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님/아를/아비뇽
왜 프랑스 남부 도시에 로마의 유적이 있는 걸까...
그것부터가 의문이었다.
일단은 보고 왔다.
다 보고 돌아와서 궁금증을 풀다 보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역사를 모르고 살아왔는지 창피할 정도였다.
어릴 때부터 참 역사에는 관심이 없었고
학창 시절 시험을 보기 위해 보는 교과서 내용도 도통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
그게 무슨 느낌이냐면 아무리 사건 하나하나를 외워도 그게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지지가 않는
그러니까 나는 스토리에는 전혀 흥미가 없는 그런 역. 알. 못.이었다.
그런데 이후에 여행을 돌아와서 궁금증을 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하나의 실에 그 많던 구슬이 꿰어지듯...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내용들이 쏙쏙 머릿속에서 이어지는데
뒤늦게 개안한 것처럼 역사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평상시에도 궁금한 나라별 시대별로 역사책을 꼬박꼬박 보면서 풀어가는 재미에 푹 빠져있을 정도.
.
이래서 나이 들어서 하는 공부가 더 재미있나 보다.
아무튼 여행 당시에는 머릿속에 역사지식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것이 의문이었다.
프랑스 남부지역을 다니면서 들었던 의문들.
왜 로마의 유적이 여기에 있는가...
원래 가고 싶던 목적은 상상 속의 낭만 하나였다.
프랑스 남부라고 하면 그려지던 낭만...
(여행예능도 거의 없던 시절! 혼자만의 낭만)
<아를>과 <아비뇽>을 꼭 가고 싶었던 건 이 도시들의 그런 모습을 잘 갖고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 사이에 <님>이라는 도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 세 도시를 엮어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도시 중에 어느 한 도시에 머물면서 다른 두 도시를 당일치기로 다녀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머무를 도시를 골랐다.
<아를>은 뭔가 너무 유명해서 사람이 많아 북적거릴 것 같아 꺼려졌고
<아비뇽>은 내가 종교가 없어서 그런지 그렇게 끌리는 도시가 아니었고
<님>이 상대적으로 몰랐던 도시라 왠지 내가 원하던 그런 분위기가 아닐까 싶었기에 여기로 결정!
음...... 그런데 막상 가보니 <님>이 제일 원하지 않았던 그런 분위기!... 였다는
엄청 현대적이고 큰 도시였다는 슬픈 사실.
아 잘못 골랐구나.... 도착하자마자 느껴졌지만 전부 예약을 해 놓았으니 어쩔 수 없이 계획대로
<님>을 베이스 도시로 잡고
<아를>과 <아비뇽>을 함께 여행했다.
당시(2017년)에 바로 블로그에 올렸던 여행 지도 스케치.
지금은 8년이나 지났으니 교통편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암튼 이 세 도시뿐 아니라 이곳들을 기점으로 뻗어있는 <오랑주><레보드프로방스><퐁뒤가르_수도교>까지 볼 수 있는 이 삼각지대는 정말 환상적인 코스!
전부 다 가는 것을 목표로 잡고 여행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아를>과 <아비뇽>만 하루씩 당일치기로 다녀오고 <님>에서 시간을 더 보냈다.
조금은 더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움직여야 가능한 일정이었고
마지막에 아쉬워서 하루 더 <님>에 머물고 싶었지만
다음 도시에 예약해 놓은 마르세유 숙소의 취소가 안되었기 때문에 원래 날짜에 떠날 수밖에 없었다.
제일 먼저 당일치기로 갔던 곳은 기대가 없던...
아비뇽에 로마 유적이 있는 건 아니었고 거기서 기차로 30분 정도 타고 가면 나오는 <오랑주>에
보존이 잘 된 걸로 유명한 고대극장이 궁금했는데 거기는 부지런을 떨지 못해서 다녀오지 못했다.
아침 일찍 서둘러야 두 곳을 한 번에 볼 수 있을 듯.
<오랑주>의 고대극장은 기원전 1세기에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참전용사들이 건설한 극장이라고 하고
세계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고대 로마극장 중 하나라고 한다.
무대의 관람석은 재건한 것 같으나 외벽만큼은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하니
로마역사에 관심 있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은 꼭 같이 가보면 좋을 것 같다.
암튼 당시에는 아비뇽 유수... 가 뭔지도 몰라서 정말 대충 보고 온 아비뇽 교황청.
그치만 마을과 전경은 이뻤고 기차역에서 산책 삼아 걸어 다니기 딱 알맞았던 작고 아담한 도시이다.
오는 길에 미술관 하나 관람하고... 마무리도 완벽하게!
다음 날은 부푼 기대와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간
길치는 아니라서 길은 기가 막히게 잘 찾는데
엉뚱한 데가 좀 모자란 구석이 있어서 일부러 더 걸으려고 한 것처럼 참 많이도 걸었다.
그래도 덕분에 고흐가 그린 그림의 장소를 하나 더 보긴 했지만 진짜 허무해서 꼭 그럴 필요도 없었던 것 같고.
