 밖으로 나오는 일이 생겼다. 게다가 주말이면 잠을 열다섯 시간 자도 피곤.
병원에서는 심전도부터 체내 영양 상태까지 몸 상태가 운동선수 수준으로 좋다고. 관리 너무 잘했다는 말과 함께, 카페인 과다섭취와 스트레스일 수 있다고, 커피 덜 마시고 일을 줄이란다.
하긴, 하루에 6잔 이상씩 아메리카노를 부어 대는데 그럴 수밖에. 일은 안정되면 좀 줄여보자 다짐.
그때 처음으로 스트레스의 무서움을 깨닫고,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도 하고, 심리상담도 시작했다. 그렇다고 증세가 아예 없어지고 깃털 같아지는 마법 같은 효과는 솔직히 없었으나, 증상을 알고 대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보다는 훨씬 나은 상태였던 것 같다.
희한한 점은, 저런 증세들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일에 대한 의욕이나 능률은 그대로였단 점. 그리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살이 빠진 것 외에 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했단 점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마도 스트레스 지수는 높았으나 번아웃은 오지 않았던 것 같다.
(이미지 출처 경향신문 (khan.co.kr). 문제시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