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솥 가득 따뜻한 옥수수죽, 폴렌타(Polenta)

어느 나라에서든 양많고 값싼 위로는 존재한다.

by M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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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변화가 두렵다. 롤러코스터 같은 무서운 놀이기구는 도전해 본 적도 없고, 과감하게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는 건 늘 망설여지는 일이다. 하물며 전공은 또 어떻겠는가. 평생을 글밖에 몰랐다. 글 외의 것 다른 어디로 눈을 돌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남들은 좀 더 쉬운 길을 찾고, 더 돈을 많이 버는 길을 찾으라지만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한국에서 일이 잘 안 풀리니 외국으로 훌쩍 떠나 워홀을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도 저런 도전을 해보면 어떨까? 충동과는 다르게 실행력이 따라주지 않는다. 용기 부족은 여전히 고치지 못한 고질병이다.

변모하고 뒤바뀌는 새로운 것들은 늘 나를 뛰어들기 무섭게 만들지만, 음식만큼은 그렇지 않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새로운 음식을 보면 두근거리고, 그게 어떤 모습에 어떤 맛일지 충분히 상상하고, 추측하고, 접해볼 기회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도전하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특히나 소설 속의 음식들은 늘 나를 흥분되게 했다. 자그마한 버터 조각과 흐르는 황금빛 꿀이 올라간 높다란 팬케이크, 병 속에 들어있는 플럼 절임, 칠면조 구이, 여관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여주인의 영원 수프, 작은 단지에 들어있는 오트밀 쿠키, 2피트는 되는 바게트와 크랜베리 잼 한 단지, 설탕을 넣고 끓인 포도주, 건포도를 잔뜩 넣은 푸딩, 라임 사탕, 으깬 감자와 그레이비소스, 심지어는 페퍼민트 사탕까지 없는 게 없다!

맛조차 상상이 가지 않는 소설 속의 음식들을 보며 나는 늘 끙끙 앓아야만 했다. 상상이라는 절대적인 감칠맛 앞에서 나는 늘 무너지고, 열망하고, 호기심에 불을 지피는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발달한 때도 아니었고, 이만큼 정보가 쏟아져나오던 시대도 아니었으니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영원 수프라니,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있나.


그런 와중에도 다들 어디서 그렇게 맛있는 음식들을 알아 오는 건지, 나는 먹어본 적도 없는 신기한 음식이 등장하는 책은 쏟아져 나왔다. 외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신비한 음식들은 내 눈을 번쩍번쩍 뜨게 했고, 나는 하루 종일 그 책을 들고 같은 문단을 읽으며 상상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음식에 관한 지식은 부족하지만, 식욕은 왕성한 꼬꼬마에게 수많은 유혹과 시련을 주던 음식 중 하나는 바로 옥수수죽이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소설 속 주인공은 늘 주식으로 바닥이 살짝 눌어붙은 옥수수죽을 먹었다. 기억나는 표현을 빌리자면 '꺼끌꺼끌한 알갱이가 입안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쩍쩍 떨어지는 누런 옥수수죽'이었는데, 그 강렬한 표현이 나를 사로잡아 입맛을 다시게 했다.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죽이라곤 흰죽, 계란죽, 전복죽, 소고기죽 등 쌀알이 들어있는 죽이었다. 어쩌다 단호박죽이나 팥죽 같은 걸 보긴 했지만, 단호박도 팥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먹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옥수수라니! 여름철 갓 찐 옥수수를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한입 가득 베어 물면, 입안에 쩍쩍 달라붙는 그 쫀득한 찰기와 은근한 단맛이 뙤약볕을 이겨낼 힘을 주는데. 나는 정말이지 이 옥수수죽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얼마나 맛있을까? 노란 옥수수죽. 입안 가득 쫀득한 식감을 죽으로 즐길 수 있다니!

하지만 엄마를 조르고 졸라 얻어낸 옥수수죽은 노랗지도 않고, 옥수수 맛도 나지 않았다. 쌀알 사이로 옥수수 알갱이가 둥둥 떠다니는 죽은 맛있었지만 실망스러웠다.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엄마는 옥수수밥 같은 걸 생각했나 보다. 설명하려 해도 두루뭉술했다. 내가 그 음식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방도가 없으니 나는 자꾸만 '노란 옥수수가 가득 든 찐득한 죽'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옥수수 알갱이로 나를 위로하며 언젠간 먹어보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 한편에 묻어두고 살았다.

그런데 2년 전, 갑작스러운 계기로 먹어볼 기회가 생겼다. 치즈를 판매하는 쇼핑몰에 기타 카테고리로 '폴렌타 가루'를 판매했다. 폴렌타가 뭔지 궁금했던 나는 버튼을 눌러 설명을 자세히 읽었다. 이탈리아에서 즐겨 먹는 옥수수죽. 가루를 풀기만 하면 만들어지는 노란 옥수수죽. 그래, 내가 봤던 바로 그 죽의 이름이 '폴렌타'였던 것이다.


