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담잡설(茶談雜說): 차 마시다 떠오른 별별 생각
지난여름 지리산 자락의 산사를 찾아 차를 마셨다. 대나무 숲 속에서 키운 차나무의 잎으로 가공한 죽로차(竹露茶)를 만든다고 했다. 차맛의 객관적인 품평을 떠나서 몇백 년을 훌쩍 넘은 고즈넉한 절집에서 차를 마시는 경험은 정말 특별했다.
다실에는 각종 차를 담은 항아리가 빼곡했는데 항아리마다 차의 종류와 제작연도 레이블이 잘 붙어 있었다. 모든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서 향도 맡아보고 우려내어 맛도 보고 싶었다. 이런 상상을 하면서 마치 다인들의 파라다이스, 놀이동산에 온 듯한 행복감에 젖을 수 있었다.
나이 지긋한 스님 한 분이 차를 우려 주시며 차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웠다. 홍차 계열 차를 우려 주셨는데, 향이 그윽하였다. 스님은 '모든 차를 자연의 순리에 따라 만들었노라'라고 강조에 또 강조를 하시며 자부심을 내비치셨다. 차맛의 비법인 그 순리가 과연 무엇인지 따져 묻고 싶었지만, 종교인으로서, 수행자로서 하시는 말씀으로 이해를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차를 만들었기 때문에 차가 건강에 너무나 좋다'는 식의 접근은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작가가 가장 경계하는 차에 대한 접근이다. 묵묵히 말씀을 삼키다, '아토피 환자의 피부에 찻물을 바르면 좋다'는 말씀에는 그냥 입을 닫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차를 건강식품 또는 약으로 선전하는 것은 결코 차산업과 차문화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누가 약을 매일매일, 평생 동안 먹으려고 하겠는가? 몸이 불편한 환자들만 마시려고 하겠지. 마시면 기분 좋은 기호식품으로 마케팅 방향을 잡아야, 누구나 가볍게 차에 접근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때에 차산업과 문화가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홍차에 이어 아직 숙성이 덜 된 햇백차도 맛을 보았다. 스님은 아직 숙성이 덜 되었다면서 다른 차를 맛보라 하셨지만, 햇백차의 풋풋함을 확인해보고 싶다고 간곡히 부탁을 드렸다. 뭔가 정돈되지 않은 흥미로운 향미였다. '1년 뒤 이 백차는 어떤 맛으로 익어갈까?'라며 앞으로 완성될 맛을 그려 보았다. 결국 4종류의 다른 차를 맛보고서야 절집을 떠났다. 차향과 오래된 절집이 주는 정취에 흠뻑 취한 여름날 오후였다.
아껴 마시던 하동 다원의 홍차가 다 떨어져서 산사에서 구해온 죽로차를 새로 뜯었다. 차와 함께 여름날 산사의 시간도 함께 묻어온 듯하여 반갑다. 이제 이 홍차 한 봉지로 남은 겨울을 근근이 버텨야 하리라. 세상이 어지러우니 숨어서 조용히 차를 마시던 여름 산사가 자꾸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