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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랑의 책읽기 May 20. 2020

공공성을 향한 위대한 여정

[한나 아렌트의 말] 2부: 공공성에 대하여

저번에 이어, [한나 아렌트의 말] 두번째 리뷰. 오늘은 그의 인터뷰 중 '공공성'에 대한 말들을 기록한다.


공공 영역에 헌신하는 삶이 “인간적”이다.


부끄럽지만, [인간의 조건]이 한나 아렌트의 ‘대표적 저작’이라는 얘기만 들었을 뿐, 이 책의 주된 메세지가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그런데 인터뷰 중간중간에 나오는 이 책에 대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공공 영역”에 대한 아렌트의 강한 믿음으로 항상 귀결된다. 



귄터 그라스의 다음 질문이 [인간의 조건]을 잘 요약하고 있는 듯 하다. 


> (인터뷰어: 귄터 그라스) 당신의 중요한 저작에 속하는 [인간의 조건]에서요, 미스 아렌트, 당신은 모든 이에게 영향을 주는 감각을, 즉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이 매우 중요하다는 감각을 현대가 축출해서 폐기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당신은 현대사회의 특유한 현상으로 대중의 뿌리 상실uprooting과 고독, 그리고 단순노동과 소비의 과정에서 만족감을 찾아내는 인간 유형의 승리를 지적합니다. (인터뷰 1)


다음 아렌트의 답변에서 등장하는 용어 중 “정치적인 것”, “세계”, “예술”, “공공 영역” 이 의미하는 방향은 같다. 

그 반대편에는 “단순노동”, “소비”, “무세계성”, 그리고 “고독”이 있다.


> (아렌트) 단순노동과 소비의 문제는 정말로 중요해요. 그 영역에서도 일종의 무세계성이 스스로를 규정한다는 이유에서요. 더 이상은 어느 누구도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관심을 갖지 않아요. (인터뷰 1)


> (아렌트)나는 지금은 세계를 훨씬 더 포괄적인 의미로 이해해요. 모든 게 공적public 사건이 되는 공간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자 남들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모양새를 갖춰야 하는 공간으로요. 당연한 말이지만 그 세계에는 예술이 등장해요. 온갖 종류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요. 케네디가 시인들 그리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들을 백악관으로 초대하면서 공공 영역public space을 꽤나 과감하게 확장하려고 애썼다는 걸 명심하세요. 따라서 그 모든 게 이 공간에 속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인간은 노동하고 소비하는 동안에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만 의지해요.
….노동하는 과정 중에 독특한 고독이 생겨나요….이 고독의 특징은 자기자신에게 의지하는 상태가 된다는 거예요. 말하자면 진정으로 상호 관련된 여러 활동을 소비 행위가 대신하는 그런 상황이죠. (인터뷰 1)


시장, price system이 주는 힘은 정말 강력하다. 전 세계를 도는 global supply chain은 한 인간이 상상하기에도 벅차다. 가격 시스템의 위력은 인간의 타인과 맺는 모든 복잡한 관계가 ‘가격’이라는 일차원의 숫자로 표현된다는 데에 있다. 타인을 고려할 필요 없이, 나는 내 행위의 ‘가격’을 최대한 올리면 된다. 그 댓가로 받은 돈을 다른 상품과 교환하면 된다. 그 상품들에는 다른 이들의 시간이 들어갔겠지만, 내가 신경쓸 일은 아니다. 오로지 가격만 있으면 된다. 이 얼마나 간단한 생각인가. 이 “단순성”이 price system의 위력이다.


이 단순성은 또한 시장 스스로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내가 자주 인용하는 말: “시장은 정글이 아니라 정원이다”. 이 아름다운 price system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한 사회의 강력한 신뢰의 토양 위에서 인위적으로 생겨난 제도이다. 그런데 시장의 단순성에 젖은 개인들은 점점 타인과의 연대를 느슨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개인화되어버린 사회에서, 시장의 승자가 서서히 견제없는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하고, 공정한 시장은 점점 무너진다.



아렌트의 다음 문장은 내가 본 것 중 공공성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찬사이다.


“인간성은 자신의 삶과 존재 자체를 ‘공공 영역으로 향하는 모험venture into the public realm’에 바친 사람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한나 아렌트, [카를 야스퍼스 찬사]


인터뷰어인 귄터 그라스가 이 문장에 대한 생각을 묻자, 아렌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항상 강력하다.


> (아렌트) 내게 공공 영역으로 향하는 모험은 명확한 것 같아요. 한 사람이 일개인으로서 대중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거죠. 사람이 자의식에 사로잡혀 공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고 행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사람은 그가 보여주는 모든 행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아요. 말하기도 행위의 한 형태에요. 그게 하나의 모험이죠.
다른 모험으로는 우리가 무슨 일인가를 시작하는 게 있어요. 우리는 인간관계의 네트워크에 우리 자신이라는 가닥을 엮어 넣어요. 어떤 결과가 나올지 결코 몰라요…..모험이 뜻하는 바가 그거에요. 
요즘에 나는 이 모험은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고 말하곤 해요. 모든 사람이 가진 인간적인 것에 대한 신뢰—만들어내기는 힘들지만 꼭 필요한 신뢰—말이에요. 그게 없다면 그런 모험은 행해질 수 없을 거에요. (인터뷰 1)


“우리가 무슨 일인가를 시작하는 것”. 스타트업을 볼 때 느끼는 어떤 희열이 연상된다. 

하지만 이 세상의 많은 새로운 일은 자본의 힘을 통해서만 일어난다는 것이 가장 큰 아이러니.



