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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랑의 책읽기 May 13. 2020

자신들을 소수자라 생각하는 20대 남성들

[20대 남자], 천관율 & 정한울

시사인 천관율 기자와 한국리서치 정한울 연구위원의 책. 대한민국 20대 남자들이 가지는 독특한 정치사회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무려 208개의 질문을 던져 나온 데이터. 설문의 스케일도 놀랍지만, 나온 결과는 충격 그 자체.


천관율 기자의 글에서는 성실한 연구자의 태도가 언뜻 보인다. 3월 초 코로나 사태 초기 언론보도는 혼란스럽기만 했는데, 천관율 기자의 이 기사를 보고 “우리나라 언론기사에서도 좋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구나”생각했었다.


밑의 유투브 동영상에 이 책 내용의 절반 정도가 담겨있다. 최근 한국의 세대-젠더갈등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꼭 보시길 추천. 

https://www.youtube.com/watch?v=Szf-XcUZVy0


한국의 20대 남자들은 한국사회에서 “남성이 차별”당한다고 확신한다.


한국의 20대 남자의 정치사회인식이 “튀는” 현상은 이미 많이 얘기되어 왔다. 20대 남자는 정치적으로 보수화 되어 있고, 페미니즘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가진다. 그런데 “왜?” 라는 질문에는 아무도 속시원한 답을 못 내놓고 있었다. 단편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가설들만 난무했을 뿐.


이 책의 저자들은 '정확하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난관을 '그럼 모든 걸 다 물어보면 어떨까?' 라는 방법으로 돌파하려 한다. 설문조사에 무려 208개의 문항을 넣어, 다양한 가설들을 전부 검증해보고자 했다.


우선 현상에 대한 인식. 20대 남자는 한국사회의 여성차별에 대해 얼마나 동의할까? 아예 부정할까? 질문 자체가 틀렸다. 여성차별이 아니라 남성차별이다! 데이터에 의하면, 20대 남자는 한국사회에서 “남성이 차별”당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 20대 남자가 [기성세대 남자와 다르게] 진정으로 특별한 집단이 되는 것은 남성 차별 문제를 무겁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1장)


> 기성세대에게 ‘역차별’이라는 말은 남성 우위 사회에서 펼치는 여성 우대 정책이 과하다거나 선을 넘는다는 정도의 의미였다. 그러니 역차별이란 남성 우위의 권력 구조를 전제로 쓰는 말이었다. 이게 20대 남자의 인식 세계로 오면 근본적으로 뒤집힌다. 남성은 약자다. 재능과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20대 남자는 업무 능력이나 사회생활에서 남성이 더 유능하다고 응답했다—권력의 문제다. 그러니 지금 벌어지는 현상은 역차별이 아니다. 그냥 차별이다. (1장)


자신들이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성운동은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정치사회세력들은) “권력자들의 억압”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 20대 남성에게 페미니즘은 무엇보다 권력의 문제였다. 이들에게 페미니즘이란 남성을 권력의 약자로 만드는 기획이다. ‘페미니즘은 남녀 평등보다 여성우월주의를 주장한다’라는 문장을 제시하고 찬반 의견을 물었더니 20대 남자는 78.9%가 동의했다. 30세 이상 남자 (57.1%) 보다 20%포인트 이상 높다. (1장)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역시 “25.9%”이다. 위의 동영상 13:05 부터 시작되는 얘기 (영상을 보고 본인의 페미니즘 점수를 계산해보시길). 설문결과를 바탕으로 페미니즘 점수를 계산했더니, 20대 남자의 25.9%가 가장 극단적인 “신념형 반페미니즘”에 들어간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이 “신념형 20대 남성”의 사회인식이 얼마나 튀는지에 대해 다룬다 (아무래도 결과가 가장 재미있게 나오는 데이터다 보니). 다음 데이터는, 이 집단에게 “젠더”라는 스위치가 켜지면 어떤 답변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 스위치를 누르는 질문이 등장하면, [신념형 20대 남자 집단]에서는 공정에 대한 감각 자체가 달라져버린다…… ‘남녀의 소득이 비슷한 사회가 공정하다’라는 문장을 주고 찬반을 물었다. 당위에 가까운 문장이어서 반대 의견을 내기가 쉽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런 문항을 두고 “응답자의 답변을 ‘당위적인 정답’으로 유도하기 때문에 좋지 않은 질문이다”라고 평가한다. 웬만하면 당위에 따라 답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신념형 20대 남자 집단은 웬만하지 않다. 58.3%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2장)



20대의 불균형한 성비가 원인일 수 있다.


역시 가장 중요한 질문: 도대체 왜 이럴까? 20대 남성들의 문화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1,2장에서 신나게 현상을 서술하던 글은 “원인”을 찾으려 노력하는 3장에서 조금 주춤한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가설들, 또 다른 글들을 찾아보고 내린 결론은, “불균형성비”가 가장 큰 요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캔자스 대학 사회학과 김창환 교수님의 포스팅에서 힌트를 얻은 것. (참고로 이 블로그는 통계에 기반한 한국사회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필독해야 할 블로그이다) 블로그에 따르면, 지금 20대는 코호트 중 유일하게 성비가 자연성비범위를 넘어선 (108:100 이상) 집단이다. 그런데 (이론은 확실하지 않지만) 성비 불균형이 여러 사회문제를 일으킨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사실 성비불균형 가설은 천관율 기자 본인이 5년 전에 쓴 기사에서도 나온다)


