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하루에 한 번씩 쓸 거야.
4월 초부터 일을 쉬기 시작했다. '구직자'라거나 '취업준비생'이라거나 하는 명칭으로 나를 설명 하지만 주변에서는 '프리랜서'라고 포장하려 한다. 나는 정확히 '백수'다 더 구체적으로는 '백수'에 '건달'을 보태야 한다. 쉼 없이 쉬고 있다. 백수는 백수지만 순수한 백수라기보다 백수겸 건달을 업으로 하는 중. 쉬면 하고 싶었던 일이 분명히 있었는데 쉬지 않고 쉬다 보니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 같은 미련에 한 발짝도 뗄 수가 없다. 나는 아직 '구직'도 '취업'도 하고 싶지 않은 '백수건달'이다. 겨울의 햇살은 유난히 따뜻하고, 나는 이 햇살을 사무실에서 받는다던가, 어딘가에서 받는다던가, 일을 하면서 받는 대신 오롯이 혼자 이 적막 안에서 즐기고 싶다. 건달로써 당연히 해야 할 일과인 셈. 어쨌든 이런 핑계를 아마 124개 정도는 들 수 있을 것 같다. 듣는 누군가가 지치지 않도록 여기까지만 하겠다.
일을 쉬면 하고 싶었던 일은 책 읽기였다. 어쩌다 보니 올해는 주황색 책들을 주로 읽게 되었다. 이장욱의 '기린이 아닌 모든 것', 무라카미 하루키의 ' 잡문집', 김어준의 '건투를 빈다'. 이들 중 한 권은 누군가의 추천으로, 한 권은 표지가 예뻐서, 한 권은 가벼워 보여서 선택했다. 설명은 무작위 순으로 한 것이므로 알아서 추측하면 되겠다. 그중 가벼워 보여서 선택한 책은 한 장 한 장을 아껴가며 보고 있다. 그중 표지가 예뻐서 선택한 책은 역시 후루룩 읽어내고는 다시 되짚어 읽고 있다. 그러나 그중 누군가의 추천으로 보기 시작한 한 권의 책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끝을 보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고집이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추천 따위. 눈 아픈 너의 주황색 따위. 내가 골라낸 다른 주황색들과 결이 다른 색이란 말이다! 같은 주황색이 아니다. 그는 나를 모른다. 분명히 모른다.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나에게 '너는 역시!'라며 감탄했던 것이 누구더라. 아주 조심스럽게 어깨에 손을 올렸던 이가 누구더라. 책을 읽었다고 거짓말을 한 대가 치고는 꽤나 로맨틱했으나 역시 무겁다. 어쨌든 그 책을 사지 않았어야 했고, 그 책이 무슨 책이냐고 다시 되물어 문자를 하지 말았어야 했고, 그때 무슨 책을 좋아하는지 물어보지 않았어야 했고, 그냥 그 날 나가지 않았어야 했고, 그때는 이렇게 될 줄은 몰랐던 이 허무맹랑한 바람을 누군가에게 들키지 말았어야 했다. 아 젠장. 후회는 이리도 멀리멀리 태초로 날아들어 탄생을 부정하고 싶게 한다.
주황색 같은 마음으로다 12월이 지나가길 기대하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열정적으로 붉지도, 해맑아 노랗지도 않은 노련한 주황색이 되는 거다. 나는 드디어 30대의 반열에 올라 30대에게 30대의 명함을 내밀 거고, 자라나는 20대라던지, 뭘 모르는 20대라던지 하는 개소리는 되돌려 엿으로 먹여줄 거다. 얼마 전에 심심풀이로 했던 정신연령 테스트에서 300살이 나왔다. 너희들이 뭘 알겠니. 20대의 대가리 속에 300살 먹은 노파가 능구렁이처럼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고 있다는 걸. 그러니까 그 노파께서 20대 말에 선택하신 세 권의 책이 모두 주황색인 것은 계시와도 같은 것.
그러므로 읽던 책을 마무리해야겠다. 햇살이 좋다. 갑자기 귀찮아졌다. 책을 넘기다가 햇살을 핑계삼아 또 건달의 일과를 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