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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몽 Aug 08. 2023

백수의 유리멘털

큰소리치던 나는 어디에

며칠 전, 장사란 꿈을 이루겠다고, 주방 보조부터 시작하겠다며 글을 남겼던 나. 

(링크: 나도 장사하고 싶다, 그런데)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들었다 놨다 백만 번을 한 뒤, 소심하게 주방 보조를 찾는 스시집에 이력서를 메일로 보냈다.

18살짜리 친구 아들이 문의를 했을 때는 즉각 답장이 왔다던데, 나는 며칠이 지났어도 감감무소식.

'하물며' 경력 무관 주방 보조 자리도 연락이 안 오는데, 다른 곳은 오죽할까 하며, 의기소침하게 구직 사이트를 주말 내내 몇 시간이고 들여다보았다. 그중 한 레스토랑에서는 레스토랑 매니저와 웨이터를 뽑았는데, 메뉴나 분위기도 좋아 보이고 현재 가파른 속도로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어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고 공고를 낸 것이다. 


일요일에 이력서를 썼다 지웠다 몇 번 반복하다 결국 못 쓰고 잠이 들었는데, 오늘 아침 갑자기 무슨 깡이 생겼는지 시동을 걸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어차피 이력서에 비친 나의 모습은 전공 무, 경험 무, 나이는 무지 많음. 이메일로 그냥 내면 요번에도 가능성이 없겠다는 (아주 합리적인) 생각 끝에, 가서 얼굴이라도 보고 물어나 보자고 용기를 낸 것.


아름다운 호숫가에 자리 잡은 그 레스토랑. 날씨는 내 맘같이 우중충하고 비바람이 세게 불었다.

비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하고 심호흡을 한 후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는데, 결국 일자리를 구하러 왔단 말을 못 해 '한 명이요'라고 속삭이며 자리를 잡았다.


'그래, 이력서에 디테일에 강하고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강한 사람을 뽑는댔어. 면접 공부한다 치자' 하며, 불과 며칠 전에 시급 계산 하며 손을 떨며 바지를 내려놓던 나는 그렇게 식사에 와인 한잔까지 주문을 했다. 

분위기 좋네, 데코는 이렇게 했네.. 나름 예리하게 관찰하는 느낌으로 레스토랑도 기웃거리고, 메뉴판이나 홈피 분석도 하고, 관찰 사항을 폰에 메모도 하고. 식사를 마치면 물어볼 요량으로 느긋하게 식사를 마쳤다.


밥도 다 먹고 잔도 다 비웠고, 이제는 물어봐야 하는데, '커피나 디저트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왜 또 예라고 대답한 건지..


결국 케이크에 에스프레소까지 다 먹고, 계산을 마치고, 또 오시라는 따뜻한 인사를 받으며 나와버렸다.




에휴, 이 못난 것아!


미련이 남아 주차장과 부대시설을 돌다 인포메이션 오피스를 보고 (이 레스토랑은 호텔과 캠핑 시설을 부대시설로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술기운을 빌어서인지 점심값이 아까워서인지 결국 일자리 구하러 왔다고 물었고, 담당자 이름을 알아내고, 레스토랑에 가서 그분을 찾았다.



자리 안내와 주문을 받은 그분이었다. 첫 손님이라고 와인도 많이 따라 주셨었지.

친절했던 그분에게 레스토랑 매니저 자리에 관심이 있다고 운을 띄었다. 그분이 묻는 내 경력에 대한 뻔한 질문에 뻔뻔하게 아무 경력도 없지만, 컨설턴트로써 다년간 직원 교육을 하고 업무 & 공정 프로세스를 분석하고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여줄 수 있다고 얘기했다.

난색을 표한 그는, 당연히 다년간의 경력을 가진 분을 뽑는다고 하며, 


도대체 그런 일 했던 분이 레스토랑 매니저는 왜 하려고 하세요?


라는 더 당연한 질문을 했다.



뭐, 쫄리긴 하지만 예상 질문이었으니 이러저러하다 하고 대답을 하고, 매니저로 일할 수 없다면, 서빙 자리를 뽑고 있으니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도 물론 좋다고, 열심히 할 수 있다고 피력했다.


저기요, 이 일 많이 힘들어요. 밤늦게까지 파티하는 손님들 상대해야 하고요, 직원들도 어린애들이 많아요.


물론 그 자리에선 당연히 예상한 일이고, 잘할 자신 있다고 했지만, 동틀 때까지 파티하는 손님들 서빙에, 직원들은 거의 다 20대 초반이라니..  난 11시만 되면 눈이 감기는데..


각설하고, 자기네들이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프로필은 아니나, 이력서를 메일을 통해 제출하면 검토하고, 알맞은 사람이다 생각되면 연락을 준단다. 나에게 서빙해 줄 때만큼이나 젠틀했으나, 행간에서 '멀쩡하게 생긴 아줌마가 여기서 왜 이러세요'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돌아가는 길에 힘이 쭈욱 빠졌다.

스시집 주방도 안되고, 이런 레스토랑 서빙이나 매니저도 안되고, 실전 경험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쌓을 수 있단 말인가. 다른 곳들도 다 저렇게 콧방귀 뀌며 이상한 아줌마가 오춘기라 일탈한다고 생각하려나.


다 잘할 수 있다고, 최저시급 받고 허리띠 졸라매도 경험 쌓으며 준비할 거라고 외쳤던 내 모습은 어디에 갔나. 고작 두 곳에서 (당연한 이유로) 당장 나를 써주지 않는다고 벌써 어깨가 축 처지는 게 말이 되니? 칼을 들었으면 무라도 썬다며! 여기서 포기할 정도로 넌 간절하지 않았던 거야?



아니다. 그러지 말자. 

쪽팔리는 얼굴과 콩닥거리는 심장 움켜쥐고 레스토랑까지 가서 어필한 나에게 칭찬과 격려를 해주자.





... 근데 짜증 나게 음식은 왜 이렇게 맛있냐, 쪽팔려서 또 못 올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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