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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월 Aug 18. 2018

오래된 일기를 들추다 보니

바퀴벌레가 튀어나왔다.

손가락도 대가리도 굳어버린 요즘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으라던데. 마침 나는 뇌가 없으니 손가락으로라도 뭔가를 써야지 싶다. 그래서 지금 열두시 사십이분인데도 잠 안자고 이러고 촛불 켜고 구신같이 앉아서 뭔가를 두드리고 있다. 지금 두드리는 건 빌어먹을 중고 싱크패드다. 키 감이 좋다고 누가 지껄이는 바람에 냅다 샀는데 느리고, 손가락도 잘 안 붙는다. 대가리 굳어 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손가락 관리라도 잘 해야 하는데. 손톱이라도 짧게 잘라야 덜 미끄러지려나. 명령과 행동의 협응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응. 그러니까 무슨 말이 하고 싶냐면. 그러니까 지금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서른이 되었다는 거다. 그러니까 조금 더 정성껏 말하자면 태어난 지 딱 30년이 되었다는 거다. 1년이 365일이니까 그러니까 계산하기 귀찮아지는 나이에 접어들어서는 그러니까. 모르겠다. 댑따 많이 지났다. 태어난 지 엄청.     


내 나이 스물세 살에 말이다. 동아리의 스물다섯 된 선배를 만나면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게 또 하나 있지’ 라는 심정이었다. 그 선배가 ‘보름아 씨#을 대체할 수 있는 단어는 이 세상에 없단다.’라는 개소리를 지껄여도 ‘이토록 고결한 진리의 말씀이 어디 또 있으리오.’ 하며 마음깊이 새겼단 말이다. 그가 나보다 더 먹었던 나이 두 살이 그렇게 높고 높아 보였으나. 막 서른이 되었고, 다시금 그 코찔찔이들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참으로 가여운 그들의 등짝을 시원하게 갈겨주고 싶다.


그러니까 어쨌다는 거냐면. 그런 추억을 조금씩 살금살금 떠올리다가 그래서 오랜만에 봄봄카페를 들어가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2015년이던가 2014년이던가부터 아주 가끔씩 써 올렸던 글을 훑어보았다. 그때의 나는 참 멍멍멍멍 하고 왈왈왈왈 하더라. 꾸준히도 뭔가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게 숙취를 줄여준다거나, 더부룩한 속을 개운하게 해주기는커녕 비위를 건드려 다음 토를 유도하는 것 뿐. 나이를 먹어 좋은건지 나쁜건지. 그걸 알고나니 삼켜야지뭐. 말 수도 줄었다. 멍멍멍멍 하고 왈왈왈왈 하던 그 때의 나는 어디로 온데도 간데도 없이 똥싸고 뭉개놓고는 귀찮아 늘어진 그런 멍멍이만 남았단 말이다. 멍.


그 때의 나와 지금을 비교하자면 괜한 고집에다가 독선만 늘었다. 의뭉스럽고, 불평은 더럽게 하고, 누굴 가르치기나 하는 꼰대가 되었다.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나도 그랬는데'. 그래서 어쩌라는건가. 어둡고 습한 곳에는 바퀴벌레나 구더기, 곰팡이들이 먹고살기 참 좋지.  산뜻하게 30년을 꺾은 이 시점에도 구질구질한 냄새가 가시질 않을까. 지금이라도 볕을 쬐어주어야 할텐데. 볕이 가신 밤에 기어다니며, 엉킨 머리카락에 더 엉켜들고, 엉켜드는 생각을 더 헤집어 엉망으로 만드는 바퀴벌레를 아직도 잡지 못했다.  바퀴벌레는 미래라는 단어도 개념도 알지 못하므로 자신이 벌인 엉망진창을 책임질 필요가 없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


여태 뭘 하든 곱씹고 되씹어서 곤죽이 되어도 못삼키는 멍청한 꼴을 하고 있다. 먹고 싸고 치우면 그만인 것을.


여태 입에 걸레를 물고 우물거리고만 있으니, 누가 내 말을 알아듣겠니. 예쁜말 예쁜생각.


 이게 서른이라면 얼른 마흔이 되고싶다. 벌써 등짝이 얼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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