소설 속에서도 이렇게 가루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소설은 이미 제목도 기억나지 않고, 내게는 옥수수죽이라는 추억만 남겨줬으니까. 하지만 가루를 한 봉 넣고 물과 우유를 반반 비율로 섞어 부글부글 끓이니 확신할 수 있었다. 점도가 높고 질척하며 동그랗고 꺼끌꺼끌한 알갱이가 징그럽도록 박혀있는 노란 죽. 분명 그 주인공이 매일 먹던 바로 그 죽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폴렌타는 놀랍도록 양도 많고 배불렀다. 가루는 오뚜기 카레 작은 봉지 정도의 크기였는데, 4인 가족이 2번씩 먹어도 될 만큼 불어났다. 1인 가구였던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와르르 쏟아부었으니 얼마나 곤욕이었겠는가. 꼼짝없이 일주일 내내 그 죽을 먹어야만 했다. 웃기게도, 싫지 않았다. 당시 나는 마음이 불안정하고 조급해 매번 다른 요리를 하며 기분 전환을 하긴 어려웠고, 오랜만에 한 요리가 이토록 간편하고 든든하니 나로서는 고맙기까지 했다. 게다가 정말 끈적했다. 스푼으로 뜰 땐 죽이 아니라 크림 리조또에 가까운 질감이었다. 무엇보다 꽤 맛있었다. 옥수수를 잘게 간 것 같은 질감은 크림처럼 부드러우며 속을 든든하고 따뜻하게 했다. 그냥 옥수수를 주식으로 먹으려면 한 소쿠리를 삶아야 하는데, 이건 값도 싸면서 양도 많으니 서민의 심정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배부른 한 끼가 되어준다는 점이 좋았다.

그렇게 한 그릇 먹고 나면 세상에 나가기 두렵던 마음에 작은 변화를 주곤 했다. 폴렌타라니. 무슨 음식인지도 감이 잡히지 않는 이 낯선 이름을 누가 찾아내서, 누가 레시피를 읽어보고, 누가 먹어보며 이게 옥수수죽인지 알았을까? 누가 이걸 한국에 들이면서 옥수수죽이라고 번역할 수 있던 걸까? 이 따뜻하고 값싼 한 그릇이, 전 세계 가난한 사람들의 '양 불리기 음식'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걸 누가 알려준 걸까? 참 감사한 일이지. 덕분에 나는 이렇게 또 새로운 문화로 눈 돌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낼 수 있었으니까.

미지의 음식에 도전했을 때 남는 것은 새로운 사실을 아는 기쁨과 낯선 재료로 만드는 친숙한 맛에 대한 친근감이다. 어쩌면, 음식뿐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아직 눈 돌리지 못하고 도전하지 못한 낯선 길들 역시 발 디뎌보고 나면 너무나 친숙할 수도 있다. 이름만 듣고 무서워서 덜덜 떨며 포기하기엔 난 아직도 충동적이고 호기심이 많다. 그건 나이가 적든 많든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처음엔 전업작가를 꿈꿨었고, 이제는 편집자의 길에 발을 디뎌볼 준비를 하고 있다. 이 길이 나에게 얼마나 잘 맞는지는 아직 걸어보지 않았으니 모른다. 어쩌면 아예 걸어보지 못할 수도 있다. 직업은 내가 걷고 싶다고 따라주는 손쉬운 산책길이 아니니까. 세상이 내게 평탄한 성공 길만 주면 또 얼마나 좋겠냐만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이미 너무 많은 탈락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끝까지 뛰어들지 않고 지레 겁먹어 중도 포기하고 싶진 않다. 멀리서 본 롤러코스터와 직접 타본 롤러코스터의 기분은 분명 다를 것이다. 막상 타보니 또 정말 무서울 순 있어도, 경험해봤으니 돌아설 수 있는 것이다. 상상만 해본 사람은 경험한 사람의 기분을 평생 알지 못한다. 후회를 하더라도 일을 치른 후회와 영영 못해본 후회는 다르다.

이 길이 아니면, 또 다른 상상을 해볼 수도 있겠지. 다시 작가의 꿈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고, 서점 일을 하며 책과 관련된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학교를 다시 다니며 사서를 해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따서 교사 생활에 도전해봐도 좋을 것 같다.

길은 하나만 있지 않다. 한국에 온 죽은 팥과 쌀알로 이루어져 있고, 이탈리아에 간 죽은 옥수수와 파스타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한 가지 재료만으로도 여러가지 무궁무진한 길이 있다. 그리고 난 이 친숙하고 새로운 맛에 하나하나 뛰어들 준비가 되어있다.

무엇이 내 폴렌타가 되어줄까.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게 새로운 경험을 떠먹여 주길 기다리고 있진 않을 것이다. 새로운 레시피처럼, 새로운 음식처럼, 새로운 맛처럼. 내 취준기도 계속해서 도전의 연속으로 이어질 것이다. 어쩌면 미래에는 다른 사람에게 희망의 폴렌타를 전해줄 수 있겠지. 어떤 사람의 공부와 시도 끝에 알게 된 새로운 '옥수수죽'으로, 내가 이런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내 작은 일상과 도전이 값싸고 든든한 한 그릇의 위로가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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