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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원다인 Apr 21. 2020

우리 인연은 강물처럼

다담잡설(茶談雜說): 차 마시다 떠오른 별별 생각

마신 차: 포랑산 보이차. 2g, 99도, 50s-30s-1m-1m30s-2m

들은 노래: 내 영혼 바람되어(작곡 김효근, 바이올린 연주 정경화)


올해 첫 패들링을 다녀왔다. 작은 조각배가 있어서 종종 강과 호수에서 배를 탄다. 배를 띄우러 간 강변에는 유채꽃이 만발하여 상춘객들이 빼곡했지만, 강물 위에서는 감염의 우려가 전혀 없으니, 완벽한 “사회적 거리”를 둘 수 있어 마음이 편했다.

 

상류 쪽으로 먼저 올라갔다가, 물살을 타고 내려오려 했었는데 뒷바람이 초속 3~5미터로 세게 불어서 계획을 변경했다. 바람을 등지고 노를 저으니 앞으로 나아가기는 쉬웠지만 돌아오는 길이 걱정되어서 먼저 맞바람을 맞으며 하류로 내려갔다가 상류로 돌아오기로 하였다. 무동력선 최고의 적은 바람인데, 바람에 맞서 노를 젓다가 최악의 경우에는 탈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다, 강, 호수… 나는 물이 너무 좋다. 물 위에 있으면 행복하다. 낚시가 좋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물가에 있으면 그냥 마음이 평안해진다. 특히 4월에는 물가에 서는 것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바다로 흘러간 수많은 영혼들과 가깝게 대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럴까?


거의 항상 윈드 서핑이나 패들보트, 카약을 타는 분들이 있는데 바람이 불어서 그랬는지 아무도 없어서 넓은 강을 홀로 차지하였다. 물오리들이 겁도 없이 가까운 곳에서 자맥질을 하고, 죽은 갈대가 무성한 무인도에 배를 대니 마치 이 세상에 나만 존재하는 듯싶었다.


잠시 강변의 봄 정취에 취해서 노젓기를 멈추고 멍하니 표류했다. 바람은 불고, 강물은 흐르고, 바람과 물살이 배를 이리저리 몰아갔다. 이렇게 옛 인연은 흘러가고, 새로운 인연이 찾아오겠지. 지금의 이 난리 법석도 곧 흘러 흘러 우리 기억 저편으로 물러 갈 거다. 


아무리 그래도 도통 잊혀지지 않는 아픈 인연과 기억이 있다. 4월의 남쪽 바다. 그때의 허망함과 무기력함을 잊을 수 없어 4월이면 물가에서 나만의 추모의 시간을 갖는다. 그들 부끄럽지 않게 우리는 바뀌었나?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있나?


강물이 돌아가는 저 굽이 너머 무엇이 있을지 우리 배가 닿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험한 여울이 있을 수도, 순풍이 기다릴 수도 있다. 어쨌거나 모든 조건이 우리의 삶의 일부. 결국에는 헤쳐나가야 할 물길. 배가 좌초할 수도 있지만, 퇴선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노를 저어야 한다. 


집에 돌아오니 지인이 보낸 책 선물이 와 있었다. 지은이가 누구인가 봤더니 대학교 남성합창단의 선배다! 그간 통 소식을 모르고 지냈었는데, 이렇게 우연히도 만나지는 구나 싶었다. 우리 인연은 강물처럼 만났다, 헤어졌다, 또다시 만나며 흘러가는구나. 우리는 가만 그 물살에 올라타서 함께 흘러갈 뿐이다.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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