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비생활이 뭐 따로 있나
15년 전
열 세살의 아들이 묻는다.
엄마, 우리는 차(=car) 없지?
(알 거 다 알던 나이에 갑자기 이걸 왜 물어보았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는...)
응 없지! 우리 차(=car) 없이 지낸 지 꽤 오래되었잖아~
역시 엄마는...
(이 시점에서 잔뜩 긴장...돈 없단 소리에 내심 슬퍼질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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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적이야!!!
엇, 어...... 그래 엄마... 무척 친환경적이지!^^
(당황과 급화색이 공존했던 순간)
그래 맞구나.
네 말대로 차가 없다는 건 친환경적인 삶인 거지!
이런 저러한 이유로 타던 차를 없앴었다.
다시 차를 구입하기에는 형편이 되지 않았고 주택가라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아서
이런 저러한 이유로 사지 않고 있던 때였다.
(사실 운전도 그리 익숙한 편이 아니었다.)
처음엔 차가 없으니 많이 불편했다.
불편한 건 둘째치고 속상할 때가 많았다.
낑낑대며 두 손에 장바구니 가득 혼자 시장을 봐오는 날이면 그런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져서 서글펐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친정에라도 다녀오려면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면서 2시간 동안 이동해야 했으니
그런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아들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속상하고 불편했던 시간을 어느 정도 보내고 나니 어느새 차 없는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서울 시내는 대중교통으로 충분했고
아들은 많이 커서 데리고 다니기 불편하지 않았고
지방으로 여행을 다닐 때에도 뚜벅이로 다니는 즐거움이 커서
점점 차를 구입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대답은 예상밖이었다.
죄책감 있는 엄마가 아들 녀석에게 이런 식으로 인정을 받다니!
물론 차를 구입하지 않는 여러 이유 중에 환경을 고려한 측면도 있긴 있었으니
(아주 쥐똥만큼이지만...)
그런 말을 듣기에 자격이 없지는 않다고 애써 생각했다.
그렇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 집에는 차가 없다.
이후로도 쭉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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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볼 때는 들고 올 수 있을 정도만 구입하게 되니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었고
(코로나 이후로는 훨씬 더 편한 세상이 되어 이제 직접 시장 보러 갈 일도 거의 없고...)
그사이 여행가방은 점점 더 간소해져서 짐 싸는데 고수가 되었다.
뚜벅이로 단련된 길 찾기 능력 덕분에 대중교통의 달인이 되었다.
지방에서건 해외에서건 택시 한번 안 타고 잘 돌아다니니 이 또한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그것뿐인가... 보험료며 수리비며 끝도 없이 들어가는 차량 비용 발생이 없으니
점점 소비를 더 줄여 나갈 수 있었다.
아들에게 그런 답변을 받은 이후로 나는 더 씩씩해졌다.
더 이상 차 없이 다니는 나를 초라하게 느끼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아들은 나를 그렇게 성장시켜 주었다.
차 없는 삶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