고흐가 그렸던 그림의 장소에는 저렇게 고흐 그림 간판이 있어서 관심 있는 분들은
곳곳을 찾아다니기도 하지만... 난 그냥 다니다가 보이는 데로 봤다.
내가 관심이 있었던 건
난 아직 로마를 안 간 상태였기 때문에 아레나 아를 그러니까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곳인 것 같다.
콜로세움의 미니 사이즈라고 하니 로마에서 이미 콜로세움을 보고 온 사람들은 실망을 많이 하는 것 같지만
나는 처음 만나는 원형경기장...이었기 때문에 기대가 컸다.
내부는 다음 날에 가 본 <님>의 경기장이 더 좋았지만
외부에서의 저 따뜻한 느낌과 오랜 세월의 흔적은 <아를>이라는 도시에 너무나 잘 어울렸다.
정말 미치도록 아기자기하고 이쁜 도시의 모습과 크지 않은 사이즈의 원형 경기장은 생각보다 더 잘 어우러지고 있었고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꼭대기층은 날아갔지만 그래서인지 아치의 생생한 구조가 더 잘 보였으며
복원한 부분은 있겠으나....
가을의 쨍한 햇살을 받고 있는 저 따뜻한 색감의 석회암은
이 오래된 도시의 푸근함에 푹 빠질 수 있도록 주변의 건물과 잘 어우러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내부를 보고 실망할 수 있겠으나
그 시대 재료의 질감과 흔적이 빛과 그림자를 통해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어
고대 로마시대의 건물에 와있음을 확실히 알게 해 주었다.
밖으로 나간 순간 새로 만들어진 관람석때문에 좀 깨긴 했지만 말이다.
너무나 인위적이고 현대식으로 만들어져 있어 이 방법 밖에 없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현재에도 잘 사용하려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이해해 본다.
바로 옆에는 2쳔년의 역사를 가진 원형경기장보다 더 이전 시대인 기원전 1세기말 즈음에 지어졌다는 고대 극장이 있다.
원형경기장하고는 또 다른 형식의 극장인데 <카베아>라는 반원형의 관객석이 있고 무대가 전면에 있는 형식의 극장이다. 입장권을 사지 않아도 바깥에서 거의 모든 모습이 보일 만큼 개방적이지만 나는 이미 입장권을 같이 구매해 놓았기때문에 들어가 본다.
일부러 복원을 안 한 건지 무대 쪽은 거의 사라져 있는 상태 그대로였는데 그래서인지 더 고대 로마 속으로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인공적인 복원을 안 해서 말이다. 이런 고대극장까지 이 도시에 건설한 걸 보면 로마가 아를을 얼마나 중요한 도시로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원래 있던 자리에 있듯이 오래된 돌들이 그냥 툭툭 놓여져 있고 안쪽 구석에는 건물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유적들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그냥 모아져 있다.
뭐든 앉아보고 만져보고 다 할 수 있어서 가까이서 로마시대를 체험할 수 있는 그런 유적지이다.
나는 북측의 최종 정류장에 내려 쭉 내려오면서 <아를>을 봤지만
구시가지 쪽 정류장에 내리면 덜 걸으면서 먼저 광장과 성당을 볼 수 있는데...
골목골목은 정말 아기자기함 그 자체이고 고흐가 여기서 왜 그림을 많이 그렸는지...알 수 있을만큼
그 자체로 너무나 이쁜 도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점심을 먹으려고 아무 데나 들어갔던 식당에서도 혼자 하는 식사가 전혀 어색하게지 않게 느껴졌고 현지인의 기분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따뜻한 대우를 받았다.
너무 열심히 사이사이 골목들을 돌아다니다 보니 미술관은 이미 문 닫을 시간이 되었고
궁금했던 콘스탄틴 목욕탕을 찾아 마지막 유적지를 보러 들어갔다. 물은 어떻게 채워지고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움직였는지 목욕탕의 구조가 너무나 궁금했는데 당시에 사전지식이 너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보는동안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그 시대의 재료인 벽돌은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로마가 특히 목욕탕 건설 시에는 벽돌을 주로 많이 사용했다고 하는데 진짜 지금의 일반벽돌과는 다른 비율의 길고 넓적한 벽돌이 선명하게 보였다. 목욕탕의 구조형식은 벽돌과 콘크리트의 혼합 구조였다고 하고 그나마 찍어온 사진이 아마도 칼라디움(온수욕조)과 히포코스트(바닥난방시스템)이라고 이제서야 추측해 본다.
<아를>의 당일치기는 이렇게 목욕탕으로 마무리되었다.
(c)2017.mongpary all rights resreved.
나는 나의 선택에 언제나 후회를 안 하지만
솔직히 <님>보다 <아를>에 머물면서 다른 도시들을 가보는 것이 프랑스 남부지역에 대한 로망은 더 잘 채워졌을 것 같다.
.
그치만 본거지로 삼았던 <님>
너무나 현대적인 도시라서 그 안에 뚱~하게 있는 로마유적이 또 색다른 느낌을 주기도 하고
오며 가며 더 시간을 보내면서 가질 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은 2편에서 계속...
여기까지 적다 보니 너무 많이 길어져서 다음 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