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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랑의 책읽기 Jan 01. 2020

오래된 미래, 사회주의 도시

[도시화 이후의 도시], 임동우

공공성을 위한 도시경제학의 중요성

매우 좋은 책. 도시이론에서의 공공성에 대한 담론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임동우 홍익대 교수는 그동안 평양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 왔다. 2011년 작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를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책 뒤표지에 이 책의 핵심 메시지가 쓰여있다.

미래 도시는 성장보다 지속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살아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조건이 사회주의 도시 평양에 있다. 모든 시민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충분한 녹지가 있고, 일터와 주거 공간이 한 지역에 공존한다. 도시의 중심부에는 상업시설 대신 시민을 위한 공간이 들어선다. 모든 시민이 동등한 수준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유기적인 도시 공간의 중요성을 살펴본다.



임동우 교수의 좋은 인터뷰: https://www.segye.com/newsView/20190118002842


서울, 혹은 한국의 다른 대도시에 대해서 오랫동안 제기돼 온 비판들. 공공성의 부족, 긴 통근 시간, 불평등, 집값 상승….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 해답을 “사회주의 도시”, 그중에서도 평양에서 찾으려 한다. 20세기 평양 도시계획이 꿈꿨던 공공성의 극대화를 살펴보고 21세기 서울에 미치는 교훈을 찾아보려 한다. 평양과 서울이 주는 명쾌한 대비가 도시의 공공성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준다.



공공공간을 중심에 두면 거주의 불평등을 완화시킬 수 있다.


북한의 주요 도시는 상징 광장 인근에 공공 문화 시설을 함께 둔다. 도시의 공공성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는 사람이 제일 많이 모이는 곳에 상업 공간이 아니라 광장이나 도서관처럼 공공장소를 만든다…..인민대학습당이 김일성 광장에 있는 것은 롯데백화점 본점이 있는 서울 소공동에 학교가 있는 것과 같은 일이다. (p.42)


저자는 사회주의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대한 중앙광장은 체제 선전의 장이라는 목적 이외에도 공공의 공간을 도시 중심부에 두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한다. 공공공간의 가장 큰 장점은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와 직종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은 공원 벤치에 앉아 자연을 느끼면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공간은 70평 쾌적한 아파트 거주민보다 쪽방 살이 가족에게 더 소중하다. 불평등을 없애주는 것이다.


서울은 초기 계획 당시 이러한 공공 공간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토지가 “필지”로 팔려 사유화되었다. 지금의 광화문광장, 시청광장 등은 “다행히도” 필지가 되지 않은 도로공간이어서 공공화가 가능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지금 서울의 공공공간정책은 어쩌다 필지가 되지 않은 부분만 공공화를 시킴으로써 오히려 더 큰 불평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 



서울의 도시계획에서 가장 부족한 점 중 하나는 커뮤니티 내 생산시설의 부재이다.


저자는 평양 (과 다른 사회주의 도시) 도시계획의 핵심 개념으로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를 제시한다.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는 도시의 가장 작은 단위이면서도, 커뮤니티로 기능하는 공동체를 일컫는 말이다. 사회주의 도시들이 사회의 근간이 되는 단위를 가족이 아니라 공동체인 코뮌 commune으로 생각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하나의 마이크로 디스트릭트에는 주거부터 교육, 탁아, 공공, 상업시설 등이 포함된다. (p.47)


처음 이 개념을 접했을 때 바로 한국의 “아파트 단지”를 떠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둘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에 없는 중요한 개념도 있으니…


한국의 아파트 단지 설계나 지구 단위 계획이 사회주의 도시 모델의 마이크로 디스트릭트와 닮은 이유는 Clarence Arthur Perry가 말한 근린주구 이론 neighborhood unit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p.66)
한국의 아파트 단지와 마이크로 디스트릭트의 가장 큰 차이는 단지 내 생산 시설의 유무이다. (p.68)…. 도시에서 공장이 빠져나가는 것은 단순히 빈 공간이 생기는 것 이상이다. 도시 내에서 노동자 계층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서울에 살면서 전자 기업의 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교사나 의사, 샐러리맨, 금융 업계 종사자 등 다른 직군 종사자를 만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수많은 가정에서 전자 기업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데도 말이다. (p.69)


재개발이 된 송파 어느 대단지 아파트에 있는 친구는 “담배 한 대 사려고 하면 가장 가까운 편의점이 걸어서 10분이다”라고 불평한다. 그 큰 단지에 상업시설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상업시설은 한국 특유의 “상가 빌딩”에서만 이뤄지는 구조가 정말로 그 단지 주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일까.


이보다 좀 더 나은 경우에는, 도로변 아파트동 1,2층을 상가로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생산시설”, 거주민이 나갈 수 있는 일터는 드물다.


단지 내, 혹은 단지와 근접한 생산시설의 중요성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에서도 강조된 바 있다. 주거지역에 생산시설이 없으니, 직주근접이 불가능해진다. 생산시설이 밀집된 곳의 땅값은 올라가기만 하고, 주거지역 위주의 “신도시”들은 베드타운으로 전락한다. 불평등은 커지고, 도시의 활력은 떨어진다.


1인 노동, 원격 노동이 늘어나는 지금, 조금 다른 모델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 아파트 단지를 1,2층에 상업시설이 들어오게 하고, 3,4층은 WeWork이나 Fastfive 같은 “공유 오피스”가 들어오게 하면 어떨까. 상주도 물론 가능하고, 일주일에 1-2일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part-time office도 가능하다. 지금은 그 기능을 카페가 담당하고 있는데, 제대로 된 오피스에 대한 수요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제조업을 위한 소규모의 공방? 도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도시계획은 토지의 사유화를 용이하게 만들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위와 같은 상상을 하면 항상 따라오는 질문은 경제학이다. “현실적으로 그게 되겠어?” “그게 팔리지 않으니 지금까지 나오지 않는 것 아닐까?” 도시계획에서는 도시경제학이 필수요소가 되어야 한다. 이 책도 그 점을 매우 잘 인식하고 있다.


도시의 근대화는 넓은 길을 내거나 새로운 교통수단을 만들고, 더 쾌적한 주거 시설을 확충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도시 계획은 토지를 어떻게 하면 합리적으로 사유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p.20)


(19세기 뉴욕의) 커미셔너 플랜을 통해 맨해튼의 필지가 같은 규격으로 분리되면서 자본가들의 토지 거래가 원활해졌기 때문이다……토지를 사유화해 세수를 늘리는 계획은 도시 경제학의 기본이 되는 개념이다. 많은 도시가 토지 거래를 통해 발전했다. 19세기 뉴욕이나 파리가 대대적으로 필지를 재정비한 이유도 새로운 자본가 계층이 토지를 쉽게 소유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P.62)


자본주의 국가의 도시계획은 토지의 값을 올려서 자본에 판매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문구. 저자의 담백한 서술로 보았을 때 도시계획 이론에서는 상식 수준의 얘기였을 터인데,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내가 아직 도시계획의 낭만적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


저자도 인지하고 있듯이, 공공성이 강한 도시를 만드는 작업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저자는 평양의 현재 변화를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경제개방 이후의 북한 도시들이 자본주의 물결에 휩쓸릴 것을 염려한다. 내가 보기에, 저자가 강조하는 “지속 가능한” 도시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시장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는 공공성”이다. 시장의 탐욕에 흔들리는 시스템 하에서는 아무리 좋은 계획도 무용지물이 된다. 정치경제학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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