전체주의와 신자유주의는 모두 개인을 소외시킨다. 바로 이 때문에 이 체제들은 안정적일 수 없다.


재미있는 점: 한나 아렌트는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을 왔다. 당연히 전체주의와 그 배경이 되는 집단주의에 강한 거부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나 아렌트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개인화에도 강한 경고를 보낸다.  


생각해보면 전체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양 극단의 이념들인데, 서로 통하는 것이 있다. 전체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집단을 중시하는 도덕적 기저만 남았다 (충성/배신, 권위/전복). 다른 한편으로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개인을 중시하는 도덕적 기저만 남았다 (자유/압제).


남들이 죽건말건 (배려/피해), 정의롭건 아니건 (정의/부정) 이들은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둘 다 “다른 존재”를 신경쓰지 않는다. 다만 전체주의에서는 “나”가 “집단” 그 자체일 뿐. 전체주의 하의 사람들은 그 집단만 생각할 뿐, 집단안/집단밖의 다른 존재를 생각하지 않음.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하의 사람들은 개인만 생각할 뿐,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다. 결과는? 두 체제 모두, 궁극적으로 어떤 권력집단이 대중을 수탈하게 된다.


자본주의-공산주의 논쟁은 중요하지 않다. 수탈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서, 한나 아렌트의 다음과 같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모두까기”비판은 매우 정확하다. 권력집단에 의한 수탈로만 보면, 레닌 하의 러시아의 수탈이 훨씬 더 심하게 진행되었다. 


> 수탈과 초기의 자본축정, 그것이 자본주의가 발생하면서 따른 법칙이자 단계별로 발전하면서 따른 법칙이었어요. 요즘사람들이 사회주의를 말할 때 상상하는 게 무엇인지는 나도 몰라요. 하지만 러시아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서도 수탈 과정이 훨씬 심하게 진행됐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에요. (인터뷰 3)



> 경제 세력들과 그들이 장악한 장치들로부터 독립한 법적, 정치적 제도들이 수탈 과정에 본질적으로 내재한 극악한 가능성들을 통제하고 저지할 수 있어요. 그런 정치적 통제는, 자신을 사회주의자로 부르건 자본주의자로 부르건 이른바 복지국가에서 가장 잘 기능하는 듯 보여요. 자유를 수호해주는 것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사이의 분열**이고, 또는 마르크스주의 표현을 쓰자면, 국가와 그 구성 세력이 상부구조superstructure가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인터뷰 3)


“자유를 수호해주는 것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사이의 분열”이라. 정확하게 말하면, 두 권력 사이의 상호견제라고 봐야 할 것이다.


>  체제 경쟁은 단순히 경제 시스템만 놓고 벌이는 경쟁이 결코 아니에요. 경제 시스템은 독재가 가하는 제약이 없었다면 생산적으로 진행됐을 경제성장을 독재 정권이 저해하는 한에서만 관련이 있어요. 나머지 것들은 정치적 문제와 관련이 있어요… (인터뷰 3)


중요한 점은 간단히 말해 내가 하고픈 말을 하고 출판할 수 있느냐 없느냐 여부예요. 이웃들이 나를 감시하느냐 하지 않느냐 여부예요. 자유라는 용어는 항상 ‘반대할 자유’를 의미해요. 


미국 정부를 “법에 의한 정부”라고 정의하고, 법체계가 경제권력-정치권력의 융합을 방지할 수 있다는 그녀의 주장. 그녀가 지금 트럼프정권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 [미국에서 내가 받은 주된 인상은] 자, 이 나라는 민족국가nation-state가 아니에요….이 나라를 통합하는 요소는 유산도 아니고 기억도, 국토도, 언어도, 동일한 혈통도 아니에요… 이 시민들은 딱 한 가지 것으로 통합돼 있어요. 즉, 당신은 헌법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단순한 절차만 따르면 미합중국 시민이 돼요….미국 정부는 인간에 의한 정부가 아니라 법에 의한 정부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인터뷰 4)



공공 영역을 향한, ‘인간 너머의 지경’을 향한 여정. 아렌트는 낙관적이다.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아렌트는 낙관적이다. 다음은 아렌트의 1960년대 미국-유럽 학생운동에 대한 긍정적 평가.


> 단순히 프로파간다만 진행되는 수준에 머무는 게 아닌 자발적 운동이, 활동만 정치적인 게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도덕적인 동기에서 시작된 정치적 운동이 대단히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일어났어요….정치적 행위가 재미있다는 것이 밝혀진 거예요. 이 세대는 18세기가 “공적 행복public happiness”이라고 불렀던 것을 발견했어요. 공적 행복이란, 사람은 공적인 생활public life에 참여했을 때, 그러지 않았다면 그에게 닫힌 채로 남았을 인간적 체험의 차원을 혼자 힘으로 열어젖힌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여러 면에서 완전한 ‘행복’의 일부를 구성한다는 것을 뜻해요. (인터뷰 3)


“정치적 행위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 바로 2016년 추운 겨울에 광화문에 모였던 수백만명이 경험했던 일이다. 


> 역사를 보면 선한 상황은 지속 기간이 대단히 짧은 게 보통이지만 이후로 장시간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들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해요. 그리스의 진정한 고전적 시기classical period가 얼마나 짧았는지 생각해봐요. 그런데 그 시기는 사실상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어요.


현대 한국 시민들은 지난 수십년 동안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공공 영역으로 향하는 모험을 끈질지게 해내고 있다. 한국이라는 국가의 위력이 그 여정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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