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오늘은 불어터진 떡처럼 살아보자.

그렇게 흐물하게, 푸짐하고 푸근하게 내일의 양식이 되어보자.

by MONG


KakaoTalk_20250101_083712301.jpg 출처: 우리집 아부지



새해가 밝았다. 연말은 그토록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연초가 되니 모든 것이 새롭다. 코 끝이 아릴만큼 차갑고 텁텁한 겨울 공기가 사뭇 다르고,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주문진까지 달리며 둘러본 까만 어둠이 다르고, 시뻘건 눈을 뜨고 일어나 우리를 맞이하는 새해의 태양이 다르다.


그런 태양을 보며 까마득한 예전 일이 생각났다. 다 못 잔 잠을 억지로 지워가며 눈비비고 일어나니 보이는 커다랗고 아름다운 태양, 감탄 사이로 흐르는 하얀 입김, 한참을 해와 노닐다 코끝이 빨개진 우리를 보고 들어오라며, 떡국 한 그릇씩 잡숫고 가라며 붙잡아주던 주인 아주머니. 많은 양의 떡국을 끓이다보니 떡은 덜 익은 것도 있었고, 푹 익은 것도 있었다. 나는 하나도 남김없이 긁어먹었다. 맛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떡이 풀어져 진득해진 국물이 가져다주는 온기만큼은 아직도 생생하게 자리잡았다.


친구는 매해 이맘때 쯤의 떡국을 기대한다. 전날 푹 끓여둬서 아주 흐물흐물하게 불어터진 떡국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말했다. 난 한 번도 떡국을 기대해본 적이 없다. 나이 먹는 것이 좋았던 때도, 싫어진 지금도 떡국에 의미를 둬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제는 관념적으로 떡국을 그리게 된다. 커다란 태양을 보았을 때의 벅참이 뼈시리게 느껴지던 떡국, 친구가 참 좋아하는 떡국, 흐물하게 풀어져서 찐덕한 국물을 만들어내는 떡국. 세상에는 다 불어터진 떡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어느 날의 기억과 친구에 대한 애정으로 참 좋아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사물을 애정으로 덮을 수 있는 것이 어찌나 기분 좋은 일인지.


작년 이맘 때는 엇비슷한 풍경을 보면서, 엇비슷한 일들을 겪으며 어떤 생각을 했던가. 올해는 취직할 수 있을까? 올해 뭐가 달라지긴 할까.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했던 작년의 우울함은 과거의 일이다. 마음이 무거워도 목표한 바를 가지고 나아가니 확실한 변화가 생겼다. 이뤄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일들이 착실히, 꾸준하게, 조금씩 나의 것이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눈에 띌 만큼 뭉쳐져 다시 나의 근간을 긍정적으로 이루어지게 한 것이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아마 지난 회복기 간 만난 친구들, 가족들 덕분이겠지 싶다. 지난 해에는 새로운 걸 시도했다. 바로 친구들과 '소설 속 음식'에 대해 토론하고, 만끽하고, 직접 찾아 즐기며 맛보는 동아리 '독식'이다. 인원 수는 조촐하게 3명이지만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고 심도 있는 음식 철학을 나누기에 충분하다. 또, 정말 아끼는 단짝 친구와 데이트 통장을 만들었다. 매월 돈을 모아 일정 금액이 차면, 전시를 보고 맛있는 걸 먹으러 가기로 암묵적 약속을 한 것이다. 차곡차곡 모이는 돈을 보며 얼마나 기대를 쌓게 되는지. 얼마나 내일을 꿈꾸게 되는지.


KakaoTalk_20250102_081037668_07.jpg 독식에서 먹은 것 중 하나. 자세한 리뷰는 다른 포스트에서 하겠다.


이토록 올해의 나는 다르다. 어떤 전시를 보러 갈 지, 어떤 영화를 보고 싶은지, 책은 어떤 것을 읽을 거고, 얼만큼 읽을 건지. 집필은 어느정도를 목표로 잡고 있는지, 또 어떤 맛있는 걸 먹고 즐길지. 나는 단념이 아니라 확신을 갖게 되었고, 의문이 아니라 물음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보면 올려둔 가스불에 물이 졸아들도록 상념에 잠기고, 뒤늦게 휘휘 저은 국자에는 이미 찐득찐득하게 달라붙는 떡들이 생긴다. 후회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시 물을 붓고, 또 퉁퉁 불 때까지 끓이면 된다. 눌어붙은 냄비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은 좋은 감칠맛을 추가해 줄 테고, 바싹 익은 파는 식감을 더해줄 테다. 그러니 내가 하는 일은 매번 왜 이럴까, 자책할 필요도 없다. 주변을 둘러 보며 한 마디 묻기만 하면 된다. "여기, 불어터진 떡국 좋아하시는 분?"


우리는 너무 많은 실패 기준을 세워둔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무의식 중에 나에 대한 기준을 엄격하게 세우는 건 막을 도리가 없다. 너무나 열심히 사는 한국인들은, 이미 무리하고 있음에도 나보다 앞서나간 사람들을 따라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나를 재단한다. 그게 얼마나 피곤한지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그러니 올해는 조금씩 주변을 바라보며 여유를 가지는 노력을 하면 된다. 하루 긍정적으로 살기에 실패해도 괜찮다. 다음 날 잘해보면 되지. 중요한 건 잊지 않는 마음이다. 내 다름을 받아들이고, 내가 부족하다 여기는 것이 객관적으로 그런지 아닌지 남에게도 물어보면 되는 일이다.


그러니 우리, 오늘은 불어터진 떡처럼 살아보자. 그렇게 흐물하게, 푸짐하고 푸근하게 내일의 양식이 되어보자. 푸짐하게 배를 불린 나도 흐물하게 누워 또 생각에 잠겨보자. 오늘은 뭘 먹을까, 내일은 뭘 해볼까. 그렇게 소소하고 멋진 한 해를 불려가보자. 우리, 한 페이지씩 차근히 뿔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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