비자연적으로 남성의 비율이 높아지면, 당연히 짝짓기경쟁에서 패배하는 남성의 숫자가 늘어난다. 이러한 실패의 경험은 매우 어렸을 때부터 서서히 자신의 몸에 축적될 것이다. 실제로 이 설문조사에서도 그러한 “패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 이 공고한 정체성 집단은 ‘여성’과 유능’을 이어붙이는 데 일관되게 반대한다. 하지만 교육과정만 놓고 보면 모든 세대-성별을 통틀어 여자를 가장 높이 평가하는 그룹이 이들이다…..생애 경험이 충분히 축적된 영역 (교육, 입시, 취업) 에서 이들은 또래 여자들에게 거의 주눅 들어 있다. (3장)


또한 내 성별보다 상대방 성별이 더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른바 ‘짝짓기 상처 지수’에서도, 신념형 20대 남성 집단의 데이터는 크게 튄다. (3장)


그러니까 다음과 같은 스토리를 생각해볼 수 있다. 불균형 성비로 인해서 지금 20대에서 “짝짓기 경쟁”에서 밀린 남자 집단이 생긴다. 이들은 자라오면서 여성들에게 여러 종류의 압박감을 경험한다. 자연스럽게 “여자가 아닌 남자가 차별받는 집단”이라는 인식이 형성된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나니 “여성의 인권을 지켜야 한다”는 운동이 점점 더 강해지기만 할 뿐이고, 정부는 그에 적극적으로 동조한다.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남성의 인권을 지켜야 한다!



20대 남성들의 공정성은 과도하게 단호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공정성”에 대한 강한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고, 20대 남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 책에 의하면, (신념형) 20대 남자 집단이 생각하는 “공정성”의 의미는 일반적이지 않다. 좀 더 단호하고 납작하다. 세심한 배려는 존재하지 않는다.


>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마친 후, 한국의 젊은 남성들이 젠더 문제에서 보여주는 태도를 ‘여성혐오’라고 부를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본문에서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젊은 남성들이 보여주는 태도의 본질은 ‘여성에 대한 혐오’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일관성 있게 관찰되는 태도는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놓고 기준과 잣대가 눈에 띄게 가혹하다는 사실이다. 이 가혹한 기준을 통과하지 않는 한, 어떤 사회적 우대나 지원 정책에도 불공정 딱지가 붙는다. 우리는 본문에서 이런 성향을 ‘맥락이 제거된 공정’ ‘납작한 공정’ 이라고 부른다. (서문)


> 내부냐 외부냐를 가르는 경계선을 판단하는 건 쉬워 보이지만 매우 어렵다. 사람들은 대체로 남의 행동을 설명할 때는 외부 환경 요인을 과소평가하고, 그 사람의 내재적 특성 때문이라고 과하게 믿는 경향이 있다. 사회심리학에는 ‘기본 귀인 오류’로 널리 알려져 있는 개념이다. 세계적인 사회역학자 리처드 윌킨슨은 최근작 [불평등 트라우마]에서 이렇게 썼다. “환경의 힘을 무시하고,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고 멍청해서 가난하다고 간주하는 경향이 대표적인 기본 귀인 오류다. 이것이 바로 ‘편견의 정의라고 볼 수 있다. (3장)


이와 관련해, 이 책에서 인용하는 일리노이대학 심리학과의 린다 스킷카 등의 논문<Dispositions, Scripts, or Motivated Correction?> (2002) 도 매우 재미있다. 시끄러운 소리를 들려주면 설문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더 단호한 대답을 내놓는다는 결과. 다시 말하면, “공정의 문제를 판단할 때 다른 과제로 인지 부담을 주면, 응답자들이 덜 섬세해지고 더 단호해진다.” (3장)


> 조사 결과를 접한 임동균 교수 (서울대 사회학과)는 흥미로운 설명을 내놓았다. “우리뿐만 아니라 선진국들에서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 공정성과 약자 보호다. 그런데 이게 공정성을 기성세대보다 더 강조한다기보다는 그거 말고 나머지 사회규범들, 암묵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던 규범들이 줄줄이 해체되어서 그렇다. 공정성 외의 나머지 가치잣대가 전부 흩어지는 바람에 공정성 잣대 하나가 증폭된다.


여기에 내 가설을 덧불이자면, 앞에서 말한 “패배”의 경험이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자신이 억압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타인에게 덜 관대해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분명한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20대 남성들이 “남성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면, 이들의 젠더 인식을 외부에서 바꾸는 일은 불가능하다. [바른 마음]에서 얘기하는 코끼리는 이미 반페미니즘의 방향을 잡았고, 이성적인 논쟁은 코끼리의 방향을 절대 바꿀 수 없다. 압력을 가하는 행위는 오히려 “남성이 탄압을 당하고 있다”는 인식을 강화시켜 역효과만 초래할 것이다.


조금 불쌍한 생각도 든다. 이 집단은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사람들이 나올때까지 계속 불만세력으로 남을 것임. 그런데 “신념형 20대 남성 집단”들은 정치적으로 “너무 작은” 집단이다. 만약 “불균형성비” 가설이 맞다면 이들 다음 세대는 다시 일반 남성정도의 시각으로 돌아올 것이고, 지금 20대 남성은 고립될 것이다. 정치참여비율도 높지 않다. 따라서 기성정치세력이 평등사회의 명분을 버리고 이들을 지원할 동기가 없다. 앞으로도 이들 집단의 목소리는 이른바 “안티페미코인”을 타려는 보수진영 몇몇 스피커에 의해 들이는 정도로 남을 것이다. 다만, 이들이 거대한 사회비용을 초래할 정도의 불만세력이 되는 것은 막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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